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를 중단하라는 민중진영의 목소리가 서울시청 앞에서 응집된 형태로 표출됐다.

노동자, 농민, 학생, 빈민 등 전국 각지에서 운집한 10여만명의 민중들은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개최된 ‘한미FTA저지 2차 범국민대회’에서 “국가 경제 전반과 주권, 민족의 운명까지 한꺼번에 완벽하게 파괴하는 한미FTA 협상이 국민적 의견수렴이나, 토론, 사회적 합의도 없이 또다시 일방적으로 강행되는 참을 수 없는 역사적 폭거에 직면해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세균 한미FTA 저지 교술학술공대위원장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졸속협상을 걱정하는 오늘, 국민의 머슴인 정부가 폭력경찰을 앞세워 국민을 몰아내고 호텔에 깊숙이 숨어 오직 미국대표들과 마주하는 처참한 광경은 군부독재의 살기와 이완용 일파의 광기를 동시에 연상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재 한미FTA를 둘러싸고 지배블럭과 민중진영의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면서 “노무현 정권이 이번에는 쉽게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은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조 위원장은 “정부가 한미FTA를 체결하면 무역에서 단기적으로 4조 손해, 장기적으로 5조 손해, 고용이 단기적으로 8만5천개 감소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국내총생산이 1.99% 상승, 고용이 장기적으로 10만개 늘어난다고 강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무역 손해가 점점 늘어나고 농업, 금융, 서비스업, 제조업 등이 다 망하는데 어떻게 생산이 늘고 일자리가 생기겠냐”고 비난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9년간 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왔으나 공장을 새로 지은 적이 없으며,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시키고 기업의 값을 올린 다음 팔고 나가는 게 지금까지의 행태였다는 주장이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지난 6월 1차 협상에서 금융과 서비스를 전면 개방하되 상대방 국가에 영업소, 대리점, 현지법인 등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국경간 거래를 허용하는 데 합의하고, 상대 국가의 부품이나 현지 인력을 일정비율 이상 고용하는 고용의무를 완전히 면제하는 투자자 의무부과금지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도 생산이 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더 늘 수 없도록 정부가 합의한 것이며, 생산도 고용도 점차 줄어들게 만드는 한미FTA를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무금융연맹 정용건 위원장은 한미FTA로 한국사회는 미국자본의 '투기천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골드만삭스가 진로를 샀다가 팔면서 3조원의 이익을 남기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면서 4조 3천억원을 챙겼다”며 “지금도 이 지경인데 100% 다 개방하면 우리 경제는 희망을 잃게 되고, 투기자본의 천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수용했던 우리 경제가 지금 내수경제의 완전한 파탄에 신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 위원장은 또한 “한미FTA는 1997년 IMF를 빌미로 미국이 강요한 개방과 정리해고, 규제철폐와 공기업 사유화(민영화)를 협상이라는 이름으로 아예 100%까지 밀어붙이려는 미국의 새로운 강압”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각계 대표들의 발언 이후 터져 나온 “민중을 팔아먹고, 나라를 망치는 노무현 정권은 퇴진하라”는 구호에 운집한 10만 민중들이 일제히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FTA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지배블럭과 민중진영’의 투쟁에서 민중진영의 세가 빠른 속도로 집중되고 있어, 향후 지배블럭이 협상중단을 포함한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더 큰 ‘대충돌’이 예상된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전망이다.

한편, 이날 한미FTA 저지 범국본은 “온 국민이 총궐기해 망국적인 한미FTA 막아내자”라는 대국민 호소문에서 “한미FTA는 온국민의 삶과 미래를 송두리째 위협할 제2의 을사늑약이요, 한일합방”이라고 규정했다.

범국본은 또한 “정부가 국민들의 의사를 짓밟고 끝내 한미FTA를 강행할 경우 국민과 함께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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