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굴뚝에 올라가 있던 한달, 정규직노조와 정규직 조합원들은 이 투쟁을 철저히 외면했다. 전직 집행부와 대의원 몇몇만 가끔 공장정문 집회에 나왔을 뿐이다. 3월25일 굴뚝 밑 대오가 용역경비들에게 끌려 공장 밖으로 쫓겨난 이후 공장 안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자신들의 일터에 용역경비 수백명이 활보하고, 출입문은 컨테이너로 봉쇄되고, 울타리에는 가시철조망이 쳐진 상황. 연대투쟁은 둘째치더라도 공장 통제에 맞서 싸우는 게 이치였다. 그러나 그 흔한 집회 한번 없었다.

급기야 4월7일 정규직들은 김기환 대우차노조 창원지부장의 ‘투쟁 단절’ 선언을 총회에서 추인하기까지 했다. 연대투쟁을 ‘확인사살’ 한 것이다.


극에 달한 공장 통제…숨죽인 정규직들

비정규직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정규직의 태도는 두번의 총회 결과에서 수치로 확인된다. 앞서 언급한 총회는 3월21일 창원지부 57차 임시대의원대회 결정 - 비정규직지회 농성천막 침탈 시 전면파업 돌입 - 을 김기환 지부장이 다음날 번복함에 따라 이를 추인하기 위해 소집된 것이었다. 임시대대 결정대로라면 결의과정을 거쳐 파업 찬반투표를 해야 할 시점에 ‘파업철회’ 투표를 한 것이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2/3에 가까운 63.33%의 찬성률로 김기환 지부장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서 고공농성에서 정규직노조의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 김기환 지부장은 현장에 남아 있던 소수의 투쟁 요구마저 조합원의 결정이란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부담스러웠을 노동계의 비판도 ‘조합원의 정서’, ‘총회 결과’라고 하면 그만이게 됐다. GM대우 사측은 고공농성과 관련 정규직노조의 개입이라는 일말의 걱정거리마저 날려버렸다.

이를 두고 창원의 한 활동가는 “뒤늦게나마 정규직노조가 연대투쟁을 결의해도 시원찮을 판에 엉뚱하게도 회사와 연대해버린 웃지 못할 사건”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지역의 상급단체가 이런 정규직노조에게 교섭권을 위임, 사측과 대리교섭 할 것을 비정규직지회에게 강요해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항상 정규직노조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삼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지회, 그럼에도 당시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투쟁을 포기한 창원지부에게 교섭권을 위임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굴욕”이라며 “교섭이 진행되더라도 회사와 붙어버린 정규직노조를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라고 한숨을 내뱉기도 했다.


파업철회 투표로 연대투쟁 ‘확인사살’

이 총회 결과를 사전에 유추할 수 있었던 또 한번의 의미심장한 총회가 있었다. 바로 2005년 9월30일 실시된 김학철 지부장에 대한 신임투표. 형식은 신임투표였지만 내용은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평가였다.

집행부가 주력해 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를 반영치 못한다며 18명의 대의원들이 임시대대를 소집해 집행부를 성토했다. 김학철 지부장은 덜컥 신임투표 실시를 받아버렸다. 여기서 조합원들은 34%의 신임율만 보내 김학철 지부장을 비롯한 당시 4기 집행부를 날려버렸다. 어이없게도, 비정규직 사업을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열심히 한다는 이유였다.

2005년 1월 노동부 불법파견 진정 후 창원비정규직지회가 조직되고, 4월12일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서 집행부는 ‘불법파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정규직화 투쟁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규직들의 불만은 높아만 갔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창원지부가 비정규직노조냐”였다. 당시 한 활동가는 ‘불신임’을 선택한 정규직 조합원의 속내를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첫째 내 일자리를 뺏기고, 둘째 비정규직이 하던 힘든 일을 내가 해야 하고, 셋째 회사의 비용이 상승해 내 임금이 깎인다”는 것으로 정리한 바 있다.

불신임이 결정된 9월30일은 공교롭게도 비정규직 86명이 (주)대정 폐업으로 집단해고 된 바로 그날이었다. 이때부터 고공농성에 돌입할 때까지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회사의 비용 상승’까지 걱정하는 정규직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6개월을 천막에서 버텨야 했다.

두번의 총회 모두 비정규직 투쟁 못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두번 모두 정규직의 2/3가 비정규직을 외면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한번은 ‘불신임’으로 지부장을 낙마시켰고, 한번은 압도적 지지로 지부장에게 ‘투쟁 단절’의 명분을 줬다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11월30일 실시된 비정규법안 관련 민주노총 총파업 찬반투표에서도 정규직 조합원들은 38.1%만 찬성했다.


“비정규투쟁 하지마”…지부장 불신임

세번씩이나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 스스로 ‘무장해제’ 해버렸다. 그래도 한 공장에서 “형님, 아우”하던 사인데, 정규직들은 왜 이토록 매정했을까. 속된 말로 “내 코가 석자”라는 것이다. 창원공장의 불안한 미래 때문에 그렇다.

GM대우에 있어 창원공장은 마티즈와 다마스와 라보 등 경차만 만드는 경차전용 생산공장이다. 경차는 수익률이 낮아 GM대우에게 매력적인 사업 분야가 아니다. 더구나 다마스와 라보는 주문량이 줄어 라인을 축소해 생산하고 있다. 그나마도 현재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초과하고 있어 정부가 환경규제를 유예하지 않으면 2007년부터는 생산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2008년부터 후속모델을 낸다지만, 소비자들이 경차보다는 소형차를 선호하고 있고, 경차 기준이 확대되면 생산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여기서 일하는 정규직이 70명. 이 여파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또 있다. 내수보다는 수출에 치중하고 있는 GM대우가 완성차 수출이 아닌 KD(조립부품) 수출을 늘리고 있다. GM대우가 지난 3월 한달 동안 판매한 자동차는 총 12만9,023대. 이중 수출이 11만8,896대로 내수 1만127대보다 11배 이상 많았다. 수출물량 가운데 KD수출이 6만3,980대를 차지했다.

따라서 완성차를 만드는 조립라인과 차체, 도장 파트에서 일하는 정규직들은 상대적으로 일이 줄어들었다. 대신 엔진, 미션 등을 만드는 가공부만 바쁘다. 한 공장 안에서도 잔업과 특근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KD 포장 업무를 담당하던 (주)대정이 폐업하면서 자체 생산이 아닌 협력업체에서 공급하던 KD물량은 공장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바로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몇번 노사간 충돌이 있었던 회사의 물량 반출이다.

창원공장 불안한 미래…“나 떨고 있니”

이와 관련 창원공장 한 정규직 조합원은 “창원공장은 공장 설비를 깔 때 일본 스즈끼에서 라인을 뜯어 왔는데 사람이 쫓아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아주 노후화된 환경”이라며 “지금 설비로는 경차밖에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창원공장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KD로 부품을 수출하면 관세도 없고, 조립에 필요한 설비와 인건비도 들지 않기 때문에 중국 등에 공장이 있는 GM으로서는 완성차보다는 부품을 수출하는 것이 이익”이라며 “옛날 같으면 KD업무도 창원공장에서 다 했지만 지금은 납품업체에 포장업체를 만들어서 바로 선적해버리기 때문에 KD수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창원공장은 물량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후화된 생산설비와 미래가 불투명한 경차 생산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창원지부는 노후설비 개선과 함께 현재 부평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칼로스 라인을 이전해 경차만이 아닌 소형차까지 생산하는 공장으로 창원공장을 재편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창원지부는 2005년 임금협상에서 노후설비 개선과 칼로스 생산 이전의 구체적인 이행시기 확약을 요구해 ‘노후설비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칼로스 차종 생산 이전은 회사 중장기 사업계획에 의거해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올해 임단협에서 다시 확약을 받아야 할 판이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칼로스 이전은 부평공장 노동자들이 반대하고 있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진영훈 창원지부 사무국장은 “합의대로라면 칼로스 라인을 깔고 7월부터는 시험차량을 생산해야 하지만 아직 예산도 배정되지 않았고 부평공장에서도 라인 이전을 반대해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경차가 죽어가는 마당에 칼로스를 창원공장으로 가져오지 못하면 창원공장은 끝장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규직의 살 길…“칼로스를 창원으로”

이런 상황을 회사가 놓칠 리 없다. 투자를 미끼로 회사는 끊임없이 고용불안 이데올로기를 조합원들에게 유포했다. 숨죽이고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것이다.

GM대우 황우성 창원본부장은 지난 4월초 한 언론을 통해 “GM이 창원공장에 대해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이번 고공농성이 투자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걱정된다”는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창원공장 사측 관계자도 투자 계획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에 “2005년 임금협상에서 칼로스 이전을 합의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결단이 필요한데, 비정규직 고공농성으로 창원공장이 시끄러워지고 대외적인 이미지가 타격을 입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에서 노동조합 때문에 힘들어진 경험을 갖고 있는 GM이 한국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 중의 하나가 협력적인 노사관계”라며 “닉 라일리 사장이 창원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본부장실 점거다, 고공농성이다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회사측의 이런 인식은 현장에 그대로 적용됐다. 고공농성 초기 창원본부장 명의의 담화문이 수차례 공장에 나붙었다. 한 조합원은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창원공장에 미래가 없다, 이렇게 가면 GM의 투자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며 “창원공장 노동자들은 제대로 투쟁해본 경험도 없고, 더구나 2001년 부평에서 정리해고 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창원지부 또한 여기에 편승한 것이 사실이다. 고공농성 돌입 6일만에 나온 성명서에서 김기환 지부장은 “창원공장이 비정규직 투쟁이 전국 단위 거점으로 발전되었을 때 다음 수순은 무엇이겠는가”라고 물으며 “휴업 및 일시적인 폐업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싸움을 의미할 뿐 아니라 출퇴근 통제를 비롯한 많은 문제들로 조합원들을 괴롭히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밝히며 ‘투쟁 단절’을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회사가 휴업이나 일시적 폐업을 고려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측 관계자에게 물었지만 답을 피했다. 아무튼 회사가 고공농성 때문에 휴업이나 폐업을 할지 모른다는 창원지부의 발언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고, 고공농성 초기 지역의 상급단체들이 투쟁 조직화를 주저한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회사도, 노조도 ‘고용불안 이데올로기’ 유포

한 전직 간부는 고공농성과 관련된 정규직 조합원의 선택을 이렇게 정리했다.

“GM대우 정규직 노동자들은 한번 망해본 경험이 있다. 부평공장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는 것도 숨죽이고 봤다. 이런 그들에게 창원공장의 불안한 미래를 담보로 한 회사의 고용불안 이데올로기는 공포였다. 회사측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폭로해야 할 노동조합이 오히려 나팔수가 됐다. 정규직들에게 더이상 무엇을 기대하란 말인가. 부끄럽지만 우리의 모습니다.”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한달간 펼친 고공농성이 남긴 성과는 무엇일까. 입버릇처럼 떠들던 ‘마창노련의 연대투쟁 정신’도 딱 총파업 결의까지였다. 교섭이 원점이니 요구안도 아직은 실현된 것이 없고 전망도 밝지 않다.

하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있다면 비정규직 투쟁을 대하는 정규직노조인 대우차노조 창원지부의 입장과 정규직 조합원들의 선택이었다. 누구는 불가피했다고 말하고, 누구는 비겁했다고 말하지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