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을 둘러싼 혼란은 경영계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경영계 내부는 기업별로 노사관계 상황에 따라 이른바 ‘다수파’와 ‘소수파’로 첨예하게 이중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전임자’ 버리고 ‘복수노조’ 선택한 이유

올 상반기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경총 등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기업들의 ‘숙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만큼은 절대 포기 못한다는 게 일관된 경영계의 입장이었다.

실제 상반기 경총 한 관계자는 “경영계 내부에선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양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소리”라며 양보를 할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입장이 몇 개월 만에 바뀐 셈이다. 비록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5년 유예 합의로 사실상 더이상 주장하기가 무색하게 돼 버렸다.

경총은 전임자가 아닌 복수노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노사는 물론 노노간 갈등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어 노사관계의 불안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노조의 난립을 초래하는 한편 교섭체계 및 교섭권의 혼란으로 교섭기간이 무한정 길어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경총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조차도 학계와 정부의 경우 기업별 창구단일화가 아니라 한 회사 안에서 여러 번 교섭을 해야 하는 교섭단위별 창구단일화를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1사1교섭’ 체계가 무너지고 ‘1사다교섭’ 체계가 돼 산업현장은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란 이유도 대고 있다.

설사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된다고 해도 “총파업에 의한 노동계의 강한 반발과 실력행사로 조합수당 신설, 교통비 지급, 노조기금 조성 등의 편법지원 요구 형태로 나타날 경우 정치 시즌인 내년에는 자칫 노조전임자 급여 이상의 부담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정부는 전임자 급여를 일정 부분 지급하도록 하는 방안을 입법안에 넣으려 하고 있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사실상 사문화되고 경영계는 복수노조 부담만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경총의 입장이다.

기업간 찬반 입장 확연히 갈려…‘발등의 불’ 현대차

이같은 논리에 따른 노·경총 5년 유예 합의에 대해 기업들 가운데에서 강한 대형노조가 존재하는 현대·기아차는 반대 입장, 나머지 무노조 기업(삼성 등)과 노사협력 기업(LG, SK,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은 찬성 입장으로 확연히 갈리고 있다.

삼성 등 무노조 기업은 전임자가 없기 때문에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보다는 무노조정책 유지를 위해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가 지난 5월 경총에 가입하면서 복수노조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을 역력히 드러낸 바 있다.

또 노사협력 기업은 이미 노사간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복수노조가 들어서면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노조관리 비용이 증대될 것이란 판단에서 5년 유예에 찬성하고 있다. 바로 5년 유예에 찬성하는 이들이 경영계 내 ‘다수파’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입장이 다르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이미 집행부 경험을 가진 많은 현장조직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가 의도적으로 제2노조를 설립하지 않는 한 제2노조 출현은 기대하기 힘들다”며 “복수노조 허용은 현행 노사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라며 다른 입장을 보였다.

때문에 현대·기아차의 경우 더 시급한 문제는 전임자임금 문제라는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 단협 등에 따라 현재 모두 90명의 노조전임자가 인정되고 있고, 이밖에도 비공식 상근자, 임시 상근자 등을 포함하면 모두 218명으로 1년에 전임자 급여로 110억원이 나간다는 주장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5년 유예 합의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돼야 “노사관계 왜곡이 사라지고 원칙이 바로 잡힐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경영계 내 ‘소수파’인 현대·기아차는 정부안이 입법예고 되기 전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원칙을 바로 세우자는 하는 것”이라며 “만약 조건부 유예가 불가피하다면 금지 규정에 예외 조항을 두어 처리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정부의 입법예고안 발표가 임박했다. 경영계의 눈과 귀가 노동부의 입에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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