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3일 노사 상견례를 시작으로 진행된 보건의료 산별교섭은 지난 8월25일 오후 2시 16차 본교섭에서 산별5대협약의 가조인이 선언됨으로써 ‘자율교섭을 통한 협상타결’의 첫 번째 선례를 남겼다.

협상타결이 처음부터 예견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임금, 교섭구조 등의 몇 가지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가 어려워지면서 산별교섭은 8월 5일 노조의 조정신청, 8월 21일 노사의 조정안 거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중재보류결정, 8월 24일 노조의 파업돌입 등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사 모두의 자율협상 의지가 더욱 분명해지고 정부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산별협약의 역사적 타결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노사가 사용자단체 구성에 합의한 것은 올 4월 공식 출범한 금속사용자단체에 이어 두 번째 사용자단체가 탄생하리라는 예상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산별노사관계로의 전환이라는 한국 노사관계 시스템 변화에 보다 방점을 찍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사용자단체 탄생 예고…산별 노사관계로의 전환 ‘서막’

2004년 13일 파업, 2005년 직권중재 등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 달리 2006년 산별교섭이 협상을 통해 타결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교섭기간 내내 ‘대화를 통한 타결 의지’를 반복적으로 천명하였던 보건의료 노조의 일관된 노력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이 작년에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한 원인은 사용자 측의 태도전환과 정부의 지원에 있다.

2005년과 달리 임시 사용자대표 구성도 하지 못하고 상견례에 참석하였던 사용자측은 교섭을 거듭하면서 특성별 대표를 구성하는 한편, 자율교섭을 통한 타결로 어렵게 내부 의견을 모았다. 특히 직권중재 보류와 노조의 파업돌입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자율교섭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주목해야 한다.

직권중재에 회부될 경우 “협상안보다 임금인상률이 조금 높아질 수는 있지만 산별협약을 맺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손해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용자측은 산별교섭을 통해 노조와 협상하는 길을 선택했다. 불안하긴 하지만 산별교섭을 시작하겠다고 일단 결정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노사간 신뢰로 나아가는 첫 번째 징검다리를 놓았음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정부-노동부와 중노위의 적절한 지원 역시 평가되어야 한다. 중노위 특별조정위원회는 “보건의료노조가 계속 자율교섭을 통해 해결을 약속함에 따라 중노위원장에게 조건부 중재회부를 권고”하였고 위원장은 이에 기초하여 '중재회부 보류 결정'을 내렸으며 노조의 파업돌입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와 같은 태도를 견지, 자율교섭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노동부와 서울지방노동청은 8월 21일부터 밤샘교섭으로 진행된 노사협상 테이블을 지켜보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자율교섭을 주문하고 노사 간 이견을 조정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8월 25일 자정을 기해 실무교섭이 타결되었을 때 노사모두 노동부의 지원에 감사한다며 뜨거운 악수를 나눈 것은 결코 의례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대병원 조합원의 '허전한 주머니'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지만 보건의료 산별교섭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3년 동안의 산별교섭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났지만 기업별 노사관계에 익숙한 노사의 의식 및 관행을 시급히 해결할 구체적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3년간 교섭 혹은 직권중재에 의해 결정된 보건의료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전체산업 평균이나 보건산업 평균보다 낮다. 주5일제의 확대나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임금인상을 전제로 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규모가 크고 지불능력이 높은 병원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완화 및 규모별 격차완화, 공공성 의제 제기, 파업횟수의 축소 및 산별노사관계 가속화 등의 ‘사회적 기여’에도 개별기업 정규직 조합원 특히 대규모 병원 조합원의 경우 주머니가 허전하다. 더군다나 연세대의료원, 삼성의료원, 중앙병원, 서울대 병원 등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은 대규모 병원의 임금인상률이 많게는 2배 이상 높다는 사실 때문에 오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사회적 기여라는 명예만으로 버티기에는 이들의 일상의 삶이 고단하다. 또한 기업별 노조집행부의 권력이나 역할의 축소에 따른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직무급 전환 동반돼야

따라서 몇 가지 방법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하나는 임금의 경우, 규모 및 성과에 따라 보충협약 즉 ‘+α(알파)’ 방식의 타결을 하는 산별최저협약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2006년 산별교섭에서도 나타나듯이 사용자측의 거부가 매우 완강하다. 사용자측은 “보충협약=기업별 이중쟁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사용자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직권중재가 불가피하며 산별협약을 포기해야 한다. 다른 한편 유럽처럼 직무급이 일반화되어 있어 규모별 격차가 적은 경우 성과급 배분을 통한 격차 확대를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규모별 고용지위별 격차가 큰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보충협약이 오히려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는 문제가 있다. 2006년 보건의료노조가 ‘+α(알파)’ 방식의 타결을 결국 철회하고 최저협약이기보다는 일종의 표준협약 방식으로 타결한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임금보다는 여타의 근로조건과 관련하여 정규직 조합원의 불만을 해소하면서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현행의 3조 3교대를 4조3교대로 바꾸고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올려 작업장 혁신을 이루어내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직무급으로의 전환이다.

규모나 고용형태가 아니라 직무에 따라 서로 다른 임금단가를 결정하고 직업훈련 및 교육을 결합시켜 숙련에 따른 임금인상구조를 설계하며 승진구조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비용을 줄이면서도 고용안정을 확대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연공급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저항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또한 한국사회가 직무급에 생소하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이외에도 노사공동의 직업훈련 체계를 만든다거나 연금관리를 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교섭구조를 설계하자

다음으로 교섭구조의 효율성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병원규모별로 지불능력이 매우 다르고 심지어 노사관계마저 차이가 있다. 여기에 민간병원과 국공립병원의 임금결정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2006년에는 난제였다. 국공립병원의 경우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에 의해 임금인상률이 결정되기 때문에 경영이 보다 어려운 중소병원보다 임금인상률이 낮게 책정된다.

이 때문에 올해 국공립병원 노사는 산별협약이 타결되기 이전에 중노위의 조정안과 산별교섭 사용자측 안인 2% 보다 높게 임금인상을 합의하였고 산별협약에서 이것을 추후 인정하였다. 결국 국공립병원의 임금은 2006년 산별협약에서 사실상 제외되고 기업별 노사 결정사항이 되었다. 교섭이 4개월이나 지속된 것도 이와 같은 문제 때문이다. 결국 산별노조와 교섭구조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산별 노사가 현실에 맞는 다양한 교섭구조를 설계하여 규모별 격차를 완화시켜가면서 점차 교섭구조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 특성별 교섭을 보다 활성화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것이며 제한적으로 대각선 교섭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중교섭·이중쟁의 금지’ 조항 필요하다

또한 기업별 쟁의권 포기 문제 역시 교섭구조의 효율화와 관련해서 해결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산별교섭은 기업별 쟁의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현재 기업별 쟁의권 포기를 산별에서 합의할 경우 기업지부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탈퇴할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법적으로도 무효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장은 교섭구조 효율화가 산별의제로 제기될 경우 사실상 산별협약이 불가능해진다. 올해 산별협약이 가능하였던 것은 노사가 이 문제를 산별의제로 다루는 것을 막판에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피할 수만은 없다.

사실 교섭구조는 노사 모두 많은 검토와 공론화가 필요하며 정부의 의지 역시 중요하다. 따라서 당장에 산별의제로 하기보다는 별도의 기제를 만들어 협의사항으로 다루면서 상호 공감대가 형성되면 산별의제로 채택, 전격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용자단체 구성 이전에라도 교섭구조의 효율화를 위한 실무협의팀을 만들거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업종별 협의회가 실제 이루어진다면 여기에서 최우선의 의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산별협약효력확대, 임금경쟁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올해도 산별교섭 안착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보건의료산업의 경우 필수공익사업장이며 직권중재 회부 대상이라는 조건이 노사 자율교섭의 여지를 줄인다. 물론 최근 직권중재의 유연한 운용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노사, 특히 사용자측의 경우 직권중재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협상에 임하는 관행을 보인다. 때문에 직권중재 폐기가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으며 최소서비스 유지 등의 별도의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산별교섭이 안정될 경우 산별협약 효력확대 역시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사용자들의 경우 산별교섭 결과를 보면서 교섭에서 제기된 임금인상률보다 적게는 1%, 많게는 5% 정도 더 얹어주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 교섭참여율을 낮추고 산별교섭의 비용효과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산별노조의 경우 규모별 고용지위별 격차를 완화시키는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임금의 하향평준화라는 비난(?)에 직면하여 불가피하게 임금인상에 주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방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산별협약효력확대이다. 산별협약 전체에 대해 효력확대는 어렵다 하더라도 개별조항 혹은 특정지역 등에 한해 효력확대가 가능하다면 산별노사관계가 안정되고 노사관계의 비용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이외에도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문제, 기업별 교섭뿐만 아니라 산별 등 초기업별 교섭에 대해서도 성실교섭의무 부과문제, 산별노조의 조합활동 보장 범위 및 내용 문제 등 다양한 개선사항들이 있다는 점에서 노사정이 시급히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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