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미FTA만 체결하면 외국인 투자를 대거 끌어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자리를 만드는 외국투자가 몰려들어와 결국 노동자에게도 이로울 텐데, 뭣 때문에 반대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한 거짓말이다. 한미FTA로 투자금융부문이 더 한층 개방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지는 지난 8년을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1996년 OECD 가입과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계기로 개방된 한국의 금융시장과 투자 부문은 신흥공업국 중에서 유례없는 수준으로 자유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새로운 투자자들이 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공기업의 서비스 질이 떨어졌고, 노동자들의 부담이 늘었다. 우리의 삶은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지만 자산가들과 살아남은 기업은 더 많은 부를 쌓았다.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거짓말

그동안 투자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 현재 상장주식 시가총액 가운데 40.1%를 외국자본이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들 외국자본의 80% 가량이 단기적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 포트폴리오 투자는 일자리 창출과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고용유연화와 비정규직 증대 압력을 가하면 가했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과 구분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0% 가량을 차지한다. 정부는 이 직접투자야말로 정말로 일자리를 만들어 좋은 자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중에도 허수가 많다. 공장을 설립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을 전수한다는 이른바 ‘그린필드형 투자’는 FDI 가운데서도 그나마 절반밖에 안된다. 나머지 절반은 인수합병 관련 투자였다. 잘 알려진 론스타나 칼라일 같은 인수합병 투자가 언제 일자리를 늘렸는가! 외환은행에서만 천명 남짓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결국, 전체 외국인 투자 중 겨우 10% 남짓만이 신규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라서 미의회조사위원회(CRS)조차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의 많은 부분이 자산을 헐값에 인수하는 데 사용된 “기업구조조정 투자”였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UN은 전 세계 외국인 투자의 80% 이상을 인수합병 관련 투자로 분류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그래서 “동아시아 위기 이후 외자유입은 경제회복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한미FTA로 직접투자가 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의 논쟁 이전에 낸 보고서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고 있다. “NAFTA가 투자 측면에서 제공한 시사점을 살펴보면, FTA가 반드시 외국인 투자유입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캐나다의 상호투자는 관세장벽 회피를 위해 투자진출을 도모했던 기업들이 관세장벽 철폐 이후 투자 필요성이 적어지면서 오히려 감소했다.”

같은 이유로 FTA나 BIT(양자간투자협정) 자체가 직접투자를 유발하지 않는다. 2005년 세계은행과 국제개발은행(IBRD)이 OECD 가입국과 31개의 개도국 사이에 체결된 협정결과를 분석한 결과, 의미있는 직접투자의 증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세계은행은 “강력한 투자보호조치가 신규투자의 증가로 연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용창출형 ‘그린필드’ 투자조차 노동자에게 도움 안돼

이런 꾀죄죄한 현실에 직면해서 정부는 그래도 공장설립형 고용창출 투자가 늘고 있다며, 옹색한 처지를 변호하고 나섰다. 그리고 한국노총이 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유치 활동도 사실 이런 공장설립형 투자유치를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이같은 ‘고용창출형 투자’도 문제다. ‘그린필드형’ 투자조차 노동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공장을 설립한 형태의 직접투자가 늘었다 해서 전체 노동자의 생활수준 상승, 경제적 안정, 복지향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먼저 자본유입의 전제조건인 시장개방에 필요한 경제자유화와 규제완화로 실업이 늘어난다. 신규투자 외국자본은 대체로 국내 산업에서 이미 해고된 노동자 가운데 일부를 보다 열악한 처우로 고용할 뿐이다. 멕시코, 캐나다에서 NAFTA 체결 후 벌어진 일도 이와 같은 현상이었다.

투기자본의 천국

한미FTA가 체결되면 론스타같은 투기자본이 더한층 극성을 부릴 것이다. 사모펀드들은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경영성과가 우수한 우량기업에 투자를 집중하여 신속한 구조조정 후 차익을 남기고 되판다.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을 보장하고 단기간에 결말을 봐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같이 대규모 감원과 비정규직 양산, 자산 매각, 고액배당, 유상감자(주주배당의 일종)를 시행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국내형 투기자본들의 활동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했고, 2005년 7월 설립된 한국투자공사(KIC)는 20조원을 동원하여 환투기, 인수합병시장 등에서 운용할 계획이다. 한국투자공사는 장차 100조원의 국민연금을 끌어다가 투자할 예정이다. 노동자들의 노후 기금이 왕창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고펀드, MBK펀드, 이헌재펀드 같은 토종 사모펀드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편, 규제수단이 사라지면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칠레는 91~98년까지 급격한 외자 유출입을 막기위한 제도를 시행했다. 국내 유입 외국자본의 30%를 1년간 무이자로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가변예치의무제 도입하여 국내 유입 외국자본을 의무적으로 1년간 잔류토록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FTA를 체결하면서 폐지되었다.

한미FTA로 국내에서 미국의 은행에 예금을 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국경간 거래’가 도입되면 환율과 이자율의 차이에 따른 급격한 자금이동으로 금융위기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의 원인중 하나가 단기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이었다.

노사관계 로드맵과 한미 FTA를 좌절시켜야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FTA 저지 금융부문 공동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FTA 저지투쟁은 각 부문별로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그런데 한미FTA가 포괄하고 있는 내용은 딱히 어느 분야의 노동자가 더 큰 피해를 본다고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노동자들의 생활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 한미FTA는 일반인들의 환경이나 공공서비스의 이용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유연화, 비정규직화, 노조의 대항권 약화, 기업과 자본에 대한 공익적 규제의 제거에 기초한 하층민의 삶을 전면적으로 공격하여 자본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수익은 재벌과 고액 자산가들에게만 집중되고 빈부격차가 급격히 증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한미FTA를 단지 몇몇 해당 부문운동 또는 특정 산업에 속한 노동자들의 문제로 협소하게 봐서는 곤란하다. 특히 이번 협정의 노동부문 내용의 대부분의 사항은 한국정부가 지금 추진중인 노사관계 로드맵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공익사업장 대체근로 전면허용’,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대한 개입으로 투표시기와 유효기간 재설정’, ‘정리해고 요건 완화'(사전통보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축소하기), '부당행위 사용자 처벌 완화' 등, 한미FTA의 내용과 노사관계 로드맵에서 완벽히 일치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고용조건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후퇴시키는 악법이 바로 한미FTA이자 노사관계 로드맵이다. 노동운동진영 전체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노사관계 로드맵과 관련하여 ‘사회적 대화’나 ‘역사적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찾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협상과 교섭이란 힘의 우위에 바탕해야 실익을 쟁취할 수 있다. 더구나 한미 정부와 양국 자본간의 공통된 이해에 따라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공격이 전면화 하는 마당에 사회적 대화로 개선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몽상에 가깝다. 심지어 미국 노동계조차 한미FTA에 반대하며 함께 연대투쟁의지를 밝히지 않았는가!

자본의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고 비용을 전가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완결판인 한미FTA와 노사관계 로드맵을 좌절시킬 수 있는 길은 노동자들의 강력하고 광범한 투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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