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서울고법은 아이캔(주) 사옥관리팀 노동자들이 SK(주)를 상대로 낸 ‘종업원지위확인소송’ 항소심 판결문에서 SK와 아이캔의 관계를 ‘위장도급’이라 밝히고, SK가 아이캔 노동자들을 직접 채용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이들 사이에는 직접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본지 8월23일자 참조>

이는 법원이 판결문에서 “아이캔은 SK의 자회사인 인플러스(주)가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로 형식상으로는 독립법인으로 운영돼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SK와 모자(母子)회사의 관계로써 사실상 경영 및 인사에 관한 결정권을 SK가 행사해 왔다”고 밝힌 데서 볼 수 있듯 아이캔이 용역도급계약의 기준인 인사노무관리상의 독립성과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을 갖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법원이 밝힌 SK의 위장도급 실태는 이렇다. 우선 법원은 SK와 아이캔의 관계를 모자(母子)회사로 규정했다. 아이캔은 범아건물관리(주)에 이어 97년 4월부터 SK와 용역도급계약을 체결하고 SK 울산공장 사옥 시설관리와 경비 등을 맡고 있다. 아이캔은 SK가 운영하는 SK신협이 전액 출자해 96년 11월 설립된 후 SK의 자회사인 인플러스가 주식을 100% 인수한 회사다. 인플러스의 주주 대부분과 아이캔의 역대 대표이사 및 이사가 SK의 전·현직 임직원들이라는 점, 아이캔이 전적으로 SK의 업무만을 도급받아 그 도급금액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점 등이 법원이 아이캔을 형식상으로만 독립법인이라고 본 근거다.


아이캔의 직원 채용도 SK가 주도했다. 이창열씨 등 아이캔 사옥관리팀 직원 14명은 SK 총무팀장과 총무지원팀장, 인사팀 과장이 참석한 면접을 통해 96년 범아건물관리에 고용됐고, 97년 4월 아이캔에 고용승계 되었다가 SK의 인사발령에 의해 SK 총무팀으로 파견됐다.

아이캔 직원들에 대한 업무지시와 작업지시, 근무형태 변경도 SK가 직접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용역도급계약서에 아이캔의 현장대리인을 두고 SK가 이 현장대리인을 통해서만 작업지시를 하도록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또 아이캔 직원들은 업무처리 내용을 업무일지로 작성한 후 SK 직원의 결제를 받았다. 용역도급계약서에는 도급업무 수행에 필요한 기계, 공구, 소비재는 아이캔이 자신의 비용으로 조달하도록 규정했으나 실제로는 컴퓨터 등 사무기구와 차량, 자재, 설비 등을 SK가 부담했다. 업무재분장과 4인3교대 근무제를 주·야간 당직제로 바꾸는 근무형태 변경도 용역도급계약서 변경 없이 SK 총무팀에서 직접 실시했다.

아이캔 직원들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 SK 총무지원팀 주관 아래 안전관리교육 등 신입사원 교육이 실시되었는가 하면 담당 분야별로 현장부서에 투입돼 SK 직원들로부터 교육을 받기도 했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교육을 수료한 직원의 수료증에는 ‘SK(주) 울산’으로 소속이 표기돼 있었다.

조직 편성과 근무태도 관리도 SK 직원들과 같았다. 15명의 아이캔 직원들은 SK 총무팀에 근무하는 사옥설비원으로 편제되었고, 비상연락망이나 팀 구성표에 SK 직원들과 함께 편성됐다. 또 SK가 직원들에 대한 근태기록부와 업무일지에 확인·서명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근무시간과 근무실적, 휴가자, 연장근무자 등 근무상황을 관리했다.

아이캔 직원들의 임금이 SK 직원들의 임금 인상폭과 시기에 연동돼 결정됐다. 법원은 “아이캔 직원들의 업무수행능력을 SK 기준으로 평가해 급여에 반영했다”고 지적했다.

아이캔 직원들은 SK 직원들과 같이 직장예비군, 민방위대원, 직장의료보험에 편입됐고, 식당, 휴양시설, 체육시설 이용요금도 다른 협력업체와 달리 SK 직원과 같은 금액을 적용 받았다. 명함과 사원증도 SK 소속으로 발급 받았고, 2003년 6월까지는 SK 직원과 같은 작업복을 지급 받았다.

SK노조에 따르면 SK는 2003년 인사이트코리아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고 아이캔 사옥관리팀 노동자들이 소송을 준비하자 2004년부터 위장도급을 회피하기 위한 작업들을 진행했다. 아이캔 직원들의 출입표찰과 작업복 로고를 변경하고 급여일과 직장예비군 편제 등을 바꿨다. SK가 지급한 업무용 컴퓨터가 회수됐고, 업무용 차량, 자재, 공구, 사무집기류 등의 소유권이 이관됐다.

SK노조와 아이캔 사옥관리팀 노동자들은 이번 판결이 SK텔레콤 등 SK그룹 내의 타 사업장과 비슷한 위장도급 사례를 가지고 있는 다른 업체에 미칠 영향 때문에 SK가 대법원 상고를 강행했다고 보고 있다. 이창열 아이캔 정규직투쟁위원회 대표는 “인사이트코리아에 이어 아이캔 사례가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노동자에 대한 법적책임을 회피하고 저임금을 위해 SK와 유사한 고용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노동자에게는 희망적인 판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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