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의 기관장 임기가 이달로 만료되지만 기관장 선임을 둘러싼 잡음으로 업무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경우 이사장 추천위원회 구성 문제가 지난 22일에서야 마무리됨에 따라 오는 28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추천위원회 구성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2주간의 공고와 후보심사,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장관의 임명 등 행정절차를 고려할 때 아무리 빨라도 8월 초가 지나서야 새로운 이사장이 업무를 시작할 수 있는 형편이다.

노동계와 사회시민단체는 이 같은 문제의 핵심에는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정산법) 기본정신을 훼손하면서까지 산하기관의 기관장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려는 보건복지부의 횡포가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복지부, 정산법 어기고 이사장 추천위 독식

건강보험공단은 '정부 산하기관 관리기본법(정산법)'에 따라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사장 추천위 구성과 운영에 관한 정관 개정안을 만들어 지난 5월3일 복지부에 제출했다. 건강보험법 제16조 2항에는 건강보험공단의 정관 변경을 복지부가 승인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이사장을 새로 선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바로 이사장 추천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추천위원의 수를 5∼15인으로 한다"는 내용의 정관을 복지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건강공단이 제출한 정관 개정안에 "이사장 추천위 총 위원의 과반수를 복지부 장관이 추천하는 자로 한다"는 내용을 새로 삽입해 일주여 뒤인 11일, 건강공단에 돌려보냈다. 이는 새 이사장 추천 과정에서부터 복지부의 입김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당시 복지부는 "건강보험법이 건강공단 이사장 제청권을 복지부 장관이 행사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책임과 권한의 일치'라는 측면에서 이사장 추천 위원의 과반수를 복지부 장관이 추천하도록 변경 인가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복지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사장 추천위가 3명의 후보를 복지부 장관에게 추천하면, 복지부 장관은 이 중에서 2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부의 발상은 정산법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 정산법은 정부부처 산하 기관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다. 정산법은 이를 위해 과거와 같은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기관장을 뽑을 수 있도록 기관장 추천위 구성을 의무화하고 추천 위원 선임권을 산하 기관 이사회에 부여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이 추천위의 과반 이상을 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이사회는 애초의 정관 개정안 원안을 그대로 재의결해 지난달 18일 다시 복지부에 인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임기 만료 열흘도 채 남기지 않은 지난 22일에서야 이를 승인했다.

이사장 추천위 모두 복지부 관료로 채워라?

하지만 복지부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사장 추천위는 건강보험공단과 달리 구성에서 잡음은 없었지만 5명의 민간인 추천위원을 제외한 4명의 정부위원을 모두 보건복지부 고위관료로 단수 추천하여 구성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사장 자리에 오르는 하마평을 보면 5.31 지방선거에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보의 정치적 보은 인사 등이 주요하게 거론이 되고 있는 상황으로, 낙하산 인사가 재현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이사회 비상임이사인 진영옥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같은 복지부의 독식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추천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28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 문제는 또다시 논란의 소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7일 보건의료노조는 “보건복지부의 행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선임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보건복지부 뜻대로 운영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며 “행정자치부산하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5명의 공익위원 중 공무원이 2명, 문화체육부산하의 국민체육진흥공단은 4명 전체가 비공무원,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공단은 4명 중 공무원이 2명 등 다른 정부부처의 정부 산하기관의 기관장추천위원 구성을 보면 공익위원에 해당부처 공무원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번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추천위원회 노동계 후보자 명단에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추천위는 정산법에 따라 경제·노동·법조·학계·언론 등 분야에서 19명의 후보를 선정해 이중 5명을 선임한다. 노동분야에서 추천위 후보로 선정된 사람은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노동시장연구본부장과 장대익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최상림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대표 등 3명. 민주노총이 빠졌을 뿐 아니라 노동연구원이 노동계 후보로 선정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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