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지난 2003년부터 발전산업노조의 파업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세금을 들여 발전소 퇴직직원 모임에 운영비와 교육비를 줘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 규모가 올해까지 3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자부 장관이 이 퇴직직원 모임인 ‘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전사모)을 구성토록 각 발전회사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자금은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매년 지급되고 있다. 이 기금은 발전사 민영화 등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라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익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2001년 설치했다. 국회에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관련 예산은 정부 안대로 통과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직권중재 제도와 맞물려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산자부 장관 지시 따라 퇴직자 모임 결성

전사모의 모태는 지난 2002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발전노조가 38일 동안 벌인 파업이 종료되자 산자부가 파업 재발방지와 대책수립에 나선 것. 5개 발전회사에 대책반이 꾸려졌고 그해 5월에 발전회사 별로 ‘발전동우회’ 설립운영 방안이 만들어졌다. 산자부는 이를 근거로 최초 인원 500명으로 하는 규모와 운영방식, 소요예산 등 전사모 구성운영계획을 통보했다. 그해 9월 이런 과정을 거쳐 발족행사를 열었다.

신국환 당시 산자부 장관은 10월 정기국회에 출석해 “성공적인 구조개편 추진과 불법파업의 사전 예방은 물론 만일의 비상사태 때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서는 발전회사 퇴직 직원으로 구성된 전사모의 운영을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발족 뒤에도 전사모는 산자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산자부는 각 발전회사에 전사모 회원확충을 독려하는가 하면 회원 교육의 틀을 짜는 데도 적극 나섰다. 올해 8월말 현재 530명 가량으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애초 1,000명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예산 지원 첫해부터 예산을 과다 책정했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4년간 전력산업기반기금서 34억원 지급

지난 2002년 산자부가 국회에 제출한 구조개편 인력양성 세부 산출 내역을 보면 전사모 운영에만 15억원이 들어간다고 돼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일간 연수원 교육에 교육비가 매일 15만원, 여비는 20만원씩 이틀 분이 지급된다. 또 이틀간 현장교육이 있는데 여기에는 매일 근무비 15만원, 여비 17만5,000원을 준다. 한 사람이 교육을 한 번 받으면 150만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예상인원 1,000명에게 주는 교육비를 합하면 15억원이 된다.

하지만 이는 예산집행 첫해에 문제가 드러난다. 기획예산처가 15억원에서 7억원으로 예산을 축소하고 시간당 강의료를 8만원에서 3만원으로 조정한 것. 이듬해 열린 2003년 기금결산 심사에서도 전사모 운영에 7억2,100만원을 쓰는 등 집행실적이 매우 부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2004년에는 7억원으로 예산이 확정됐고 2005년에도 같은 금액이 배정됐다. 올해의 경우 5억원이 투입됐다. 한 발전소 전사모 담당자는 “회원수에 따라 발전사 부담이 결정된다”며 “교육비의 반은 기금에서 나머지 반은 발전회사에서 낸다”고 밝혔다.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한국발전교육원 관계자는 전사모에 지급하는 교육비는 1일 15만원이라고 확인했다. 기금에서 줄어든 만큼 회사가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전사모 회원과 회사가 맺은 약정에 따르면 교육참가 때마다 받는 금액 외에도 회사는 회원들에게 자기 계발비를 지급한다. 자기계발비는 정회원의 경우 매해 1인당 50만원, 준회원은 30만원을 준다고 돼 있다. 다만 자기계발비는 (부)정기적 모임이나 교육에 참여한 회원에 한해 지급되고 참석하지 않은면 지급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국회 예산 심사에서도 문제제기

문제는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퇴직자에게 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이 맞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예산을 세우는 첫해부터 떠올랐다.

2002년 10월에 제출된 기금운용계획안 예비심사보고서는 전사모 운영 등을 포함한 ‘구조개편 인력양성사업’에 대해 발전회사의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과 조화여부, 대체인력의 적합성 및 안정성, 재정지원의 타당성과 지원금액의 적정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의 파업에 외부조직을 개입시키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노조파업은 궁극적으로 노사간 합의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이 제 3의 집단이 관여할 경우 노사간의 불신과 갈등을 오히려 증폭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2004년 결산심사에서도 유사하게 이어졌다.

국회의원들도 문제를 제기했다. 2002년의 경우 당시 민주당 김방림 의원은 “노조 파업은 궁극적으로 노사간 합의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제 3의 집단을 결성시키고 그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노사간의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일반 전기 소비자에게 거둬들인 기금을 한전 퇴직자의 개인 용돈으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2003년에도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 역시 비효율적인 운영을 이유로 전사모 운영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부 대체 인력만 1,000명 넘어

실제로 발전교육원 한 실무자는 “참석자들은 교육이 활성화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오랜 만에 옛 동료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등 동창회 같은 성격”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이유를 제쳐 두더라도 친목 모임 성격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530명에 달하는 전사모 회원 이외에도 산자부가 준비하고 있는 용병은 또 있다. 이른바 ‘군 전력기술 인력’인데 그 인원은 2003년 250명으로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증가하더니 2005년에는 무려 50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에 대한 교육비도 기금에서 3억원이 지원된다.

결국 활용 가능한 대체인력만 1,000명을 넘어서는 셈이다. 발전노조 조합원이 6,2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20%에 육박하는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 조합원 신분이었다가 파업 뒤 가입대상에서 제외된 과장급 직원 역시 바로 투입된다.

이런 사정은 직권중재 제도와 함께 노조의 단결권을 침해할 것으로 보인다.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직권중재에 회부되고 곧바로 합법파업이 불법파업으로 바뀌는 순간 대체인력이 무혈입성하는 것이다. 직권중재를 축으로 순환이 발생하고 산자부가 여기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셈이다.

발전회사 노사업무실의 한 관계자는 “합법파업 중에는 사내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직권중재 회부 뒤에는 사외 대체인력을 투입할 것”이라며 “전사모와 상비군이 (파업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