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남과 북, 미국 정부 그리고 세계의 양심에게. 그는 “미국의 네오콘이 북한을 악용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에 지금 당장 북한과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북한 문제는 한국의 의견을 존중해 달라”고 전 세계에 호소했다. 그는 또한 “북한 봉쇄가 노리는 것은 중국”이라면서, “하루 빨리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민족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듣는 ‘한반도 해법’의 지혜.


“지금, 북미관계가 안 풀리고 있는 거요. 그것이 도처에서 제동을 걸고 있어요. 누구는 남북관계가 진척이 안 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 북미관계가 근본 문제요. 북한은 대화를 간절히 바라는데, 미국의 네오콘은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장벽을 치듯 북한을 몰아붙이고 있소.”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남북한 통틀어 단 한명뿐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반 동강 난 민족의 폐부(肺腑) 깊숙한 곳에 새겨진 원념(?念)을 토해내는 팔순의 노 대통령의 얼굴에, 온화함은 사라지고 비장미(?壯美)마저 서렸다.

한반도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의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그 해법을 찾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민족이 함께 짜내야 할 지혜는 무엇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이제는 미국이 대화에 나서야 할 차례”라고, “미국의 네오콘과 일본의 우파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더 이상 북한을 악용하고 봉쇄해서는 안 된다”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미동맹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 전쟁 을 위한 게 아니”라고, “북한 문제는 한국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금 남한과 북한은 사실상 연합 단계에 와 있다”고, 전 세계와 미국 정부에 호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또한, “전쟁을 바라지 않는 한 흡수통일은 없다”고, “남북관계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북한은 6자회담에 나서 전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대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우리는 미국에 줄 것 다 주면서 좋은 소리 못 듣고 있다”고, “하루라도 빨리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남한과 북한의 지혜로운 실천을 촉구했다.

제네바, 핵, 미사일, 경수로, 식량, 금강산, 개성공단, 6자회담, 한미동맹, 전략적 유연성, 전시 작전통제권, 남북정상회담…. 최근 십여년 동안 우리 민족이 숨죽이고 지켜보았던 이슈들. 바로 여기에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보장할 비밀의 열쇠가 숨어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의 특사 방북이 무산된 이래 ‘침묵의 시위’를 깨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랬다. 그것은 인터뷰가 아니라 어쩌면 ‘강의’였고, 차라리 ‘질타’였다. 주제가 주제이니만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터뷰어보다 더 인터뷰에 몰입했고,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나이와 건강도 잊은 채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날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는 만26세.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김대중도서관을 나서자마자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사진을 저에게 맡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한 언론이 다른 곳도 아닌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인지라,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유럽의 ‘인연’을 회고하는 대목에서부터 시작됐다.

“유럽의 지도자들, 독일로 말하면 기민당, 사민당 할 것 없이, 또 종교계나 학계를 망라해, 제가 감옥에 가거나 사형 언도를 받고 고통을 받을 때, 많은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스웨덴의 팔메 수상, 오스트리아의 크라이스키 수상,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 겐셔 외상, 폰 바이체커 대통령, 프랑스의 돌아가신 미테랑 대통령, 시라크 현 대통령…. 제가 민주화를 위해 싸울 때나, 대통령이 되어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나, 항상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럽을 잘 알았기에 가능했다. 유럽, 특히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라는 채널은 북한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고, 독일 통일의 ‘아픈’ 경험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른바 ‘남북연합-남북연방-완전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론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만든 ‘반면교사’였다.

다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폰 바이체커 독일 대통령과 만나 나눈 대화다.

‘우리는 독일 모델을 따라가지 않겠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통일을 하겠다. 그것이 바로 양쪽이 극단적으로 서로 증오하고 대립했던 그런 감정을 해소하면서, 안정적으로 통일하는 길이다. 우리는 서독처럼 경제력이 크지 않고, 북한은 동독이 아니다. 그래서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3원칙 아래 1단계는 남북연합, 2단계는 남북연방, 3단계는 완전통일의 길로 가겠다.’

‘미스터 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 통일 문제에서 실패했다. 우리가 이렇게 빨리 하려고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됐다. 우리는 이 기회에 통일하지 않으면 소련이나 다른 유럽 나라들이 항상 (통일을) 지지해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통일하자고 했는데, 참 어렵더라. 한국은 정말 단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인연 덕분에 대통령 김대중은 자신의 오랜 꿈을 피력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은 분기점이자 해묵은 숙제를 푸는 회심의 ‘결정타’였다.

“현 단계에서 우리의 당면 목표는 통일보다는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힘이 닿는 대로 북한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북한은 우리의 참 뜻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우리의 화해와 협력 제안에 적극 호응하기를 바랍니다.”(김대중, 2000년 3월 9일, 베를린자유대학 강연에서)

“제가 베를린에 가서, ‘흡수통일의 본고장’에 가서, 우리는 흡수통일 안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는 단계적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전에는 제가 햇볕정책 하겠다고 하니까, 이솝 우화를 연상해 북한의 옷을 벗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돌아선 거예요. 그래서 우리와 대화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래서 6·15 남북정상회담이 있을 수 있었던 거예요.”

이렇듯 남북정상회담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하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찍이 1971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이미 3단계 통일방안을 국민에게 소개한 당사자다. “3원칙, 3단계, 그 이상의 길이 없다”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구상이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지 6년이 지났다.


“남북연합은 언제든 실현 가능”


“지금, 남북관계는 사실은 바른 궤도를 가고 있는 것이고, 앞서 말한 대로 연합 단계는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거요. 북한이 연방제 주장을 낮춰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하자고 나왔습니다. 실제로는, 우리 생각과 똑같은 거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합’이지만, 똑같이 권리를 갖고, 정상회담이라든가 각료회담이라든가 의회회담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하면서, 서로 협력하되 모든 합의를 만장일치로 해나가는 입장이라는 겁니다.
일종의 협력체 비슷한 것이에요. 주권을 전혀 이양 받지 않고 그냥 이대로 가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하려고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위기(危機)’라는 단어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태로 비화되고 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남과 북이 1단계인 남북연합으로 진입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온화하고 자상한 ‘사부(師父)’의 표정을 하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빛에 순간, 분노가 어렸다.

“북미관계가 안 되고 있는 거요. 그것이 도처에서 제동을 걸고 있는 거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장벽을 세우듯이. 누구는, 남북관계가 진척이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실은 그게 문제가 아니고, 북미관계가 근본 문제요.”

관계는 항상 상대적이다. 관계가 안 풀린다면 잘못은 서로에게 있다. 그러나 잘못에도 선후(先後)가 있고, 경중(輕重)이 있으며, 무엇보다 강자의 잘못과 약자의 잘못은 차원이 다르다.

“지금 상황이 안 좋은 이유는 북한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어요. 그것을 풀지 못하는 것은 북미 대화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북한은 그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미국이나 일본의 강경세력이 손뼉치고 좋아할, 그런 일을 많이 해요. 핵 문제라든가, 미사일 문제도 그래요. 사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가져서 뭘 어떻게 할 거요? 미국에, 미국 앞에 가면, 어린애 장난감밖에 안 될 텐데.
미국이 사실, 속으로는 북한 핵이 겁 안 나는 거요. 오히려 그걸 악용하고 있는 거요. 미국의 네오콘들이 말이오.”

절박하고 다급한 사람은 북한이지, 미국이 아니다. 그러나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꿸 수는 없는 법. 인터뷰 자리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6년 전의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났던 자신의 ‘파트너’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북한에 계속 충고하고 있지만, 왜 6자회담에 안 나가느냐고 말했어요. 6자회담에 나가서, 우리가 핵도 포기하고 미사일도 포기하겠다고 그랬으면 당신네 미국도 내놓을 것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라, 우리만 양보할 게 아니라 당신네도 양보해라.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해야, 세계가 북한 말을 듣고 옳으면 옳다 할 것 아니냔 말이오.
미국이 일방적으로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북한이, 당신네 미국은 6·25 전쟁 중에도 우리와 대화했는데 지금은 왜 대화를 못하겠다는 거냐, 아니 우리더러 무슨 핵 문제 해결하라면서 대화도 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해결하라는 거냐, 이렇게 나와야 하는 거예요.”

설상가상. 여기에 일본도 한몫 거들고, 잇속을 챙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렇게 하는 것을 일본이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는 거요. 정말 악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용하고 있어요. 미국과 딱 짜고. 신동맹체다 뭐다 해서 가고 있어요. 미국의 군수산업은 미국에서 팔아먹고, 일본에서 팔아먹고, 도처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 그런 상태에요.”

그렇다면 미국은 왜 북한을 봉쇄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전에, ‘대북 봉쇄정책은 백해무익하고 백전백패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장을 들어보자. 그의 목소리는 제발 내 말을 들으라는 듯이 점점 더 커지고, 그래도 자신의 말을 안 들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에 점점 더 갈라진다.


“네오콘이 북한을 악용하고 있어”

“우리가 공산국가의 교훈이 있는데, 공산국가는 압박과 봉쇄로 이긴 예가 없다는 겁니다. 소련이나 동유럽도, 데탕트로, 헬싱키 회담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제가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이, 자기 눈앞에 있는 쿠바라는 조그만 섬 하나를 50년 동안 봉쇄했지만 변화 못 시키지 않았느냐,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봉쇄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럼 미국 사람들은 왜 봉쇄를 하면 안 되느냐고 해요. 이라크나 리비아나 다른 곳은 다 됐는데 왜 북한은 안 된다는 거냐, 이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은 다르다, 이라크는 독재국가지만 사유재산제도다, 국민들이 내 집 갖고, 내가 장사하고 농사지어 먹고 산다, 그리고 신문이 다소라도, 정부 비판을 하고, 또 외국도 왔다 갔다 하니까 바깥소식도 좀 듣고, 그런데 북한은 의식주가 완전히 정부에 매달려 있지 않아요!”

미국은 ‘바보’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석대로라면 ‘실패할 게 뻔한’ 대북 봉쇄정책을 미국이 고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을 세웠다. 그리고 한 마디 할 때마다 세운 손을 반복해 앞으로 뻗었다 거두었다. 그가 핵심을 설명하거나 강조할 때면 으레 나오는, 우리 국민들이 지난 1971년 대통령선거 이래 30여년 넘게 보아 온 바로 그 모습이다. 인터뷰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 제가 그 말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럼 미국은, 지금 북한이 핵도 포기하겠다, 미사일도 안 하겠다, 그러니 대화하자, 그 대신 우리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나오고 있는데도, 왜 대화를 하지 않느냐? 그건, 미국의 네오콘, 강경파 입장에서는 (대화는) 필요가 없는 거요. 지금 북한을 자꾸 잘못된 길로, 강경한 길로 몰아붙이면서 악용하고 있는 거요.
바로 중국 때문에 그러는 거요. 네오콘 그 사람들은, 말하자면 중국을 앞으로 미래의 가상의 적으로 생각하고, 지금 MD 같은 군비확장 하려고 하는데, 그럼 뭔가 구실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게 바로 북한이오.
일본을 재무장시키고,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시켜야 하는데, 그것도 지금 북한을 빌미로 시작한 거니까, 앞으로 더 할 거요. 그 사람들로서는 그런 목적으로 북한을 몰아붙이는 거요. 제가 볼 때는, 그게 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잘하는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별도의 이야기고,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 거요.”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아니 대화가 이루어지면 오히려 곤란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북한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으로 네오콘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아는 한, 지금 미국에서는 네오콘이 한반도 정책을 좌우해요. 부시 대통령은 중동이나 그쪽에 몰두하고, 이쪽으로는 지금 그래요. 그래서 부시 대통령은 말을 했다가도 바꿔요.
부시 대통령이 2002년 2월에 저와 회담하고 나서, 완전히 내 말에 수긍을 해서, 북한 공격하지 않겠다, 북한과 대화하겠다, 북한에 식량 주겠다, 이렇게 세가지 약속을 자기 입으로 기자회견에서 밝혔는데, 나중에 실천이 안 됐어요.”


‘핑계 없는 무덤’이 없으랴. 트집을 잡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옅은 한숨도 잠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속하고 적확하게 이슈를 전개시켜 나갔다.

“의도적으로 연결이 된 건지 제가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작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합의가 됐잖아요? 그 다음날인가, 그 다음 다음날인가, 마카오은행 문제가 터져 나와서 오늘날 6자회담도 완전히 정지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일본은 지금 몇 사람 납치 문제 갖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과까지 하고 그랬는데, 지금 그 문제 갖고 북한을 부정해요. 납치 문제는 납치 문제대로 풀면서, 대화는 대화대로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 문제 갖고 지금 완전히 우파가 강해져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지금 수상이 될 게 확실한데, 아베 관방장관은 결국 북한 공격해서 인기가 올라가고 그랬단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미국의 네오콘이나 일본의 우파 세력들에게는, 이렇게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펴는 게 의미가 있는 거요. 그 의미를 간파하고 역으로 행동을 해야 하는데, 북한이 자꾸 구실을 줘서 망치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참 힘들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시선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를 훑고 있다. 북한 문제는 중국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반도 위기는 미국과 중국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해결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 당면해서는 한반도 문제가 긴장의 초점이 돼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중국이 초점이 될 거요. 중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가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인 거요. 전에 미국에서 온 책임 있는 사람과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납득을 해요.
그렇다면 미국이 전쟁을 할 것이냐? 미국은 지금 중동도 안 풀리고, 아프간에서도 제대로 안 되는데, 여기에서 지금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겠어요? 그건 꿈도 못 꿀 일이지. 결국은 일본 하나 붙들고 있다가, 다른 아시아 나라들이 전부 전쟁지향적인 것에 반대하고, 미국에 등 돌리는, 그런 사태가 종국에는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그 막대한 경제적 거래도 막히고.
중국은 커질 수도 있지만, 중국은 중국대로 많은 문제가 있어요. 정치적으로 중국은 민주주의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있어요. 그것이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해요. 제가 볼 때는 중국이 중산층을 설득하면서 나가는 길도 생각하고 있다고 봐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미국은 중국을 계속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특히 일본과 같이 압박하고 있어요.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이고 중국이고 아주 민감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맞대응 하지 않으면 (중국 내에서는) 아주 역적같이 되고, 평화적으로 가자는 사람은 소수로 몰리게 돼요. 군사적으로 가는 게, 그런 식으로 돌출돼 가는 게, 결국에는 미국에도 도움이 안 돼요.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도, 민주주의의 힘을) 내다보는 철학과 견식이 미국에 부족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해요.”

위기는 누군가(네오콘) 대화를 가로막은 데서 비롯됐다. 그들은 대화보다는 위기에 더 흥미가 있다. 그런데 이 위기는 대화를 거부당한 측(북한)의 연속된 무리수에 한편으로 지원받으면서도, 쉽게 확대되지 않는다. 위기의 ‘에스컬레이트’가 아니라 어쩌면 위기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 위기는 좀더 냉철하게 분석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전략적 유연성,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등으로 표현되는 ‘한미동맹 약화’ 논란이다. 감상이나 감정, 선동이나 호들갑은 ‘요람을 흔드는 손’의 나팔일 뿐이다. 과연, 한반도의 위기는 한미동맹의 위기를 의미하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북한 봉쇄가 노리는 것 중국”

“제가 볼 때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앞으로도 동맹관계가 유지될 것이고, 또 그렇게 돼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맹관계는 하자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문서상으로 했다고 해서 된 것도 아니에요.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믿고, 그리고 서로 상대방과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되는 거예요.
미국에 대한 태도도 그렇습니다. 미국에 대해서, 좋은 친구로서 동맹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라는 것은, 안 되는 것은 안 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국내 일부 신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찍어내는 사설의 논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배은망덕’ 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끌끌 혀를 차는 김대중 전 대통령.

“우리는 지금요, 미국에 대해 줄 것 다 주면서 좋은 소리 못 듣고 있는 거요. 월남파병 해서 5천여명이 죽고, 1만6천여명이 부상당하지 않았어요? 이라크에는 영국 다음으로 우리가 파병하고, 지금 다 철수하고 있는데, 우리는 다시 그대로 둔다는 것 아니요? 미 2사단, 서울 지키는 최전방의 최고 무장을 한 2사단을 빼낸다고 하는데, 우리가 동의해준 것 아니요?
또, 용산기지, 그걸 지금 평택으로 이전하는데, 평택 사람들이 반대하니까 경찰까지 동원해서 누르면서 하고 있는데, 돈까지 대가면서 하고 있는 것 아니요? FTA는 국내에서도 찬반이 있는데, 정부에서는 그대로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요?
그럼 이렇게 미국에 협력하는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있어요? 프랑스도 2차 대전 때 미국이 살려준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라크 파병 안 했어요. 독일은 2차 대전 때 미국과 싸웠지만, 전후 부흥이나 통일할 때 미국이 도와줬는데, 이라크 파병 안 했어요.
왜 미국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는 다 놔두고, 왜 우리한테 도움을 잊었다는 이야기를 하느냐? 이번에 미국에서 온 분들에게 단단히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만만하냐?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또 있어요. 6·25가 왜 났냐? 당신들이 2차 대전 끝나고 나서 소련과 일대일로 회담해서, 우리에게는 한마디도 안 하고, 우리를 둘로 갈라버리지 않았느냐? 1,300년 동안 통일돼 있던 나라를, 당신네들 말 한마디로 갈라버리지 않았느냐? 그게 60년이 됐다. 당신네들이 냉전체제 들어가니까 결국 우리가 대리전 하다시피 남과 북의 동족이 싸웠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느냐?
왜 당신들의 책임은 생각하지 안 하느냐? 그때 당신들이 정 철수하려면, 우리가 철수한 뒤 북한이 쳐내려오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스탈린에게 오금을 박았으면, (북한이) 전쟁은 못 일으켰다, 이거예요.
공개된 KGB 문서를 읽어보니, 김일성이 남침하겠다고 하니까 스탈린이 말렸대요. 미국이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했어요? 한국은 애치슨라인 밖이다. 그런 소리가 공산당더러 빨리 남한 먹으라고 하는 거하고 뭐가 달라요? 그러니 미국도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 사람들도 맞다, 그래요.
지금 우리 언론이나 지도층들이 말들이 많은데, 정부가 아무리 밉고, 정당끼리 서로 뭐가 다르다 하더라도, 국가적 이익은 더 큰 것 아니요?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요.”

설령 상대가 미국이라도, 할 말은 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뭐가 안 되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의 최고가 바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절대 다시 안 된다, 그리고 북한 문제는 우리에게 주도권을 맡겨라, 어지간하면 북한은 우리 말 들어준다. 우리가 같은 민족이고, 임시로 갈라져 있는 것이지만, 통일을 해도 우리가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예를 들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왜 베트남과는 국교하면서 북한과는 안 하느냐? 6·25 전쟁 때도 북한과 대화했으면서, 왜 지금은 안 된다는 거냐? 제가 부시 대통령에게도 말했습니다. 과거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더러 ‘악마의 제국’이라고 해놓고서도 대화하지 않았느냐고 말이에요. 대화라는 것은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친구 사귀는 것은 아니라, 이거요.”

인정하고 싶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민들의 안보 불안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어찌 보면, 6·15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국민의 안보 불안 해소였다. 그런데 최근, 엉뚱하게도,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의 불똥이 안보 불안 조장으로 튀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대화에 응할 때”

“저는 군사 문제는 전문적 지식이 없지만, 이렇게 생각해요.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넘기든 안 넘기든, 미국이 한국 방위를 하고 싶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나가는 것이고, 한국 방위를 해야겠다, 그게 자기네 나라에 이익이다 하면, 안 나가는 거요. 그런데 한국 방위를 하는 게 미국의 이익인 거요. 왜냐하면, 미국이 만일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면,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북한이 중국의 힘을 업고, 중국의 힘이 휴전선까지 미칠 수 있어요. 그럼, 그 힘이, 그 압력이 부산이나 목포까지 가요. 그럼, 그 힘이 다시 바다 건너 일본까지 가요. 미국에게 일본은 태평양지역을 방어하는 데 최고의 요충지인데, 그렇게 압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미국이 지켜만 보고, 내줄 수는 없는 거예요.
미국이 북한을 자꾸 주먹으로 들이치다시피 하고 있어요. 북한은 국제적으로 장사도 못하고, 국제적으로 돈도 못 빌리고, 일본한테 돈(전후 배상금)도 못 받아오고. 이렇게 살 길이 없으면, 이러한 미국의 힘이 작용하면, 남한도 북한 도와주는 데 어려운 점들이 자꾸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럼 북한은 중국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국 네오콘들이 생각하는 것은, 북한을 중국으로 자꾸 밀어 넣는 것이니까.”

남한이 미국쪽으로 너무 치우쳐도 안 되지만, 거리가 생겨도 안 된다. 북한 역시 중국쪽으로 너무 치우쳐도 안 되지만, 거리가 생기는 것은 좋지 않다. 북한이 중국과 사이가 나빠졌네, 이제 북한은 완전히 ‘고아’가 됐네 하며, 일희일비 하는 국내의 세태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균형과 완충을 통한 공존과 교류의 지혜를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실질적인 자주와 통일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제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보니까, 그 말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절대로 중국에 대해서 의존적으로 하지 않아요. 자주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또 여러 가지 경계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북한이 살 길이 다른 게 없잖아요? 그리고 중국을 보면, 이제 거대한 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 하나 먹여 살리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여기에서 미국은 모순이라는 거요. 북한을 압박하고 봉쇄하는 것은 북한을 중국의 품으로 밀어 넣는 거요.
중국이 북한과 요즘 어떻다 하는 것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한 뒤 중국과 북한 사이가 어떻다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기분이 나쁘다는 거요. 그런 정도에요.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아무리 미워도 포기할 수 없는 그런 관계에 있는 거요.
중국 지도자들, 제가 만났을 때나 다른 분들이 만났을 때나, 북한에 대한 불평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북한을 포기한다거나, 적대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요. 북한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서, 미국의 힘이 남한과 함께 압록강까지 올라간다면 어떻게 할 거요? 그것은 중국의 국익에 심각한 문제가 돼요. 저는, 중국이 북한과 관계가 나빠진다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중국과 북한 사이가 나빠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북한을 안게 해줘야 해요. 그래서 북한에 중국이 다섯 들어가면 우리도 다섯 들어가면서, 서로 상생하고 서로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북한의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해줘야 해요. 그것이 우리의 이익도 찾고, 결국에는 미국의 이익도 찾는 거요. 대체 왜 이렇게 하지 않는지. 그게 문제입니다.”

인터뷰는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우리 내부의 문제를 질문할 차례다. 지금 이 순간,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우리가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는 여전히 한미동맹의 한 측면만 강조하는 세력과, 민족공조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현실적으로도 이 두 세력의 목소리가 가장 높고, 발언권도 가장 크다. 이른바 중간세력, 합리적인 세력이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전략은 없을까. 민감한 질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크로 대답을 시작했지만, 그것이 ‘정문일침(頂門一鍼)’이었다.


“남북정상회담 빨리 추진해야”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국민들을 많이 설득하십시오. (…웃음…) 우리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흡수통일은 안 됩니다. 월남식의 무력에 의한 통일도 반대하고, 독일식의 통일도 반대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평화공존 속에 점진적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전쟁은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미국과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지, 통일을 위해 의존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 다음에, 통일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되, 동시에 주변 4대국과 긴밀한 협력 속에서 해야 해요. 이 4대국이요, 우리 통일을 직접 만들 힘은 없지만, 또 그럴 생각도 없지만, 우리 통일을 방해할 힘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주 지혜로워야 해요.
세계에서 한국처럼 외교가 중요한 나라가 없어요. 왜냐하면 4대국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 아닙니까? 조선왕조 말기를 보세요. 청일전쟁, 러일전쟁, 거기에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는 것을 지원해주지 않았어요? 4대국이 다 우리 운명에 부정적으로 개입했어요.
우리가 한반도를 짊어지고, 다른 곳으로 안 가는 이상, 이 지정학적인 위치는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안보는 미국과 굳건히 유지하고, 한미일 공조도 유지하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북한과 대화하면서, 또 4대국과 함께 6자회담도 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해요.
그런데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해 가면서, 4대국의 지지를 얻어서 해야 해요. 독일도 주변의 지지를 얻어서 통일했잖아요? 하나라도 우리가 통일하는 게 그 사람들 국가이익에 손해가 된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 통일 방해해요. 그런 빌미를 안 줘야 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강대국에)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인터뷰 하는 동안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 세계 국가원수들 가운데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속내를 나눈 유일한 인물이다.

“북한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미국과 대화를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뭔가 해결책을 받으려고 하고 있고요. 그동안 상황이 더 나빠져 버렸지만,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든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해서 국제사회에 나가고, 그렇게 해서 살 길을 찾으려 해요.
제가 김정일 위원장한테 그랬는데,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라, 그렇게 해서 국제사회에 나가야 할 것 아니냐? 우리가 같은 민족인데 우리는 잘 살고 있고,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 북한도 못할 것 없지 않느냐? 지금 미국이 막고 있는데, 그것만 해결하면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양쪽 다 잘사는 조건에서 서로 ‘윈-윈’으로 통일하자,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김 위원장 말이, 자기도 굉장히 그것을 원하고 바라고 있대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미국인데, 북한은 핵도 내놓고 미사일도 내놓는다고, 작년 9월 19일 공동선언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제 미국이 실천으로 옮겨가며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기브 앤 테이크로 나가는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요.
결국은, 절대로 북한을 제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커다란 역효과가 날 것이다, 길은 하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거예요. 지금 남북관계가 얼마나 잘 됐습니까? 아까 박 교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남북간의 적대감이 크게 해소됐거든요. 북한 사람들이 이제 우리를 부러워하고, 우리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렇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남북관계는 많은 점들이 진전되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진전이 되고, 이보다 훨씬 더 분위기가 좋을 수 있는데, 누차 말씀드리지만 북미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답답한 거요.”


지난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부의 대북 특사 자격으로 북한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아쉬움은 비단 그의 것만은 아닐 터이다.

“저는 대통령 자리를 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어요. 국가의 외교 문제는 정부가 해야지요. 필요하면 특사를 보낼 수도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을 서둘러야 한다고 봐요. 정상이 만나야 문제가 풀려요. 저는 나이도 있고, 위치도 있고, 제가 큰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환경이 가능해지면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그러나, 카터 대통령은 그때,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 위주 정책에서 대화 국면으로 변할 때 간 거예요. 카터 대통령이 특사로 할 일을 미국 정부가 뒷받침 해준 거예요. 그러나 지금 저는 미국 정부를 대변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정부를 대변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어요. 특히 북미관계만큼은. 이것이 큰 차이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신신당부 했다. 내친 김에 참여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는 충고할 게 있는지 물었다. 마침, 참여정부의 전통적인 지지자들은, 참여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이 소극적이고 균형감이 떨어졌다며 우려하고 실망하고 있다.

질문이 끝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받았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짧게 끊어 답했다.

“글쎄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시간이 더 가기 전에 빨리 해야 한다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께서 자기 임기 중에 제가 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그런 계제를 만들어 놓아야, 그래야 이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남북관계를 바꾸지 못하게 돼요. 이렇게 남북관계에 대해 좀더 진전된 성과를 올리는 게 필요하고, 또 좋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미 말씀하셨잖아요? 어디에서든, 어떤 조건에서든 만나겠다고 말입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문제는 이미 풀린 거지요.”

세번에 걸친 6년의 투옥, 네번의 죽음의 고비, 수십년간의 망명, 연금, 감시 하의 생활, 네번의 대통령 도전, 그리고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사는 그대로 우리 민족의 역사다. 고난과 오욕을 자신의 대에서 마감하고, 영광과 번영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조국과 민족에게 마지막 봉사를 준비하는 팔순의 노 대통령.


“우리 힘의 원천은 민주주의”

“저는 현 정부가 미국과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길을 가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한국을 만만히 보는 나라는 없습니다. 없는데, 다만 이 한반도 문제에서 만큼은 우리가 주도권을 못 갖고 있는 게, 그것이 제가 볼 때는 미국을 포함해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미국이, 어느 정도 세월도 흘렀고, 그동안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 공헌도 하고, 실력도 발휘했고 그랬으니, 우리 한국에 대해서도 독일이나 프랑스를 대하듯이, 그렇게 존중하는, 특히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발언권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주는 게 옳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오늘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국민을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일생을 그렇게 살아 왔어요.
우리 국민은 세번의 독재를 좌절시키고 오늘날 반석같은 민주주의를 세웠습니다. IMF 때, 제가 1년반 안에 해결한다고 했을 때, 그때 야당에서 ‘그렇게 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는데, 우리는 약속한 대로 해내서 세계의 모범이 됐습니다. 누구도, 이 땅에서 옳지 않은 일 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없는 그런 나라가 됐습니다.
남북문제도, 국민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냉전이 지배하고 공산주의 반대가 이렇게 심했던 나라에서, 제가 북한 가서 공동선언을 만들어내고, 비료 주고 쌀 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퍼주기’다 뭐다 비난도 받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얻은 성과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게 민주주의였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한데, 하나는 우리처럼 잘난 국민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국민이 발언을 해줘야 해요. 또 하나는 지도자가 절대로 국민의 손을 놓으면 안 돼요. 반발 앞서 가면서, 국민이 안 따라오면 되돌아서 왜 안 오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국민이 올바르게 생각하면 그쪽을 따르고, 아니면 설득하고, 이렇게 해서 국민과 함께 가야 해요.
우리가 할 일은, 국민은 이만하면 괜찮으니, 나라를 잘 이끌어나갈 지도자를 잘 뽑으면 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도 보세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희망이 있는 나라냐? 지금 ‘한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중국 지도자를 만나보면, 어째서 우리 것은 안 되는데 한국 것은 중국에 와서 되느냐, 그래요. 그건 바로, 중국이나 우리나 지적 지향성이 강하고 교육 지향성이 강한데, 다만 한 가지, 우리가 피 흘리면서 민주주의를 했다는 거요! 이 민주주의를 한 힘이 창의력으로 승화된다는 거요! 그래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돼요.
젊은 사람들이 절대로 자포자기 하지 말고, 우리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민주주의 하면 돼요. 이 힘으로, 21세기 지식기반 시대는 지적 전통이 있고, 머리가 좋고, 창의력이 강하면, 어떤 작은 나라라도 커나갈 수 있어요.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긍지를 갖고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민주주의야말로 우리가 갖고 있는 힘과 지혜의 원천(源泉)이다. 이것이 바로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의 무게였던 것이다. 


인터뷰는 끝났다. 젊은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좋은 신문을 만들어보겠다고 해서 응락한 인터뷰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천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을 전했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이거 하시면서, 어려운 일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많은 언론기관들이 있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것 하려면 아예 안 하는 게 나아요. 똑같은 것을 하려면 할 필요가 없어요.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은 한국 사람에게 유럽을 소개하고, 유럽 사람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그런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를 배우고 읽을 수 있는 신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유럽이 동방에, 우리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렇게 안 되고 있습니다. 유럽은 이미 아셈을 갖고 아시아와 회의를 하고 있고, 우리 외환위기 때도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중동 문제가 워낙 커져서 정신이 없지만요.
우리에게 유럽의 인상이라는 것은 경제적 번영과 평화의 나라, 그리고 민주주의 본고장, 이런 것이잖습니까? 유럽은 아시아와 동아시아가 21세기를 끌고가는 중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서로 손잡고 가는 게 중요해요.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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