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수해로 온 나라가 난리를 겪는다. 피해 주민의 핏발선 분노와 규탄 성명서 낭독 같은 언론의 “인재” 타령에도 불구하고 매년 어김없이 반복된다. 금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9시뉴스는 빗줄기 속에서 수해현장을 취재한 기자의 생생한 보도와 함께 전국 곳곳의 수해 현황을 소개한다. 그리고 수재의연금을 기탁한 따뜻한 이웃들의 명단도 줄을 잇는다. “인재” 수해가 마침내 인간애로 극복되는 한편의 휴머니즘 드라마. 9시뉴스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이 빛나는 수해극복 휴머니즘 드라마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그룹과 사회봉사단 차원에서 홍보-보도자료를 낸다. 삼성은 7월19일 수재의연금 50억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탁하는 것을 필두로, 경남 진주시에서는 삼성중공업 관계자들이 대곡면으로 달려가서 대곡천 둑 붕괴로 피해를 입은 비닐하우스 등을 복구하는데 앞장섰고, 서울 양평동에서는 삼성전자 서비스팀이 파견돼 제방 붕괴로 침수된 가구의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 수리 서비스를 실시했다. 삼성그룹이 모든 사업을 팽개치고 수해복구에 매달리는 것 같아 안쓰러워 보일 정도이다.

“사회공헌을 하지 않는 기업은 망한다”고 거듭 강조해 온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 이렇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은 홍보-보도자료에 “… 감동을 주고 있다”, “… 훈훈한 화제다”는 제3자 보도 형태의 평가도 넣어 게으른 언론의 받아쓰기까지 도와주는 자상함도 보인다. 물론, 수해복구에 앞장선 일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감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삼성그룹이 자랑하는 사회공헌의 백미이니까.

삼성이 수재의연금을 기탁하기 사흘전인 7월16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는 안양천 제방이 무너지는 재앙이 발생했다. 붕괴사고가 발생한 곳은 지하철 9호선 7공구 공사구의 제방으로서 터널공사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안양천 둑 일부를 절개한 뒤 금년 4월말 다시 복구한 부분이었다. 열흘 이상 홍수가 지속되지 않는 한 제방의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던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의 의견서에도 불구하고 단 이틀만에 제방이 붕괴되었던 것이다. 언론이 “인재”로 규정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침수지역 주민들은 “비 좀 왔다고 둑이 터지는 도시가 어떻게 국제도시냐”, “이 동네에 60년을 살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고 개탄했다. 한 언론은 서울에서 시가지 수해 침수 사고가 발생한 것은 1998년 이후 8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양평동 안양천 제방붕괴 사고의 원인을 추적한 언론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기사 제목은 책임 주체조차 불분명한 “인재” 수준이었다. 물론, 언론의 관행적인 사고주체의 인터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시공사가 바로 건설부문 국내 시공능력 제1위, 삼성물산이었던 것이다.

삼성물산측은 사고 발생 1시간전까지만 해도 “재해위험 없다”고 보고했고, 사고 발생 후에는 “비가 오기 전에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수차례 점검했다”, “제대로 복구공사를 했지만 비의 양이 많아 예측 수위를 넘어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사고의 책임을 부정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거짓말은 몇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제방붕괴 당시 실제 수위는 110m로서 최대 홍수수위 114m에도 못 미쳤다는 것이다. 제방 복구공사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콘크리트 호안블록 덧씨우기 작업, 둑 내부 성토 작업 및 지반안정화 작업, 철제 시트파일 박기 작업 가운데 단 한가지 작업에서라도 부실공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둑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삼성물산이 세가지 작업 모두를 철저하게 부실시공한 완벽한 부실공사였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번 사고로 양평동 인근 7,800가구, 2만여명에 긴급대피령이 내려졌고, 700여가구가 침수되었고, 연기를 거듭해 온 지하철 9호선의 완공은 다시 3개월이상 지연되게 되었다.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했던 삼성재벌의 부실공사. 삼성재벌을 빛나게 만드는 수해-수재의연금의 연례행사. 삼성재벌이 병주고 약주는, 대한민국은 수해공화국인가?

비가 올 때마다 삼성재벌이 공사한 제방이 붕괴되지나 않을까, 삼성재벌이 담당한 지하철구간을 지날 때마다, 삼성재벌이 지은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삼성재벌이 제조한 차를 탈 때마다, 삼성재벌이 만든 도시락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전전긍긍해야 한다면, 삼성재벌이 만드는 그런 “위험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면, 나는 삼성재벌의 사회공헌을 단호히 거부하겠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수해 내놓고 수해복구로 호들갑을 떠는 “삼성식 사회공헌”이 아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삼성재벌도 다른 기업들처럼 제대로 물건 만들고, 탈세하지 말고, 노동조합 만든다고 납치-협박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기업경영을 하는 것이다. 삼성재벌에게는 무리한 요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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