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월급날마다 열받는다. 직장생활 8년차인 A씨가 수령한 6월분 급여 실수령액은 270만여원. 320만원 급여 중 무려 50만원이 공제됐고, 그 가운데 국민연금이 17만원으로 가장 많다. “차라리 이 돈으로 보험을 들거나 저축을 하면 될 일인데….” 입이 저절로 투덜거려진다.

'열받는' 직장인 A씨

뉴스에서 보니, 2046년이면 연금 재정이 고갈된다고 한다. 돈은 매달 떼가면서…. 나중에 원금도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도 든다.

A씨는 얼마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특수직역 연금(공무원, 사학, 군인 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특혜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이 기억이나, 인터넷으로 급여율을 찾아봤다. 국민연금은 급여율이 60%인데, 공무원연금은 76%라고 한다. 지난해에만 6천억원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웠다고 하고, 매년 메울 돈이 더 커진다고 한다. 다시 열받은 A씨.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공평하다. A씨는 3번 직장을 바꾸면서 연봉을 조금씩 올려 왔다. 이번 직장도 얼마나 다닐 수 있을지 미지수. 직장에는 임원 몇명을 빼고는 10년이상 일한 선배 직원이 아예 없다. 매주 일요일 아침에는 토익시험 보러 가는 게 A씨의 고정 일과.

며칠전에는 같이 일하던 과장이 사표를 냈는데, “갈 곳이 마땅히 없다”며 한숨 쉬는 모습을 보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안 좋았다. “공무원은 정년 보장받으면 됐지, 연금까지 세금에서 떼먹어!”

A씨는 인터넷에 공무원 연금 관련 뉴스 아래에다 댓글을 달았다. “좋은 말 할 때, 세금으로 메운 연금 토해내라. 대기업보다 공무원 월급이 적다고 생각하면, 그만두고 연봉 많이 주는 곳으로 가든가. 철밥통만 지키면 되는 일 하면서, 떼먹는 것도 많다.”


'억장이 무너진' 공무원 B씨

공무원 B씨는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다가 댓글을 읽고 억장이 무너졌다. 하나같이 ‘철밥통’, ‘도둑놈’, ‘일 안하는 집단’으로 쓰여져 있다. 공무원이 된 지 17년. 생각해보면 참 고달펐다.

B씨는 속상하다. 이거저거 떼고 나면, 매달 손에 쥐는 돈은 230만원 정도. 20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이 정도 받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는 금융권에 정규직으로 취직한 조카의 초임연봉과 20년 일한 자신의 연봉이 비슷하다는 걸 알고 속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은 한 채 갖고 있지만, 집 살 때 대출 받은 거 생각하면 내 집이 아니라 은행 집이다. 아이들 학원비 대느라 외식 한번 느긋하게 즐기지 못하지만, 매달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채우며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다.

지난 몇년 사이에 급여가 좀 오르긴 했다. 하지만 처음 공무원 시작할 때만 해도 차비하기도 빠듯하게 받고 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박봉을 버티며 일해 온 이유가 공무원은 노후가 보장된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월급 받아서 저축은 언감생심. 연금 말고는 기댈 곳도 없다.

며칠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무원연금부터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속이 뒤집어진다. 월급은 안 올리고, 연금만 올리면서, 불만을 무마해 온 게 정부였는데, 이제 정부가 공무원을 매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속상하다.

이때 공무원노조가 떠오른다. 이럴 때 나서라고 매달 조합비를 3만원씩 내는 것 아닌가. 지난 2004년 파업 때 해임돼, 노조 중앙에서 일하는 구청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야, 노조가 이럴 때 나서야 한다. 우리가 무슨 특혜 받고 사는 사람들 아니지 않냐. 노조가 나서서 정부하고 연금 못 깎는다고 담판지어야 한다.”

'불안한' 공무원노조 활동가 C씨

공무원노조에서 활동하는 C씨는 요즘 불안하다. 유시민 장관의 연금 관련 발언 이후에, 공무원연금 문제로 각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할 말도 많고 열심히 대응은 하는데, 잘 먹히지 않는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단순비교 하면 안 된다. 공무원연금은 8.5% 낸다. 국민연금 4.5%보다 배 가까이 낸다. 거기에 퇴직금과 산재보험, 고용보험이 포함된 연금이다. 게다가 정부는 오랜 기간 공무원 급여를 인상하지 않는 무마책으로 연금을 이용해 왔다. 이제 와서….”

이렇게 핏대 세우며 기자들에게 말해봐야, 별로 ‘경청’하지 않는 분위기다. 결국 ‘기자놈들’이 묻는 건 한가지다. “그래서 양보할 수 있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양보? 어이가 없다. 언제 의견이라고 수렴이라도 해본 척이라도 하고 양보를 말하나. 정부 안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다. 주무 장관도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 한마디에 들썩하는 게 심히 괴롭다. 국민연금의 적대감이 공무원연금을 몰리는 게 힘들다. 한숨 쉬며,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는데, 전에 구청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B에게 전화가 왔다.

휴~. 한숨만 더해진다. 민주노총과 산하 연맹쪽 활동가들이 술자리로 향한다. 이 문제를 상의해 볼 생각이다. C씨는 불안하다.


'묵묵부답일 뿐인' 노조 활동가 D씨

민주노총의 한 주요연맹에서 정책업무를 하는 D씨와 여러 노조 활동가들이 술자리에 함께 앉아 있다. 여러 화제들이 돌다, 우연히 연금 문제가 술안주로 올랐다. D씨는 친구의 사례를 신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친구놈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을 했는데, 걱정꺼리가 없더라고. 노인네 살 집 있지, 연금 꼬박꼬박 나오지. 액수도 꽤 많아. 명절 때 선물 몇개 챙겨 드리는 것 말고는, 친구놈이 할 일이 없어. 정말 ‘만고 땡’이더라고. 그냥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면서 취미생활이나 하시면 되는데, 정말 부럽더라고.”

앞자리의 다른 활동가가 한마디 거든다. “공무원연금이 좀 받기는 받아. 국민 여론 차원에서라도 한번 조정을 해야 하는데….”

이때, 공무원노조에서 일하는 C씨가 술집으로 들어온다. 공무원연금이라는 술안주는 순식간에 치워졌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C씨가 말을 꺼냈다. “공무원연금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답하다.”

D씨가 답을 한다. “그거 사회 공공성과 조합원의 이익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잘못하면 소탐대실할 수 있다. 일단 연금 문제가 민주노총에서 논의되면, 특수직역 연금 문제도 다시 종합적으로 논의해 보자고.” 이때쯤, C씨와 D씨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종합적으로 논의? 이거 잘못하면 유시민 장관의 논리에 말리는 것 아니야?’(C씨의 생각)

‘근데, 공무원도 더 받기는 하는 건가? 한번도 수익률이 정리된 자료를 본 적이 없네.’(D씨의 생각)

'연금 폭탄', 공무원노조에 떨어지다

여기 소개된 A, B, C, D씨의 이야기는 실제 인물들이 실제로 겪은 일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출범한 지 4년, 법외노조로 남아 있는 전국공무원노조의 취약한 기반을 고려할 때, 특수직역 연금에 대한 국민적 지탄은 대단히 '위험한 정세'다. 미숙하게 대응할 경우 “자칫 노조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이라는 우려는 노동계의 중론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발로 시작된 이번 ‘연금 파문’에 대한 공무원노조의 입장은 ‘억울하다’는 식의 입장을 표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 또한 특수직역 연금과 국민연금의 제도적 차이를 설명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유시민 장관의 전술에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면서 “노조 내에서 대안 마련을 서둘고 있는 만큼, 정확한 안을 가지고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무원노조총연맹의 박성철 위원장은 “단순히 급여율의 차이만으로 특혜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퇴직금, 산재보험 등 민간기업에서 사용자가 책임지는 부분을 정부가 책임질 자신이 있는 건지부터 반문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노조가 한편 격앙하고, 한편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사이, 진보진영 내에서 특수직역 연금 문제에 대한 입장이 나올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특수직역 연금을 국민연금 급여율 인하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민주노총 내에서도 “두 연금 개정 논의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며, 함께 논의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들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연금정책 담당자인 이재훈 정책차장은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고, 내부 논의를 통한 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차장은 “7월 중으로 국민연금과 특수직역 연금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면서 “이 논의의 전제는 공적 차원의 충분한 노후보장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차장은 “이것도 깎고 저것도 깎자는 식의 정부 논리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공무원노동자의 입장만 반영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들을 특수직역 연금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조합원 4만명 중 2만명이 특수직역 연금 가입자인 보건의료노조는 연금 문제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할 일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특수직역 연금은 기본적으로, 안전한 직장에서 장기근속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도가 설계됐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근속연수가 짧은 병원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이익이 없다.”

이주호 실장은 “내부 논의를 더해가야 하겠지만, 일단 연금 문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할 것”이라면서 “득실뿐만 아니라 산별노조의 사회연대 정신에 맞는 판단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소극적 대응 안 될 일”

또한 한국노총의 입장은, 국민연금과 특수직역 연금의 통합쪽으로 기울고 있다. 강익구 한국노총 조직국장은 “특수직역 연금에 대한 공격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공무원연금의 급여수익이 국민연금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임으로 더이상 일반회계예산 지출을 늘리지 않는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강 조직국장은 담당자의 사견을 전제로 “기존 특수직역 연금 가입자의 연금은 그대로 두더라도,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국민연금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공무원노조의 소극적 대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은주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공무원노조가 특수직역 연금의 여러 특성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서둘러야 할 때”라면서 “과도한 혜택에 대한 논란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논란 속에서 정부는 올해말, 특수직역 연금에 대한 개정안의 초안을 내올 것으로 보인다.

오건호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특혜시비에 휘말린 특수직역 연금 문제를 오래 끄는 것은 결국 공적연금 체계 구성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진보진영이 공세적인 안을 마련해, 논란을 사회공공성의 문제로 돌려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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