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합리적인 근거 없이 집회를 금지하고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특권층 눈치보기’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매일노동뉴스>의 취재 과정에서 대한항공이 본사와 조양호 회장 자택 앞에서 열리는 집회를 막기 위해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회사 직원들이 부서별로 조를 편성해 경찰서에서 밤을 새우는가 하면 조회장 자택 주변 주민들을 만나가며 집회를 못하도록 해달라는 서명을 받고 다니고 있다.

회장님 집 앞은 경찰이 지킨다?

대한항공 해고자동지회가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집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며 종로경찰서에 신고한 것은 지난달 25일 오후 4시45분께다. 부당해고 철회와 원직복직을 촉구하기 위한 집회였지만 해고자동지회가 조 회장 집 앞을 집회장소로 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종로경찰서는 이틀 뒤인 27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 8조3항의 ‘생활평온침해’를 이유로 옥외집회 금지통고를 해고자동지회에 보내왔다. 조 회장 집 앞이 1종 주거지역에 해당되고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외국인 학교가 있어 집회를 개최하면 타인의 사생활 평온 침해 및 학습권 침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거주자 또는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때’라는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이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담당 경찰관은 “일대주민 40~50명과 외국인 학교에서 시설보호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해복투(해고자동지회)는 한 번도 집회를 한 적 없지만 대한항공 하청업체에서 한 두 번 했는데 심각했다”며 “해복투는 생계가 걸린 문제여서 하청업체보다 집회 성향과 강도가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강서경찰서의 집회장면 채증도 이유로 제시됐다. 그는 “추측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확연하게 드러나는 불법행위가 없더라도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며 “게다가 주택가 밀집지역이고 정문 앞에 인도가 없어 집회를 할 여건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찰 진실게임 점입가경

담당 경찰관의 주장은 일관성이 없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40명은 거짓말이고 15명이 (시설보호)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시설보호 신청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그는 “외국인 학교는 일반학교와 방학기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학교에 가서 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만일의 사태를 우려한 학교가 시설보호 요청을 했고 지역 주민들의 서명도 받았을 것”이라며 “주민 15명과 학교가 27일 보호 요청을 했고 집회금지 통보도 이날 하게 됐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담당 경찰의 설명과는 달리 이날 해당 외국인 학교는 담당 부서가 텅 비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국인 학교는 프랑스계 ㅎ국제학교로, 해당 업무를 보는 교사들이 프랑스로 연수를 떠난 상태여서 26일에는 프랑스인 교장과 경비만 있었다는 것. ㅎ국제학교의 한 경비는 “시설보호신청은 우리가 마음대로 못한다”며 “행정실에 얘기해야 하는데 선생님들이 지난달 24일 연수가고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경찰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프랑스인 교장에게 직접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교장이 조양호 회장 주변 주택을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은 셈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는 게 금세 밝혀졌다. 이날 학교가 시설보호 요청을 하도록 한 것은 경찰이 아니라 대한항공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경비업무를 봤던 한 직원은 “대한항공 직원 2명이 학교로 왔다”며 “대한항공 회장이 학교 주변에서 살고 있는 모양인데 그 해직자들이 집회신고를 해서 교장이 염려스러워 내려와 요청을 한 듯하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들이 대한항공 명함을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들 대한항공 직원이 주민들의 서명을 받으러 갔다”고 덧붙였다.

직원들 밤새 본사 앞 집회신고 막아

대한항공이 직원을 동원해 집회를 막은 것은 비단 조양호 회장 집 앞만이 아니다. 대한항공 본사 앞 집회 성사는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 7일부터 사흘 동안 강서경찰서에서는 대한항공 직원과 해고자동지회원들이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밤샘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해당 업무를 하는 대한항공 직원들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고자동지회에 따르면 애초 대한항공 총무팀에서 집회신고를 도맡아 했는데 최근에는 인사팀과 영업팀이 여기에 합류했다. 특히 이들 해고자들은 대한항공이 ㅇ동호회라는 회사 내 조직을 활용해 해고자들에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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