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우리나라 산별운동의 역사가 다시 쓰여진다. 이름하여 ‘슈퍼 산별 위크’다. 금속연맹은 24개 사업장이 이번주 26일부터 30일까지 산별전환 투표를 동시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현대, 기아, 대우, 쌍용자동차, 대우조선, 현대미포조선, 현대제철 등 이름만 들어봐도 그동안 한국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던 사업장들이 줄줄이 투표에 나선다. 이번 산별 전환투표 성공 여부는 올해는 물론 내년 복수노조 시대 한국 노동운동의 향방을 가늠 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운동 위기 논쟁을 거치면서 최근 노동계 내부에서는 산별노조 대안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모든 노조의 사업계획서에 산별추진 경로와 일정표가 올라가고, 산별을 주제로 수많은 토론회가 열리고, 온라인-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산별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하지만 논쟁의 끝은 늘 허전하다. 과연 지난 논쟁들이 산별운동에 얼마나 실천적으로 기여했는가는 회의적이다. 이런 산별이 좋고, 저런 산별이 나쁘다는 식의 문제제기는 왕성한데 실천은 늘 제자리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사실 이제 산별 토론회와 논쟁에서는 동의반복만 있을 뿐 더이상의 새로움은 없다. 지금은 100번의 산별교육과 토론보다 1번의 산별전환과 산별교섭 성공사례가 더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금속연맹의 산별전환 투표는 그동안의 공허한 논란을 잠재우고 실천적으로 산별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8년전 산별노조를 만들고 올해 3년차 산별교섭을 진행 중인 산별노조 간부로서 산별노조 전환 투표의 성공과 전면적인 산별적 노사관계 재편을 위해 몇가지만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길을 가고 있는 한국적 산별노조운동에 있어서 그 건설 과정과 발전 경로에 있어서 관념적인 그림그리기나 과도한 기대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의 산별노조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척박한 땅에서 산별운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무늬만 산별, 관료주의 위험성, 현장 공동화, 현장투쟁 약화’ 등 부정적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몸이 약해 건강하려고 마라톤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뛰다가 죽는 사람도 있어’라는 식으로 충고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그리고 과도한 기준에 의한 평가는 이미 ‘만들어서 진행형인 산별노조’와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기업별노조’와 ‘여전히 기업별로 남아 있는 기업별노조’ 간에 작은 실개천이 아닌 큰 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게 된다. 이런 실천적 차별성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오십보백보식’ 산별논쟁은 작은 역사적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따라 배울 수 없다.

서울 가본 사람하고 안가 본 사람하고 말싸움하면 늘 안가 본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현실의 실천에 대한 과장된 주장과 일방적인 매도보다는 최소한의 존중과 경청이 필요하다. 미래는 현재의 공과를 딛고 나아가는 것이다.

산별이 되면 달라진다. 확실히 달라진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이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내용을 불러온다. 재정과 사업의 집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업이 가능하다. 산별노조는 안으로 모든 노동자의 우산으로서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밖으로 산업정책에 개입하면서 산업적 사회적 영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지금 당장 양적 단기적 성과를 뛰어넘어 상향식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노동조건, 교육, 의료, 주거 등 사회복지 투쟁을 가능하게 한다. 기업별노조 시 구두선과 구호에 그치던 사업들이 실제 사업과 투쟁으로 배치된다. 산별노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의 발판이 되고, 새로운 투쟁의 무기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우려도 존재한다. 하향식 평준화? 사람들은 보건의료협약 10장2조 논쟁 등 좋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대병원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조직혁신운동과 함께 5대 산별협약을 요구로 내건 3년차 산별교섭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4만 조합원은 물론 40만 보건의료 전체노동자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실제 일부의 제기처럼 하향식 평준화가 진행되었다면, 아니 되고 있다면 지금처럼 산별교섭의 확대와 사업 진행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최근 들어 산별노조로의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

관료주의? 현장공동화? 그것은 어떤 조직에서나 예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지만 우리 주체의 힘으로 극복 가능하다. 사실 지금 우리는 ‘미래의’ 산별노조 관료주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기업별 단기 이익주의, 기업별 노사단합구조, 기존 관성과 비리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가 더 큰 화두가 되어야 한다. 동네축구식으로 던져진 이슈에 몰려다니는 운동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아마추어리즘보다는 한발 미리 준비하는 운동, 보다 현대화된 운동, 수세를 공세를 바꾸는 정책기능과 대안능력을 강화하는 운동을 더 고민해야 한다.

현장 공동화는 말로만의 우려가 아니라 실제로 현장을 발로 뛰면서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바탕으로 조직적, 정책적 사업을 전개하면 극복할 수 있다. 산별이 그런 사업에 아무런 장애요인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다 체계화된 산별조직운동은 그런 현장사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결국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지 말자.’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때문에 현실에서 꼭 해야 할 일을 방치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현재의 산별노조가 많은 한계가 있다는 점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기존 산별노조 지도부는 앞서가는 조직으로서 더욱 더 긴장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다양한 문제제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산별노조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점들은 기업별노조가 완전한 형태의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있지 못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조직 규모의 한계, 낮은 조직률에 따른 노동시장 장악 미흡, 불안정한 산별교섭 구조, 산별적 법제도의 미비로 인한 한계’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지금 산별노조운동에 대한 한계와 문제점들을 조속히 극복하는 길은 문제점을 열번 지적하는 것보다 모두가 산별노조로의 조직 전환을 이루어내고, 기존 산별노조와 새로이 합류하는 산별노조가 힘을 합쳐 기업별 의식, 법 제도와 싸워나가면 된다.

그동안 금속, 보건, 금융노조 등이 한국의 기업별노조 체제라는 망망대해에서 외딴 섬으로 고립된 채 산별운동의 1세대를 이끌어왔다. 이제 2세대 산별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2세대 운동을 위해 양대노총은 ‘산별 전환사업과 기존 산별연맹 통폐합 - 기존 산별노조의 산별교섭 정착 - 노사관계 로드맵 논의과정에서 산별교섭 제도화 방안’을 총괄 지휘하면서 사회적으로 산별 담론을 공론화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사측과 정부, 언론에게 강조하고 싶다. 대립하되 상호 예측 가능한 노사관계, 투명한 노사관계, 사회공공성 강화와 사회적 연대 책임을 다하는 노사관계를 원한다면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은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의 충만한 힘과 에너지를 탄압하고 억누르려고만 하지 말고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그 투쟁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산별노조 전환 없이 노동운동 변화는 불가능하다. 산별적 노사관계, 산별교섭 정착 없이 노사관계 발전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노동조합의 새로운 역할, 노동조합과 새로운 만남을 원한다면 사측은 산별 전환과정에서 어설픈 개입과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산별적 노사관계의 사회적 순기능에 주목해서 노동운동에 대한 즉자적 비판을 넘어 대안적 방향으로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두 길…금속 노동자의 어깨에 미래 달려 있어

이제 2007년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우리 앞에는 두개의 길만이 놓여 있다.

‘금속연맹 산별노조 전환 성공 → 화섬, 사무, 민간서비스, 공공 등 연이은 산별노조 건설 → 금속, 보건, 금융등 기존 산별노조의 산별교섭 연착륙 → 정부의 일방적인 노사관계 로드맵을 저지하고 경제민주화와 사회적 연대, 평등으로 가는 산별적 노사관계 법 제도화 → 2007년 복수노조 시대, 국제적 수준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새로운 산별적 노사관계 재편’ 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산별노조 전환 실패 → 기존 산별노조의 산별교섭 제자리 걸음 → 노사관계 로드맵 강행과 복수노조시대 미국과 일본식의 기업별노조, 기업별교섭, 실리주의 노조 정착 → 노사관계 후퇴와 현장의 대혼란으로 빠져드느냐.

신자유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사회 양극화, 노동양극화,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기업별노조를 고집하는 것은 현재 기득권 유지가 아니라 명백한 후퇴이다. 최소한의 노조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침몰하는 배위에서 서로 네 탓이요 만 하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고 새로운 배를 갈아타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차별없는 사회, 사회적 연대와 평등을 향한 긴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월드컵의 나라 독일 땅과 유럽 대다수 국가는 축구도 잘하지만 ‘산별노조 - 산별적 노사관계 - 산업정책 개입과 중층적 교섭구조 정착 - 경제민주화와 높은 사회 공공성, 사회보장제도’ 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임을 명심하자. 월드컵 16강을 향한 그 열정의 반에 반만이라도 우리나라 노사관계 16강 진입을 고민해보자. 그것은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적 노사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산별전환 투표에 나선 금속 노동자들의 두 어깨에 한국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미래가 달려 있다. 투표 개표날인 6월30일 밤이 기다려진다. 나와 우리 동료들은 그날밤 ‘대~한민국’이 아니라 ‘산~별노조’를 외치면서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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