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 발표가 연기됐다.

당초 정부는 2일 오전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열어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을 확정·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이날 결정하지 못하고 한차례 더 당정협의를 거친 뒤 일주일 안에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 24일 당정협의를 거친 바 있고 정부안을 확정·발표가 다음 수순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갑작스럽게 발표가 연기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동부 “예산 확보 차원 여당과 더 협의”

이날 노동부는 공식적으로 “오늘 회의에서는 그동안 추진경과를 보고받고 대책내용을 검토해 최종 합의하는 절차였으며 부처간 이견은 없었다”며 “오늘 발표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여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대책 마련을 정부에 여러차례 건의해왔고 예산 확보 등은 당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므로 당정협의를 거쳐 최종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달 24일 당정협의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에 따른 정부 차원의 예산 증액이나 정규직화 규모에 대한 추계치가 없는 상태에서 협의됐다는 것. 그러나 예산 확보 차원에서 당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현재 정부가 대략 추정한 예산 증액 및 정규직화 규모에 대한 보고를 한 뒤 최종 협의를 통해 발표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날 국정현안정책보고회의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따져본 전체 소요 예산과 정규직화 규모가 보고됐으나 노동부는 이날 정확한 수치를 확인시켜 주지 않았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규모는 정부와 국회를 통해 5만~8만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산도 당초 알려진 2천억원 규모에는 훨씬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처간 이견·재계 요구 등 연기 배경 복잡”

그러나 이날 발표가 연기된 배경은 더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부처간 이견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예산과 정규직화 규모 관련, 주무부처인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그동안 재경부, 행자부, 노동부, 기획예산처 등 관계부처와 충분히 협의해 의견조율이 된 것”이라며 “이날 회의에서도 부처간 이견은 없었다”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재계가 최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에서 정규직 전환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한 것에서도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김 의장이 의욕적으로 경제단체를 만나가며 빅딜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에서 재계의 요구를 무시하기가 어렵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실제 재계는 그동안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이 민간에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꾸준히 제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같은 분위기는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일부 우려의 목소리로 표출되고 있다. 이강래 열린우리당 의원은 최근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정부 운영면에서 행정의 효율이나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며 “상시직이라도 핵심업무를 맡은 노동자가 아니라면 비정규직이나 외주위탁 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후퇴 안돼”…재계 “효율적이지 않다”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노동계는 “벌써부터 정부 의지가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태진 공공연맹 부위원장은 “처음엔 정부가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재계와 관료의 반발에 밀려서 퇴색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각 부처별로 예산수립 및 전환규모 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면서 역설적으로 정부의 의지가 퇴색되는 한편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재계의 반발 역시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 부위원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 초안의 상시업무 종사자의 정규직화란 원칙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며 “앞으로 발표가 연기된 기간 중에 이같은 원칙이 훼손되고 완화돼선 절대 안 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반면 재계는 정규직화 전환에 대한 ‘재고’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이동응 경총 전무는 “현재 모든 조직이 경쟁시스템으로 탄력적, 효율적으로 가는 데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은 거꾸로 가는 것 아니냐”며 “효율적일 수 없으니까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이 전무는 “일률적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민간에 압박으로 작용할까봐 우려된다”며 “정부가 따라오라고 해도 기업은 따라가기 힘들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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