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노조 250명 조합원들의 금강산 방북이 있던 7월5일 새벽, 속초에서 금강산으로 출발하는 일행들을 배웅하고 잠시 숙소에 돌아와 TV를 켰더니 독일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4강전이 한창이었다. 그러다 자막으로 급하게 속보라고 뜬 것은 ‘북한, 미사일 발사’였다. 진짜 쏘네….

정세를 벗어난 통일운동이 가능한가

이윽고 긴급하게 편성된 뉴스는 줄곧 ‘발사된 미사일이 몇개인지’, ‘미국과 일본의 반응은 어떤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김일성광장의 열병식 장면이며, 조선이라고 큼직하게 적힌 미사일의 발사 장면이며, 뉴스앵커의 격앙된 목소리며, CNN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백악관 대변인의 강경한 모습은 어쩐지 전혀 낯설지 않다. 하긴 93년도에도, 98년도에도, 지난 2005년도에도 몇차례나 되풀이된 상황이다. 매번 북미간 대화와 타협으로 결론짓고 갔음에도, 긴장은 또다시 반복된다. 정세는 왜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가.

7월5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십년 바라보는 남북노동자 교류의 한계와 과제’를 재미있게 읽었다. 양 노총의 통일사업에 대한 이러저러한 고민과 제언들에 상당히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아쉬움에 대한 지적에 한국노총 통일사업 담당 실무자로서 뜨끔하기도 했다.

특히 북의 노동자의 생활조건, 노동단체의 구성과 운영, 나아가 통일과정에서의 노동조건의 변화 등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 또한 전부터 절실하게 느끼던 바였다.

노동자 교류…양대노총과 직총 간에 온도차 있어

하지만 몇가지 내용들과 관련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고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에 있어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물론 통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제출하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양대노총의 통일사업에 대한 일정한 오해와 편견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노동운동진영에서 통일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소위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에 무슨 통일이냐”는 말처럼 통일을 고민하기엔 한국사회의 노동자의 처지와 조건이 너무 열악했다. 그렇다고 먹고살 만큼 되고 나서야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통일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활동가들의 꾸준한 노력이 노동운동 내부에서 계속되었고, 타 사회단체들과의 연대운동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통일사업에 대한 참여 기회가 점차 확대됐다. 그리고 노동운동 또한 우리사회 근본적인 모순의 해결 없이는 끊임없이 생존권을 침해받을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며 그 극복 방도의 하나로써 통일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6·15 공동선언의 발표였다. ‘남북통일’이 추상적인 구호로서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문제가 된 것이다. 남과 북의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는 자연스레 남북 노동자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고, 한번 불붙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통일운동은 다른 부문단체들보다 굉장히 빠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6·15 선언 발표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회’라는 남북노동자 연대조직을 건설하기로 합의하였으며, 5·1절 통일대회를 비롯한 공동행사를 통해 남북의 많은 노동자들이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을 거치며 통일사업 방향에서 그 중요성에 대한 남과 북의 방점에 미세한 차이가 나타났다(필자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한다).

양대노총이 통일사업에 더 많은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게 핵심적인 문제라고 판단해 산업별간, 지역간 교류를 확대하는 것에 중요성을 둔 반면, 직총은 이를 인정하긴 하지만 남과 북에 놓인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남북 노동단체가 더욱 큰 역할을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고 본다.

차이 속에 공동행동 모색도 진행

물론 이와 같은 갈등이 화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서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다. 남측 입장에선 남쪽 사회가 북과 달리 다양한 이해와 의견들이 존재하고,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 역시 각양각색이므로, 통일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다수 국민의 참여가 가능한 낮은 차원의 대중적 통일운동과 북녘 동포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계기를 확대하는 것에 중요성을 두는 게 타당하다. 반대로 북측 입장에선 당장 자신들의 숨통을 죄고 있는 외세의 경제봉쇄와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언급 없이 인적교류와 경제협력만 우선 진행하자는 남측의 주장에 대단한 비판의식을 가질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하며 요구되는 지점들에 대해 실천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기본이다. 양대노총과 조선직총이 올해 들어 ‘근본문제 해결’에 대한 공동의 목소리를 강화하면서도, 한편으론 5·1절 평양시 행사 등의 공동행사와 산별교류의 확대를 추진하는 등 교류의 폭을 넓히는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필자는 남북노동계가 민족모순뿐이 아니라 계급모순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에 일정 공감하면서도 예시한 방식들에 있어 또다른 문제의식을 가진다. 지난 60여년간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에서 살아온 남과 북의 노동계급은 각 지역에서 서로 다른 지위와 대우를 받아 왔으며, 이에 따라 노동자단체의 성격 역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에서 노동단체가 노동자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노동조합으로 발전해오며 국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일정한 저항성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체제에서 노동단체는 노동계급의 이익을 상당부분 국가가 보호하는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당, 국가와 일체성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노동’의 문제는 각국 혁명 후 과정에서 치열한 내부 논쟁과 권력투쟁으로 정립되어 왔는데, 북은 특히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의 수용에 따라 노동단체의 성격 역시 변화하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르게 자신들의 독특한 체제를 발전시키며 노동단체의 조합주의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북의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연대는 당면한 조건에서 중국, 베트남과도 다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북간 노동자 교류는 신뢰 쌓기 중

더욱이 아직까지 우리사회엔 국가보안법이 엄연하게 기능하고 있으며 과거 냉전시대의 불신과 대결의식 또한 존재하고 있다. 남북의 노동자가 만나 서로의 장단점을 배우는 것도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충분히 고무찬양죄에 해당할 수 있으며, 서로의 계급적 동질성을 느끼는 것도 냉전과 대립으로 인한 적대감의 해소가 선차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통일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체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잣대를 먼저 들이대는 것은 통일의 전제인 ‘신뢰 쌓기’를 포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현재 남북 노동단체 간 교류와 연대사업의 수준이 아직까지도 서로를 알아가며 이러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양 노총의 통일사업에 대해 ‘엄혹한 정세에 압도당해 노동자조직의 고유한 자기 내용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평가는 현재 진행되는 남북간의 논의와 고민에 대해 실사구시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일정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편, 개성공단의 예를 들어 북의 값싼 노동력을 좇아 본격적인 통일단계에 이르러 대규모 시설과 자본의 북한지역 진출을 예상하기도 하고, 지난 7·1 경제관리개선 조치와 같은 북의 개혁개방조치 및 실리사회주의 정책에 대해 국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방이라고 이해하는 흐름도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통일의 개념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즉, 북의 체제 전환과 함께 통일이 이루어지는 독일식 흡수통일을 기본 개념으로 상정한 것이라고 판단되는데, 6·15 공동선언의 중요한 의의는 바로 2항에서 밝힌 서로의 제도와 체제에 대한 인정을 전제하는 '우리식 통일'의 길을 열어냈다는 것에 있으며, 2000년 이후 전개되고 있는 통일운동은 바로 이러한 연합·연방제의 실현 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통일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비단 ‘엄중한 정세’에 대한 대응만이 아니라 통일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의 이익이 옹호되는 대안적 체제 구성을 위한 여러 논의와 연구들까지 포함된다. 그러기 위해 윤효원씨의 기고처럼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제출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것임에 분명하다. 물론 여기에 현실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통일운동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내용과 흐름, 또 그 전제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게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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