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당과 야당은 모두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민생탐방을 전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양극화와 서민생활 악화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대책 마련에 소홀하던 정치권이 이제라도 서민경제 개선에 눈을 돌렸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의 이러한 노력은 안타깝게도 서민경제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의심을 받거나 당사자인 서민들로부터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경우 가장 먼저 착수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은 결국 대기업 규제완화 대책으로 나타남으로써 서민경제 회복보다는 오히려 대기업 살리기 정책이 아닌가 의심을 받고 있다. 야당의 경우도 민생탐방과 서민경제 지원대책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서인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민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 보다 중요하고 현실적인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 서민경제가 지금처럼 악화된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외환위기 이후 전개된 시장과 경쟁을 통한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과 정보통신산업 중심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이 서민경제 악화의 주요한 원인이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했고, 금융개혁이 투자부진을 초래했으며, 산업구조 개편이 내수를 침체시키고 투자의 고용효과를 악화시켰다.

물론, 이러한 경제구조 변화가 서민경제 악화의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최근 몇년간의 전국가구 가계수지를 보면, 서민층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또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보여준다. 소득하위 20%의 가구인 1분위 계층의 가계수지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이들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감소해 왔으나, 세금, 연금, 사회보험 등 비소비지출의 부담은 상위 20%의 가구인 5분위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더 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소비지출구조와 지나치게 높은 생활물가도 과도한 최저소비지출을 강제하기 때문에 가계수지를 악화시켜 왔다.

서민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은 분명히 경제구조 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서민경제의 악화는 상대적 소득감소뿐만 아니라 가계지출의 부담 증가에서도 왔다. 먼저 세금 등 비소비지출을 보면 하위 20%의 가구는 지난 2003년 1/4분기 이래 현재까지 소득 대비 분기별 평균 13.7%를 부담해 온 반면, 상위 20%의 가구는 12.9%를 부담해 왔다. 그리고 소비지출을 보면, 높은 사교육 의존과 고유가로 인해 필수적 소비지출이 큰 소비구조를 갖고 있어서 서민들의 소비지출을 크게 만든다. 최근 미국의 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 회사가 조사한 보고에 의하면, 서울에서의 생활비는 전세계에서 모스크바 다음으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는데, 이는 뉴욕의 생활비보다 1.22배나 높은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계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가구수가 무려 전체가구의 30% 정도에 이른다. 특히 소득수준 하위 20%의 가계수지 적자는 2003년 이래 계속해서 50%대의 적자율을 보이다가 올해 1/4분기에는 무려 78.7%의 적자율을 나타내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서민경제의 악화는 소득상승 부진뿐만 아니라 가계지출구조의 문제로부터도 초래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도 소득향상만이 아니라 지출구조개선 측면에서도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서민의 소득향상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증가, 중소기업 경영수지 악화, 영세자영업자 문제 등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발생한 소득악화 요인을 줄여나가야 한다. 한편 가계지출구조의 개선을 위해서는, 서민의 비소비지출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세제개혁은 물론 연금 등 사회보장부담금의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소비지출을 줄일 수 있도록 사교육비나 교통통신비의 지출을 감소시킬 대책이 필요하며, 단순한 물가안정을 넘어서서 생활물가를 크게 낮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그것도 대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투자유도를 통한 일자리 창출 대책만으로는 서민의 고용과 소득증대 효과도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피폐해진 서민경제를 회복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서민경제를 효과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논의들이 더 충분히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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