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저지를 위해 지난 2일 미국 원정투쟁 길에 올랐던 40여명의 각계 인사들은 적은 수로 큰 성과를 거두고 귀국했다. 본지에서는 미국 원정투쟁길에 참여했던 사무금융연맹 이한진 정책국장(사진)으로부터 출국에서 귀국까지 원정투쟁단의 활동을 일지 형태로 소개한다.<편집자 주>


오후 3시 원정투쟁단원들이 “한미FTA 저지 원정투쟁 출정식”과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민주노총 1층으로 모였다. 공개적 기자회견이 있다는 말 들어보지 못했는데 방송국 카메라가 즐비하다. 미국 원정투쟁에 대한 정부의 5개부처 장관 공동 담화 발표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라이브쇼' 덕분에 출발 전부터 생각 이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자들에게 원정투쟁단원은 얼굴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여러가지로 조심해야 하지만, 정부의 헌신적 지원(?!), 정말 고맙다.

6월2일…“출·입국의 긴장을 따뜻한 동포애로 녹이고”

오후 3시 원정투쟁단원들이 “한미FTA 저지 원정투쟁 출정식”과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민주노총 1층으로 모였다. 공개적 기자회견이 있다는 말 들어보지 못했는데 방송국 카메라가 즐비하다. 미국 원정투쟁에 대한 정부의 5개부처 장관 공동 담화 발표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라이브쇼' 덕분에 출발 전부터 생각 이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자들에게 원정투쟁단원은 얼굴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여러가지로 조심해야 하지만, 정부의 헌신적 지원(?!), 정말 고맙다.

출정식 후 간단하게 현지 활동과 관련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이제 인천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모두 함께 버스로 이동하리라 생각했던 상식적 판단이 일시에 무너졌다. 개별적으로 인천공항에 집합해야 한단다. ‘사전에 준비 좀 잘 하지’ 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열이 치밀었지만, 인천공항으로의 이동이 급했다. 민주노총 동지들은 택시로 김포공항까지 가서 공항버스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근데 개인적인 짐 외에 공용 짐이 장난이 아니다. 오늘 출발하는 원정투쟁단은 27명 뿐인데…. 정부의 교묘한 방해공작으로 출·입국도 조심스러운 판에 짐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발권 시간도 촉박한데 어쩐 일인지 미적거리고 있다. 미국원정투쟁을 준비해 온 범국본측과 원정투쟁단 참가자 간의 사전 대화나 상황에 대한 공유가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 꼭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우여곡절끝에 기내에 자리잡고 앉으니 한숨이 절로 난다. 사전에 조금만 더 준비가 치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선발대와 후발대를 합해 원정투쟁단은 약 40여명 규모라는데 어떻게 하면 적은 인원으로 원정투쟁의 의의와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뉴욕 J.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각으로 6월2일 저녁 9시30분이다. 비행시간이 거의 15시간 이상인 것 같다. 모두들 피곤해 보인다. 양손 검지 지문을 찍고, 얼굴 사진을 찍는 등 9·11 테러 이후로 강화된 입국 심사를 거쳐야 했다. 내가 선 줄의 입국심사관은 아시아계처럼 보이는데 상당히 깐깐해 보인다. 앞에서 있던 가족 여행객 중 70여세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지문입력이 잘 되지 않는지 무척 애를 먹고 있다. 입국 수속 시 한명이라도 거부당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컸는데 전원 무사히 수속을 마쳤다. 한미FTA 저지 재미위원회 소속 동포들이 많이 나오셔서 'NO FTA' 피켓과 함께 원정투쟁단을 반갑게 환영한다. 밖에는 원정투쟁단의 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비까지 주룩주룩 내린다.

정말 많은 재미위원회 동지들이 우리들의 이동을 위해 공항으로 차를 몰고 나왔다. 오늘 우리들의 숙소도 재미위원회 동지집이다. 원정투쟁단과 재미위원회 상호간에 인사를 교환하고, 저녁식사와 더불어 간단하게 소주가 돌았다. 맛있는 김치와 불고기, 그리고 김치찌개까지 함께 하니 미국에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재미위원회 동지들의 얼굴 하나하나에서 정말 우리를 진심으로 반기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 온다. 출·입국 시의 긴장감도, 비행의 피로도, 현지에서의 원정투쟁단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재미위원회 동지들의 진한 동포애로 한 순간에 녹아내린다. 조국을 떠나 살고 있지만 한미FTA 체결 시 조국의 민중들이 겪게 될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투쟁하고자 하는 동지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6월3일…“뉴욕에서 워싱턴DC까지 5시간”

‘된장찌개, 콩나물국, 콩나물무침, 김치, 잡곡밥’. 재미위원회 동지들의 따뜻한 마음처럼 푸근한 아침상이다. 한미FTA 협상 장소인 워싱턴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 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가는 거리 정도로 생각된다. 우리는 부산 한번 가려면 큰맘 먹고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 동지들은 마치 옆 마을 가는 식으로 얘기한다. 하도 넓은 땅덩어리에서 살다보니 시간적·공간적 감각이 달라진 것 같다. 인디언의 땅을 강제로 강탈한데 불과하지만, 넓은 땅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생각보다 싱거웠던 입국심사를 생각하면 뉴욕으로 오지 않고 워싱턴으로 직접 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모든 일은 사전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버스에 짐을 싣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 워싱턴 숙소에 도착하면 짐 옮길 일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창으로 스쳐가는 밖의 풍경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아기자기한 산의 정경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국과 달리 아름드리나무만 가득한 들판이 한없이 이어진다. 어떤 여행기에서 읽었던 ‘미국의 역사는 길의 역사’란 말도 실감이 난다. 이정표도 잘 되어 있고, 동서를 가르고, 남북으로 이어지는 수 없는 간선도로들이 워싱턴으로 가는 도중에서 수도 없이 이어져 있다.

조지워싱턴대학 기숙사에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받고, 일단 짐을 풀었다. 짐 정리할 시간도 없이 우리가 앞으로 1주일간 집회와 행진을 가지게 될 워싱턴 시가지 견학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우리가 이 워싱턴 시가지를 얼마나 돌아다니게 될지 실감하지는 못했지만, 백악관, USTR(미 무역대표부), IMF빌딩, 세계은행, 라파엣공원, 머레이공원 등을 한바퀴 돌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 후 개인별 짐정리를 했다. 다들 피곤한 눈치다. 투쟁 마지막날까지 아픈 동지 없이 잘 끝나야 할 텐데, 내일부터 시작되는 빡빡한 일정에 걱정이 앞선다.

‘환영행사 및 교양투쟁결의대회’가 거의 저녁8시경이 되어 예정보다 늦게 시작됐다. 한미FTA 저지 원정투쟁이 미국의 동포사회와 진보진영을 아우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오종렬 단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재미위원회 이재수 동지의 답사가 이어졌고, 원정투쟁기간 내내 투쟁단과 고락을 함께한 현지 변호사인 윤혜영 동지가 미국에서 집회 시 지켜야 할 규칙들과 주의사항 등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내가 대표다란 생각으로 원정 투쟁에 임하자는 결의와 함께 원정투쟁단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한국에서 온 원정투쟁단부터 부문별로 연단에 나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이어 재미위원회 소개가 이어졌다. LA외국인 노동자단체, LA재미위원회, 범 뉴욕·뉴저지 재미위원회, 워싱턴 D.C. 위원회 등. 몸은 고달프지만 어째 오늘 밤도 그냥 자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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