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각종 계약관계에 의거 살아가고 있다.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사고 팔 때 매매계약을 한다거나, 타인의 주택을 빌리고자 할 때도 임대차 계약을 한다. 버스를 탈 때 요금을 내는 것이나, 병원에서의 진료 행위도 모두 계약관계에서 비롯된다 할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각종 계약을 하고도 이를 문서화 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많았다. 이는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하며 살아온 농경사회의 문화적 특성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한 동네에서 얼굴을 대할 뿐 아니라 자고 나면 볼 사람들인데 굳이 계약 내용을 문서화 한다는 것은 번거롭고 불필요한 일로 받아들였을 법하다.

반면에 한번 가축을 몰고 이동하면 언제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지 모르는 유목민들의 사회에선 각종 계약관계가 확실하다고 한다. 일전에 유럽 국가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하고 돌아온 한 교수가 계약 문화와 관련하여 전하는 일화는 그들의 계약 문화가 어느 정도인지 잘 말해준다. 그 교수의 자녀가 유럽의 학교에 전학한 후 어느날 학교에서 같은 반 급우에게 지우개를 빌리고자 하였는데 본토 출신의 급우는 지우개 한 개를 빌려줌에 있어서도 한국 유학생에게 임차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우리의 계약 문화도 많이 변했다.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전세계약서 없이 구두로 약정하고 전세를 들어 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서민들이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임차한 주택이 임대인의 채무 불이행에 따른 경매 처분으로 임차 보증금을 떼이는 사례가 속출함으로서 사회 문제가 되었었다. 그런 사유로 해서 이제는 전세계약을 구두로만 한다거나 동사무소 등에 확정일자 등록없이 주택을 임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현실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중요한 계약관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삶의 터전인 일터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이루어지는 근로계약이라 할 수 있다.

근로계약 내용을 분명히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구두상의 계약만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나중에 다툼의 소지를 남길 수밖에 없다.

근로계약을 분명히 하지 않음으로서 발생된 사례를 살펴보자.

‘갑’과 ‘을’은 과거 “ㅇㅇ(주)”에 입사 동기로 만나 수년간 동료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 평소 잘 아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위 회사에서 퇴직을 한 후 ‘갑’은 작은 건설업체를 설립하여 사업주가 되었고, ‘을’은 타 사업장의 건설현장 소장직을 주로 수행하다 일이 없어 쉬고 있던 중 어느날 ‘을’은 ‘갑’에게 채용을 부탁하였고, 이에 ‘갑’ 사업주는 ‘을' 근로자를 '갑' 회사의 현장소장직으로 채용하였다.

그런데 근로조건에 있어 특히, 임금에 대하여 '을' 근로자는 '갑' 사업주에게 “알아서 달라”라고만 했고, 이에 '갑' 사업주는 “알았다”고 답하는 정도로 근로계약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을' 근로자는 2개월간 객지 공사현장에서 현장소장직을 수행한 후 돌아와 자신의 구좌로 임금 입금 여부를 조회한 결과 이백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에 '을' 근로자는 자신이 받아야 할 임금의 일부(1개월분)만 입금된 것으로 생각하였고, '갑' 사업주에게 전화를 걸어 위 입금액이 1개월분 임금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갑' 사업주는 입금한 이백만원이 2개월분 임금 전액이라 답했다.

평소 건설 현장 소장직을 수행하면서 월급으로 2백5십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아온 '을' 근로자는 어이가 없었다. 결국 '을' 근로자는 노동관서에 '갑' 사업주를 임금체불 사실로 진정을 제기하였지만 근로계약 상 임금액에 대한 계약 내용이 불분명하여 결국 권리구제를 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갑' 사업주가 '을' 근로자에 대하여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을' 근로자 또한 '갑'사용자와 근로계약 관계를 분명하게 하지 아니한 소홀함을 지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근로계약 체결 당시에는 '갑' 사업주에 비해 '을'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어 근로계약서 작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는 사업주 및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적인 노동법 관련 교육 시스템의 도입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신규 사업자등록자나 예비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노동법규 교육은 물론 세법, 기타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에 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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