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우진교통 동지들께 커다란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뻤고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밖에 없구나 하며 각오를 다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한 가지는 공장에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공장에 들어감으로써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이 웃는 그 날을 기약하고 싶습니다.” <5월 28일 서울사무소 앞 문화제, 강필선 조합원의 투쟁사 中에서>


에스보드, 그 약속을 지키다

“아빠, 회사 돌아가면 에스보드 사주세요!”

투쟁을 시작한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말했다.

“그러마.” 투쟁이 이렇게까지 길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 때, 강필선 조합원은 별 고민 없이 약속을 했다 한다. 그러나 다시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뀌어 새로운 봄을 맞이하도록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아이에게 단순히 에스보드를 사주겠다는 약속만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이에게 회사에 돌아가겠다는 것과 에스보드를 사주겠다는 것, 두 가지 약속을 했던 것이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그의 마음에는 부담감과 함께 반드시 회사로 돌아가서 아이에게 꼭 에스보드를 사주겠다는 각오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사연이 작년에 청주에서 있었던 집회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마침내 서울사무소 점거농성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 그는 아이와 했던 두 가지 약속 중 한 가지를 지키게 된다. ‘에스보드’ 이야기를 접한 지역의 우진교통 조합원들이 돈을 모아 강필선 조합원에게 에스보드를 선물 한 것이다.

“동네를 애들하고 같이 걸어가다 보면 우진교통 버스가 지나가요. ‘저 버스 아저씨가 너 에스보드 사주신 거야.’ ‘어? 진짜에요?’ 걔가 뭘 알겠어요? 하지만 늘 걸어가면서도 우진교통을 보면 남달라요. 감사하고 죄송하죠. 아직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사를 못 드렸는데, 회사에 돌아가게 되면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강필선 조합원은 승리에 대해 낙관적이다. 아이에게 공장으로 돌아가야만 할 수 있는 선물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참 자세 안나오는 일이죠”

“크린룸에서만 십 년을 일했어요. 회사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거든요. 반도체를 생산하기 때문에 일 년 365일 온도 24℃에 습도 46%에요. 그래서 우리는 추운 거 질색, 더운 거 딱 질색이라. 차라리 회사에서 잔업 하는 게 낫지. 그런 우리가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추웠겠어요.”

이런 특수한(?) 근무조건 때문에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한겨울에 공장에서 쫓겨나 투쟁을 하게 된 하청지회 노동자들이 느낀 추위는 다른 사람들의 몇 배에 달했다. 현장 안에서 스막복을 입고 일하는 강필선 조합원에게는 두꺼운 옷이 없다. 그가 공장 밖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형 마트에 가서 패딩바지와 무릅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장만한 것이다.

함께 조합 활동을 하던 동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귀마개를 선물해 주어 2004년 겨울을 보내는데 요긴하게 쓰기도 했었다. 내가 귀마개 얘기를 듣고 웃자 “참 자세 안나오는 일이죠!” 하며 민망해한다.

천막 사수하기도 힘들던 첫 겨울 그 귀마개를 선물했던 동생은 매서운 바람이 익숙해질 무렵 노조를 탈퇴했다. 다른 질문을 하라며 화제를 바꾸는 강필선 조합원은 “형이 가면 난 정말 의지할 데가 없다.”는 한 조합원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가면 저 동지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책임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느님 맞습니까?

“주일인데 교회 못 가셔서 어떡해요?”
“새벽에 일찍 내려가서 예배보고 올라왔어요.”

일요일인 5월 28일 오후, 당연히 교회에 가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말을 꺼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을 들었다. 청주 내려간 김에 상경하던 날 갖고 올라오지 못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성경책도 갖고 올라왔다 한다.

“강집사님!”

내가 강필선 조합원을 부르는 호칭이다. 성실한 기독교인인 강필선 조합원은 늘 조합원들의 안전과 승리를 위해 기도를 한다. 그리고 이번 경우처럼 언제 공권력 침탈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나 큰 집회가 있으면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농성장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성경책을 읽는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조 가입을 하는 것부터 집회 참여 등 활동 초기에는 “하느님 맞습니까?”를 수없이 물어야 했다. 특히 전경들과 대치할 때 많이 괴로웠다. 하지만 이 길이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1년 6개월 간 그는 하청지회에서 성실한 조합원으로 활동 할 수 있었고, 그의 굳은 신앙은 오히려 투쟁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사회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기에 그는 노조가입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투쟁 때문에 전도 활동을 못하는 것은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었는데, 조합원 몇 명이 교회에 나오는 것도 그에게는 큰 기쁨이다.

“형 기도 덕 많이 봤죠.”

조합원들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동안 안 다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상자가 많았음에도 큰 사고 없이 지내온 것이 강필선 조합원의 기도 덕분이라고 얘기해준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와 함께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여보 당신에겐 참으로 미안하구려…

“이젠 마음의 준비가 됐네요. 하청업체의 삶, 아니 비정규직 노동자의 위태한 삶을 저를 통해 만 천하에 낱낱이 알리고 싶네요. 이 사회의 바른 눈을 통해 하이닉스·매그나칩 대기업의 비도덕성을. 비정규직은 십년 이상 일해도 A4용지 한 장의 정리해고 안내문에 언제든지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우리 조합원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내 한 목숨 던져 평화적 해결을 맛볼 수 있다면 참으로 마음 편히 갈 수…사랑하는 제현아, 하은아. 늘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기 바란다. 늘 엄한 모습으로 야단 쳤던 아빠 용서하고, 엄마 말씀 잘 들어라. 여보 당신에겐 참으로 미안하구려…”

지난 겨울, 큰 아이 제현이 나이와 같은 11년 간을 하이닉스 반도체에서 하청노동자로 살아 온 강필선 조합원은 강남 서울사무소 농성장에서 유서를 썼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매년 백 만 원이 갓 넘는 임금과 기약할 수 없는 미래,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면서 열심히 일하면 넉넉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살 줄 알았다던 아내, 그리고 두 아이들에게 썼던 그 유서는 에스보드 이야기에 이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허공에 날리는 종이를 보며 저의 마음은 자유로웠습니다. 이 필체에서는 동지들의 강한 의지가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4개월 후인 5월 26일 저녁, 그는 같은 자리에서 동지들의 편지를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이 날 낮, 12층에서 농성중인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심정을 적은 ‘삐라’ 백 여 장을 창밖으로 뿌린 것이다. 편지에 쓰인 한 자 한자를 읽는 그의 목소리에서도 역시 강한 의지가 묻어난다.

“야, 이제 회사 들어갈 때 됐나 보다!”

이번 상경투쟁을 끝내고 청주에 내려간 후 강필선 조합원을 포함한 몇몇 조합원들이 침낭 삼십여 개와 집회 때 입던 상복 백 여벌을 빨았다. 근처에 있는 공장 샤워실 배수구를 막아 놓고 빨래감에 세제를 뿌리고 이삼십 분 동안 발로 밟은 후에 물을 뿌려서 헹구었다. 빨래가 끝난 침낭과 상복은 천막 안과 밖에 깔고 널어 말렸다.

“그걸 빨아놨더니 우리 조합원들이 뽀송뽀송하고 너무 좋다는 거에요. 한 동지는 ‘야, 이제 회사 들어 갈 때 됐나보다! 하나하나 정리하는 거 보니까.’ 하더라구요.”

그는 남은 침낭 다 빨고 요까지 다 빨고 나면 회사 들어 갈래나 보다는 말을 덧붙인다.



1년 6개월 간 투쟁을 하면서 생계 때문에 새로운 일들을 참 많이도 해봤다. 어린이날에 아이스크림 장사도 해봤고, 고속도로에서 깃발을 들고 교통안내도 해봤다. 또, 명절 때는 도로에서 오징어며 물을 팔다가 단속반에 쫓겨 다니기도 했었다. 얼마 전에는 다른 조합원 몇 명과 함께 산에 가서 칡을 캐보기도 했다.

“다 경험이죠. 회사 다니면 못하잖아요. 내 성격엔 할 수 없는 일들인데, 얼마나 좋아요. 사람들 앞에서 쑥스러워 말도 잘 못하는데, 마이크 잡고 말도 해보고.”

강필선 조합원이 인사를 하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의 모습이 금새 사라진다. 다음 번에 만날 때는 정성껏 빤 스막복을 실은 이 자전거가 십 년간 그가 일했던 정든 일터로 향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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