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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민족주의와 공동체
  • 정태석 전북대 사회교육학부 교수·대안연대 운영위원
  • 승인 2006.05.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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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계절이 돌아왔다. 축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월드컵에 대한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틈을 타서 기업들이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서 애국가와 ‘대한민국’의 함성이 TV와 신문의 광고를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규 프로그램과 기사도 월드컵 홍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제 6월이 되면 붉은 옷을 입은 시민들이 한국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광장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를 흥분시키는 느낌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에서 분출되는 열광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이처럼 월드컵을 통해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느낌과 더불어 이러한 열광이 정말 올바르게 분출되고 있는가에 대한 염려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해관계를 무력화시키는 집합적 열광

▲ 정태석 전북대 사회교육학부 교수 · 대안연대 운영위원.
집합적 열광을 통한 집단의식은 아주 상식적인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는 ‘내집단’과 ‘외집단’의 메커니즘이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내집단에 대한 강한 소속감은 흔히 외집단과의 구별과 경쟁, 나아가 차별과 대결을 통해 형성된다.

이것은 어떤 정당이 내부적 분열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하기 위해 공격의 화살을 외부의 다른 정당들로 돌리는 행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내집단의 통합을 이루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외부의 공동의 적을 이용하는 것이며, 이것은 집단의식을 고취시켜 내부적인 단결을 도모할 수 있게 한다.

스포츠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집단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유럽의 훌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열광적인 팬들이 경기의 승패에 따라 난동을 부리거나 서로 패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스포츠가 감정적인 집단의식을 얼마나 잘 동원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경쟁적, 대결적 속성은 개인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이나 국가와 감정적, 정서적 일체감과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오래전부터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물론 축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를 통한 집단의식의 고취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를 매개로 국민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고 국민적 화합을 이루도록 할 수 있으며 또 열광과 흥분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스포츠를 통해 형성된 민족적 집단의식이 대내외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으로 본다면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의식을 고취시켜 배타적, 공격적 민족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를 통한 대결의식이 내부적 통합을 넘어 외집단에 대한 차별과 배제 의식의 강화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사회에는 혼혈인,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민자 등에 대한 비하의식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러면서도 선진국의 백인들에 대해서는 막연한 열등감과 동경심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비겁한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지난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개방적 민족주의, 다문화주의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혼혈 미식축구 스타 하인즈 워드의 방한을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났듯이, 한국 사람들의 배타적 민족주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포츠에서는 피부색, 키, 생김새, 언어, 민족, 국적 등과 무관하게 선수들 모두가 동일한 게임의 규칙에 따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을 한다. 그러므로 차별과 배제는 스포츠정신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과거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저항했던 저항적 민족주의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폐쇄적, 공격적 민족감정에서 벗어나 스포츠 정신에 걸맞게 다양한 인종,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는 자세를 길러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스포츠 민족주의가 지니고 있는 대내적 문제들도 있다. 우선 스포츠를 통해 형성되는 집합적 열광과 집단의식은 그 성격상 감성적, 일시적 통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 점은 2002년 월드컵대회에서 한국축구팀을 응원하던 붉은 악마의 집합적 열광이 여중생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반미 촛불시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사실에서 어느 정도 확인된다.

말하자면 감성적, 문화적 민족주의와 이성적, 정치적 민족주의 사이에는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감성적, 문화적 민족의식의 공유 속에서 개인들은 어떠한 물질적 피해나 권리의 침해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심적인 부담 없이 쉽게 열광하고 동화된다. 그렇지만 이성적, 정치적 민족의식 속에서는 개인들이 어떤 불편함과 피해의식을 느끼게 된다. 대외적 관계에서 물질적 이해관계를 따져야 하고 부당한 차별과 무시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스포츠 민족주의, 공동체의식 제고로 이어지지 않아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스포츠 민족주의가 상상 속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는 쉽지만 이를 통해 현실적인 공동체의식을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대항전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국민들은 계급, 계층, 지역, 이념, 가치관 등을 넘어서 상상적 공동체의식을 느낄 수 있다. 2002년 6월에도 그랬고 2006년 6월에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개인들은 여전히 서로 물질적 이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기업은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고,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있고, 부자들과 기득권층들은 세금에 저항하고 있고 복지제도의 개혁에도 반대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공동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외치는 ‘대한민국’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진정 어떠한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일상 속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상상 속에서만 하나라고 느끼는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양보하면서 서로 협력하고 화합하면서 나누고 배려하는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불로소득, 부정부패, 비리, 불공정 경쟁 속에서도 나만 잘 살면 되는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아니면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분배 속에서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출산, 양육, 교육, 취업 등에 대한 불안으로 더이상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아니면 안정된 복지와 취업, 평등한 교육기회와 협동적 교육환경,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과 배려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우리의 자녀들이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친구들과의 치열한 학력경쟁에 시달리고 엄청난 사교육과 경쟁 스트레스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올바로 성장하지 못하는, 그래서 일상적으로 자살의 유혹을 느끼거나 정신적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아니면 학교공동체 속에서 협동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고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피부색, 언어, 문화, 생활환경 등은 사람들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조건들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집단 의식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를 통한 집단의식은 상상적인 국민적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취약한 복지와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서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일상적인 나눔과 배려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면 민족의식은 단순한 감정적, 일시적 집단의식의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월드컵에서는 스포츠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을 통해 애국가와 '대한민국'의 함성이 진정으로 민족공동체 의식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열린 민족의식으로 이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의식은 외부의 억압과 차별에 대해 함께 저항할 뿐만 아니라 내부의 구성원들끼리 서로 나누고 배려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태석 전북대 사회교육학부 교수·대안연대 운영위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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