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미국의 이른바 ‘무역촉진권한(TPA)법’이 2007년 6월 만료되기 전에 미국의 ‘시간표’에 따라 1년 안에 한미FTA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고 한다. 물론 한미FTA 협상이 반드시 미 국내법에 따라야 한다는 우리 국내 통상관련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간에 쫓겨 졸속하게 추진하다 보면 부실한 협상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미FTA 협상은 협상대상 분야가 의료, 교육, 영화, 방송, 스포츠, 농산물 등등 워낙 대상 분야가 넓어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서도 논의를 따라가기가 힘겨운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진보진영이나 정부가 모두 간과하는 부문이 나올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미FTA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미FTA가 지역 문제에 미치는 영향은 진보진영이나 정부 어느 누구도 이슈조차 제기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한미FTA 정부의 속내, 통상확대보다는 규제완화에 있어

한미FTA의 추진은 지역 문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는 지역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수출과 성장산업이 집중된 성장지역(수도권)과 농업 및 구 제조업에 의존하는 정체지역(비수도권) 간의 성장격차가 확대될 것이고, 그 결과 성장지역과 정체지역 간의 지역격차가 심화될 것이다.

이런 한미FTA의 지역격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정부가 한번도 신중하게 검토한 적이 없다. 국책연구기관에서 한미FTA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계량모형으로 따져본 적이 있으나 총체적인 경제성장 효과나 산업간 영향만 따져봤을 뿐 한미FTA가 지역별로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검토해 본 적은 없고, 이것은 학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가장 먼저 검토한 작업 중에 하나가 지역간 FTA의 성장 효과이고, 어떤 지역대책이 필요하며 어떻게 손해를 보는 지역을 설득시킬 것인가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였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한미FTA의 효과는 수도권 규제완화 효과와 지역간 산업구조의 재편 효과, 이 두 가지를 통해 나타날 것이다. 즉, 이번 한미FTA 협상의 핵심은 단순히 통상확대나 자유화보다도 국내의 각종 규제완화와 지식정보 및 서비스산업으로의 신성장동력의 재편에 맞추어져 있다.

정부는 한미FTA를 계기로 그간 국내에서 기업투자와 시장의 작동에 발목을 잡아왔던 각종 규제를 대폭완화 하고 중국과 인도의 추격에 몰린 제조업 대신에 금융, 보험, 사업서비스, 교육, 보건 등과 같은 지식기반서비스업 또는 생산자 서비스업을 신 성장동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의 확산과 서비스 주도의 ‘제2의 장기전략 시스템 구축’이 한미FTA를 추진하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당장 도마 위에 오를 것이 수도권 규제 정책이다. 수도권 규제는 외자기업의 자유로운 국내투자활동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세계화를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는 정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이미 동북아 허브론을 들고 나올 때부터 수도권 규제완화를 기정사실로 해 왔다. 참여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지만, 출범 이후 지금까지 한편에서는 행정복합도시, 공공기관 이전 등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첨단업종의 수도권집중 완화정책을 꾸준히 펼쳐 왔다. 이것이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자평하는 참여정부의 지역정책의 실상이었다.

따라서 한미FTA를 통해 지방의 반발을 무시하고 미국의 힘을 빌려 수도권 규제완화를 도모하려는 것이 정부의 ‘감추어진 손’이며, 이런 점에서 한미FTA의 추진이 통상확대라는 ‘외부효과’보다 규제완화라는 ‘내부효과’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맞는 해석일 것이다.

FTA가 불러올 지역격차 심화…지역균형발전, 희미한 기억 될 것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물론 수도권은 훨씬 성장발전할 것이다. 한편 수출지향적인 제조업이 주축을 이룬 일부 지방공업지역도 한미FTA의 수출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면 대미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만끽하기 전에 더 먼저 수도권으로 공장이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작년에 정부가 실시한 첨단업종의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로 구미에서 LG 필립스 공장의 이전이 결정되었고, 이 결과 구미 경제의 약 35%의 비중을 차지하는 LG 필립스의 이전 결정은 지역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런 사례는 앞으로 창원, 울산 등지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미FTA 체결이 가져오는 또다른 측면은 성장동력이 제조업에서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으로 전환되면서 지역간 산업구조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지식기반서비스 산업은 정보통신서비스, 금융 및 보험, 소프트웨어, 컨설팅, 엔지니어링, 연구개발, 광고, 산업디자인, 교육서비스, 의료, 방송, 문화산업 등을 지칭하는데 이 부문들은 수도권 집중이 가장 심한 부문들이다. 이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은 2000년 현재 수도권의 집중도가 71.9%로써 한미FTA가 진행되면 수도권 규제완화와 맞물려 이 산업이 집중된 수도권과 그렇지 않은 비수도권 간의 지역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1989년에 FTA를 체결한 캐나다의 경우 지역간 경제적, 재정적 격차가 더욱 확대되었다. 1996년경 가장 성장한 지역의 GDP는 평균의 140% 이상이었던데 비하여 가장 낙후된 지역의 GDP는 평균의 73%로 양 지역간 격차는 FTA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1994년에 미국, 캐나다와 NAFTA를 체결한 이후 멕시코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세계에서도 가장 지역격차가 심한 나라 중에 하나였던 멕시코의 경우 NAFTA 체결 이후 10년간 북부 주의 성장률은 5.9%였던 데 비하여 남부 주들의 성장률은 0.4%에 그쳐, 남부주들의 1인당 소득은 멕시코 시티나 누에보 레온 등과 같은 북부 주들의 1인당 소득의 62%밖에 되지 않는 정도로 격차가 심화되었다. 멕시코 경제성장관인 루이스 에르네스토는 NFTA협정은 “분명히 지역간 사회적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간 자유무역협정이나 경제통합이 어느 정도의 지역격차를 심화시킬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역간 경쟁과 집중, 선택의 논리가 성장지역과 정체지역의 명암을 나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통합방식과 미국의 방식을 보면 미국의 FTA 방식은 지역격차 문제에 관한 한 처음부터 이를 간과하거나 무대책으로 일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 경제통합의 목표는 회원국 간의 상호번영과 격차 시정을 제일의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추진하는 FTA는 자국의 이익 보호와 통상확대를 제일의 목표로 한다. EU의 경우 경제통합을 하면서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소위 유럽 지역개발기금 등의 구조조정기금(structural fund)을 EU 예산의 총 30% 수준까지 조성하여 낙후지역과 성장지역의 격차해소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같은 경제통합을 주창한 NAFTA의 경우 이런 발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 때문에 최근 멕시코에서는 미국 같은 수혜국의 부담으로 북미개발기금(North American Development Fund)을 만들어 유럽과 같이 경제통합으로 낙후된 지역의 개발에 투자하자고 제안한다.

한미 FTA가 국내 규제완화와 세계경쟁에 지역을 무방비 상태로 내모는 전략으로 일관하는 한 지역격차는 심화될 것이고 통상정책이 지역발전정책을 대체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은 희미한 과거의 기억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나 낙후지역 지원문제는 예외적 조항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고, 멕시코가 최근에 주장하는 고소득 국가가 주로 부담하는 북미개발기금과 같은 지역격차 시정 재원의 마련도 논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왕 경제통합 협상을 한다면 미국식 FTA보다는 상호번영과 격차시정을 목표로 하는 유럽식 통합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이런 논의 없는 한미FTA는 ‘제2의 새로운 압축성장’의 계기가 아니라 ‘제2의 새로운 지역격차 심화’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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