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제 많은 사람들은 국민연금 이야기만 나오면 지겨워 할 것이다. “또 국민연금이야!”, “차라리 없애버려!” 대다수의 반응들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국사회 냉소와 불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국민연금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하는 연금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비록 변명으로 들릴지라도 우리 노동자의 노후를 보장할 국민연금은 매우 소중한 제도이며, 우리 노동자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싸워서 지켜야 할 권리임을 말하고 싶다.

연금은 그래도 소중하다

현재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 사회적으로 여러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재정안정화 방안, 한나라당의 기초연금 도입, 소위 전문가라 일컫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그 많은 의견들 모두 개혁을 위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국민연금과 관련 어떤 얘기를 해도 먹히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불신’이다. 예컨대 재정안정화에 급급했던 정부의 기금고갈문제는 수정적립방식이라는 현 제도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 때문임에도, 이는 기금파탄론에 이어 오히려 “받지도 못할 연금”이라는 불신으로 발전했다. 저부담-고급여의 고수익비 문제는 현 제도의 장점보다는 오히려 ‘후세대 갈취론’이라는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략적인 한나라당의 개혁 방안은 국민연금 ‘불용론’을 더욱 확산시켰다. 요컨대 어떤 개혁논의가 나오더라도 국민연금의 불신만 부채질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대표적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죽어갔다. 순수하게 국민들의 적절한 노후보장만을 위해 설계되어 있는 공적연금의 장점은 왜곡되고, 그 틈새를 민영보험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의 미래를 시장에 맡기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금융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 확정급여를 약속하고 있는 국민연금보다 사적 이윤추구가 주된 목적인 민영보험이 더 우대받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서글프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표적인 공적연금이 죽어간다

결국 연금개혁의 방향이 잘못되고, 미루어질수록 노동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공단의 책임이 제일 크다. 지금까지 정부와 공단은 공적연금을 제대로 설명하고, 특성을 알리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수익률(많이 내면 많이 받는다) 등 민영보험의 논리를 무차별적으로 빌려와 사용했다.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도입했던 초기의 저부담-고급여 체계는 필연적으로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조정될 수밖에 없음에도, 그러한 논리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결국 국민연금의 불신이라는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정부와 공단은 당장 이를 그만두고, 세대내·세대간 연대에 기초하고 있는 공적연금의 특성을 정확히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사실 재정안정화문제는 현재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불신이라는 문제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은 40년 뒤에 있을 기금고갈의 문제보다 이 제도를 지속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라는 불신의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즉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보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현재의 소득파악 미비에 따른 대규모 사각지대 문제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받을지 안 받을지도 모르는데, 반쪽짜리 연금을 누가 가입하려 하겠는가? 더 큰 문제는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양극화에 따른 현실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사람들, 즉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의 대부분이 국민연금 가입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들에게 국민연금 보험료 9%는 딴세상 이야기다.

번지수 잘못 짚은 정부 연금개혁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은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 재정안정화 문제는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제도의 존립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마당에 기금고갈론 협박을 통해 재정안정화 방안을 관철하려 한다는 것은 제도의 이탈만 가속화할 뿐이다.

기금고갈은 수정적립방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의 고유한 특성이다. 두려워할 문제가 아니다. 어찌보면 부과방식을 취하고 있는 서구 대부분의 경우는 매년 고갈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급이 정지된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무려 40년이나 고갈될 위험성이 없다. 건강보험도 적자가 난다. 그래도 사람들은 대부분 걱정하지 않는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좀 부족하다 싶으면 더 걷고, 많다 싶으면 급여서비스를 확대하면 되는 사회적 합의 구조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올바른 개혁방향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합의구조를 만드는 데에 있다. 제도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공적연금에 대한 위상을 확립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이 도덕적으로 가장 비난받고 있는 것은 대규모 사각지대에 따른 반쪽자리 연금이라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있는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민연금에 한 푼도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았다. 서구의 경우 최고 GDP의 3~4%를 연금재정에 투여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정부는 도식적인 재정안정화론을 통해 연금에 관한 한 앞으로도 계속 손 안대고 코 풀려고 하고 있다. 대부분 노동자의 돈으로 앞으로 30년간 더 막대하게 축적될 연금기금을 통해 엄청난 경제성장의 열매를 가져가고 있는 데도 말이다.

조세 통한 기초연금이 정답

정부는 조세를 통한 보편적 기초연금 도입을 통해, 국민연금의 사회적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얼마 전에 제시한 65세이상 노인인구 45%에 월8만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은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범위와 수준에 있어 턱없이 미흡하다. 정부의 기초노령연금은 무늬만 기초연금에 지나지 않는다.

기초연금도 반쪽짜리 연금으로 만들 셈인가? 제대로 된 기초연금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초기 급여율을 낮춰 도입 비용을 낮추고 앞으로 조세개혁이 동반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을 OECD 또는 서구의 평균 부담률 정도로만 끌어올리면 된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이다.

한편 조세방식의 기초연금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연금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는 기여의 사각지대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연금만으로는 적정한 노후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로는 대다수 비정규직, 일용직은 여전히 국민연금 가입에서 소외된다. 이들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적정한 수준의 기초연금이 도입된다면, 이 문제는 전체 노동자의 연대를 통하여 해결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전체 노동자가 십시일반으로 저소득 사업장가입자의 연금보험료중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통해 사각지대 해결해야

현재 국민연금기금에 형성된 돈 180조원의 대부분은 사업장 가입자, 즉 우리 노동자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만들어진 돈이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노동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연금 개혁은 자본과 권력이 일방적으로 하려 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일부 오해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주인이 개혁에서 소외될 수는 없다. 올바른 국민연금 개혁 투쟁에 우리 노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동참해 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 싸움의 선봉에는 우리 사회연대연금노동자가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