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5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이미 10년 동안 유예해 온 조항을 또 5년 유예하자는 말이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물론 사용자와 정부, 정치권 내부가 ‘조용하게’ 시끄럽다.

복수노조 설립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이자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국제기준에 부합한다. 하지만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외국 어느 나라에도 없는 법 조항이다. 지급하라는 규정도 없고 지급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 문제만큼 간단한 해법도 없다. 그냥 헌법과 국제기준을 따르면 된다. 복수노조는 전면 허용하고, 전임자 임금지급은 노사자율에 맡겨 버리면 된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런데 노·사·정은 물론 정치권조차 이 간단한 문제를 풀지 못해 몇 년째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노총과 경총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지금 우리 수준에서 이 문제를 풀 능력이 안 되니 5년 뒤로 미루자는데 전격 합의했다.

이번 ‘유예’ 합의는 단순한 합의가 아니다. 이전 10년 유예까지 합하면 특정 법 조항을 무려 15년 동안이나 유예시키자는 ‘전대미문’의 합의이다. 더구나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앞으로 5년 동안이나 보장받지 못하도록 한 합의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그렇게 강조해 온 노사관계 선진화를 노사가 앞장 서 5년 동안 늦추자고 제동을 건 합의이기도 하다. 또 말이 5년 유예이지,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는 한편으로 노사가 ‘합의’한 것이다. 비록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노·사 합의’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치권은 그간 여야 가릴 것 없이 ‘노사자치주의’를 강조해 왔다. 지난해 비정규직법을 다룰 때도 정치권은 “내용보다 노사합의가 우선이다. 노동법은 노사가 합의하는 것이 최선이다. 노사가 모두 반대하면 입법 안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자, 이제 싫든 좋든 노사관계법안도 곧 정치권의 손으로 넘어온다. 그간 정치권의 '노사합의 최우선론'이 자신들은 발을 빼고, 노사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들이 아니었음을 이번에 확실히 보여줬으면 좋겠다. 진정 노사자치주의 실현을 위한 고뇌에 찬 발언들이었음을 보여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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