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노사정위원회 앞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이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에게 가한 집단 폭력 사태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자신들이 불참한 채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동일한 정세에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노동형제들에게 억압적이고 폭압적인 행위를 행사하는 것이 과연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민주적 노동조합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면 순리적 대화로 부단한 이해로 서로의 생각을 좁혀가고 토론하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며 지켜야 할 과정이다.

한국노총은 그간 우리 노동자들에게 직면한 노사관계로드맵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상의 유연성을 보이며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 동지들과 긴밀한 협의와 공조를 해 왔으며, 노동현안에 대해 연대와 공조를 끊임없이 같이 해 왔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조직적으로 합의할 수 없다고 스스로 빠진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뤘다고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한국노총 대표자에게 집단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의 차이에서 발생한 행위가 아닌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이기적이고 자기조직 중심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다.

입장이 다르면 폭력으로 해결해도 되는가

민주노총 동지들에게 묻고 싶다. 먼저 노동운동가들이 상대와 입장차이가 있으면 폭력으로 해결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금번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에게 가한 민주노총의 폭력은 지도부는 물론이고 조합원까지 가담한 폭력행위이다. 이 같은 행위는 노동운동이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옳다는 독선과 특권의식에 빠진 건 아닌지, 되묻고 싶은 것이다.

과거 우리는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행위가 갖는 정당성과 순수성 때문에 그 과정에서 어지간한 실수와 허물이 있어도 용납될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합법적 수단과 대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아니 현장의 조합원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폭력과 독선으로 점철된 노동운동의 노선은 결코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민주노총 동지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시기 이 땅의 많은 국민들이 우리 노동운동에 뜨거운 격려와 지지를 보낸 이유는 우리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며 사회공동체들의 불의에 대한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노동자들은 자신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는 노력에서 출발해 노동자와 서민, 우리 사회 전체의 낡은 구조를 개혁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해 왔고 사회적 공존에 대한 비전을 함께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운동은 대화는 개량이며 협의는 굴복이라는 전투적 사고에 사로잡혀 전체 노동자와 사회 전체의 공익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제 우리 노동계는 지난 11일 한국노총 위원장에 대한 폭력사태와 같은 무조건인 이기적 행위를 통해 무엇을 해결하려는 버릇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흑백논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회적 대타협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또 묻자, 대화와 협상은 개량인가

얼마 전 노사정위원회를 떠난 노동운동의 대선배이신 김금수 KBS 이사장은 우리 노동계에 대해 “노동조합의 정책참가(사회적 대화)는 제도적 요구투쟁의 중요한 수단”이라며 정책참가에 대한 노동계의 적극적 자세를 요구했다. 제도와 정책 개선은 기업과 권력의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고 그것은 노동세력을 체제 안으로 편입시키는 기능을 함과 동시에 체제 개혁을 촉진하는 기능을 지닌다고 역설하기도 하였다.

민주노총 동지들에게 묻는다. 노동형제들에게 돌아올 제도와 정책개선을 위해 노동계가 선행해야 할 대화와 협상이 개량인가, 아니면 과정의 문제인가.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 96년 노동계 총파업은 주요 정책과 제도 결정시 정부가 취하는 일방적 선택이 이해당사자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 예이다. 이후부터는 정부의 노동관련 정책과 제도의 결정은 노사 당사자와 공익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를 통해 진행돼 왔다.

이러한 지난한 역사를 민주노총은 현재 폄하하고 애써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한국노총은 금번 노사대타협이 효율적이고 충실한 사회적 대화체제로 접어드는 중요한 길목이라고 조직적으로 단언한다.

이는 노사관계의 발전과 사회통합 그리고 참여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필수적 요건이며 사회적 대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 사회적 대화 정착시키는 열쇠될 것

금번 노사정이 합의한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향후 이에 따른 충실한 협의가 전제된 사회적 대화를 정착시키는 열쇠로서 작용할 것이다. 우리 한국노총은 투쟁상황실을 비롯해 전조직적 긴장감으로 금번 노사관계선진화방안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입법예고를 대비해 왔다. 이는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지나친 기대보다 오히려 사회적 대화의 본래 기능을 향후 노사정이 논의할 사회적 의제에 대한 충실한 협의의 단초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금번 사회적 대타협은 우리 사회의 만성적 노사갈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타협을 위한 바탕 구실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축적돼 대타협을 낳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민주노총 동지들은 금번 폭력사태에 대해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사과하고 다시 사회적 대화체로 들어와야 한다.사회적 대화는 한국노총만의 차원이 아니라 노동자가 존재하는 전 산업·업종 및 지역 차원에서 중층적 체계를 통해 추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명분 내세워 반대하는 자세, 너무도 구태의연해

이제 우리 노동계도 우리 앞에 놓인 엄혹한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한다. 조직적 이해관계로 명분만 내세워 반대하려는 자세는 너무도 구태의연하다. 속셈을 드러내지 않고 남이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미온적 태도도 맞지 않다. 태도를 솔직히 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시기에 사회의 주체로서 함께 책임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한국노총은 위원장의 엄혹한 고민뿐 아니라 전조직적으로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져왔다.

우리 앞에 놓인 첩첩산중의 노동정세 앞에서 한국노총의 민주노총에 대한 연대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노총의 진정성을 진실된 사과없이 왜곡하고 한국노총의 고뇌와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노동운동의 미래와 희망을 어둡게 할뿐임을 민주노총도 분명 알아야 할 것이다.

지난 11일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가해진 민주노총의 폭력행위는 노동운동 위기에 앞서 민주주의 위기이며 사람운동의 근간을 뒤흔들 후안무치한 행위이다. 모택동의 전언처럼 “인민은 바다이고 우리는 물고기”라는 진언을 민주노총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인간의 체온없는 신자유주의 환경하에서 이제 과거의 노동운동 방식은 일대혁신을 맞이해야 한다.

이제 제살 깎아먹기식의 양대 노총간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비정규노조, 중소기업 사업장, 여성노동자들로 조직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지역별, 산별 형태에 대한 노동진영의 공동체적 고민과 실천, 정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노사관계를 변화시킬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치 영역에서의 노동계에 대한 지지 기반 확대, 광범한 중산층 부문을 포괄할 수 있는 온건현실주의 노선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한국노총은 그 길에 앞장 설 것이며 어떠한 폭력과 야만적 행위에도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에 함몰시키려 한다면 노동운동의 순수성과 정당성은 얼마가지 않아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고 말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자.

언제까지 빛바랜 깃발을 부여잡고 '폭력투쟁'을 외칠 것인가?
언제까지 대중이 모이지 않는 공간에서 '대화 없는 정책반대'를 외칠 것인가?
금번 폭력사태를 기점으로 민주노총의 입장의 차이를 존중하는 조직적 기풍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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