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에서 법과 원칙의 실종에 대한 경영계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불법 앞에서 공권력이 겸손(?)하여짐으로써 노사관계가 꼬이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면 과연 공권력은 ‘칼집 속의 칼‘로 바뀌었을까? 참여정부에 들어 노사관계가 한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한 건 정부가 외려 법과 원칙을 지나치게 내세웠기 때문은 아닐까?

참여정부는 그 출범과 더불어 노사관계정책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법과 원칙’을 양대축으로 삼되 전자를 앞세우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파업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삼겠다고도 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노사 당사자의 책임에 바탕을 둔 노사자율주의에 방점을 찍기 위한 조치이자, 노사갈등이 노정갈등으로 바뀌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화와 타협’을 접고 칼날을 세웠건만

그러나 참여정부의 이러한 의지는 채 석달을 넘기지 못하였다. 2003년 6월28일 철도노조의 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손해배상이 떨어지는가 하면, 16명에 이르는 대량구속 사태가 나고만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은 변곡점을 돌게 된다. 참여정부에 의해 구속된 노동자는 2003년말에 이미 2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법과 원칙’이라는 기조는 노동자의 구속에 머물지 않았다. 법을 통해 노사관계를 바꾸려는 시각이 극적으로 드러난 지점은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이라 불리는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었다. 노사관계에서 타협모델과 법치주의는 상호보완적이라는 인식이 결여된 채 법만 고치면 노사관계가 바뀔 것이라는 단순한 사고의 표현이기도 했다. 로드맵이 성공한다고 해서 노사관계가 개선될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노사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로드맵이 그 자체로서 노정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만 것이다.

사실 참여정부의 노사관계를 단적으로 말하면 노정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정갈등의 중심에는 공무원노동조합법의 제정에서 비정규보호법안의 입법화, 그리고 노사관계 로드맵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진행된 정부의 입법화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마저 파탄난 마당에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는 참여정부의 ‘참여없는’ 노동정책이 자리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분란만 일으킨 채 성과는 없는…

참여정부의 끈질긴 입법화 노력이 빚은 성적표 또한 참담한 것이었다. 비정규보호법안은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가 하면 공무원노조의 파업을 뚫고 기껏 만들었다는 공무원노조법은 시행도 해보기 전에 노사정대표자회의의 안건으로 오르고 말았다. 게다가 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의 허용은 한국노총과 경총의 합의에 의해 현행유지로 결론이 날 판이다. 이럴 바에야 무엇 때문에 지난 몇년을 법개정을 둘러싸고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빚어 왔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참에 누구를 위한 노동정책이었는지도 물을 일이다. 누군가는 희화화된 노동정책을 ‘제 풀에 칼춤 추다 제 칼에 다친 꼴’이라고 비유하고 있었다.

노사관계란 세력관계의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환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 노사당사자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도 이에 못잖게 중요하다.

더욱이 사용자측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그것이 사용자 편향적이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면 이는 정부 스스로 법의 권위를 저버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노조에 대해 ‘군기와 기강’을 앞세우면서 파트너십이나 노사상생을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06년 8월말 현재 구속된 노동자수는 125명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과연 참여정부에서 법의 집행은 ‘먹줄이 굽지 않는 것과 같이’ 공정하였으며, 그것이 노사관계의 개선이 도움이 되었는지는 묻고 또 물을 일이다.

결국은 참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대화와 타협이 없으면 법제도의 개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사관계의 전반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몇번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엄청난 수업료를 내면서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사실이 제대로 학습되지 못하였다면 노사관계의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