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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의 진실<전재> 월간 작은책
  • 최영재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국장
  • 승인 2006.04.2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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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한 뒤 영화계는 바로 농성에 들어가 집회, 1인 시위, 촛불문화제 들을 열어 속임수 같은 축소 방침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현 정권은 영화계의 요구에 귀를 닫고 3월 7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축소 방침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장외 농성, 단식, 삭발, 국토 종단 같은 더 거센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 글에서는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쟁점들을 정리하면서 스크린쿼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 보고자 한다.

한국 영화의 발전은 스크린쿼터와 무관한가? 1985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한미영화협상이 있었고,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거의 받아들여 영화 제작, 배급의 전 분야를 개방하였다. 1988년부터 할리우드 영화가 직접 배급되기 시작했고, 할리우드 영화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90년대 초, 중반 한국 영화는 사라질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런 형편에서 한국 영화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스크린쿼터제다. 영화 시장 개방 뒤, 아무도 지키지 않아 있으나 마나 한 제도였던 스크린쿼터제가 1993년 발족한 민간 기구가 감시 활동을 해 지켜지기 시작하면서 한국 영화 상영일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상영 일수가 증가한 비율은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늘어난 비율과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스크린쿼터 위반 일수는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스크린쿼터제는 비로소 법에 규정된 대로 지켜지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은 한국 영화가 눈에 띄게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다. 과연 스크린쿼터제가 없었다면 또는 작동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한국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을까? 스크린쿼터제가, 경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틀을 만들어 준 것이다.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객원사진기자

스크린쿼터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집단이기주의인가? 물론, 스크린쿼터 지키기는 첫째 한국 영화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경제 관료들은 한미 FTA의 경제 효과를 강조하지만 양식있는 경제 학자들은 하나같이 정부 발표가 과장해서 지어낸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는 한미FTA를 ‘절대선’으로 놓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 과정도 생략한 채,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한 영화인의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 붙이는 것이야 말로 실적 쌓기에 정신없는 경제 관료들의 집단 이기주의일 뿐이다.

한국 영화는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했는가? 경쟁력이라 함은 물론 시장에서 경쟁하는 힘을 뜻하는 것일 게다.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갖췄다는 주장은 자유 시장 경쟁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직 경제 같은 잣대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려 드는 반문화 같은 태도가 더 큰 문제이긴 하나, 그 잣대로도 이런 주장은 마땅하지 않다. 미국 영화는 전세계 영화 시장의 85%를 지배하고 있다. 드넓은 자기 나라 시장을 바탕으로 전세계 영화 시장을 손아귀에 넣어 지구에서 산업이라 부를 만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 곧 어떤 규모를 깬 영화를 안정하게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20여개 밖에 없는 실정이다. 해마다 영화 600여 편을 쏟아 내면서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만들어 지는 영화 600여편의 제작비를 모두 합친 규모인 <타이타닉>이나 <킹콩> 같은 블록버스터를 제작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결코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룡 같은 할리우드에 맞서 단지 한국 시장에서 엇비슷한 경쟁을 하고 있으니 경쟁의 조건이 된 제도를 반토막 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영화만 잘 만들면 한국 영화를 볼 것인가? 제작된 모든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제작비를 많이 들이지 못하고, 홍보 마케팅비를 많이 쓸 수 없는 영화가 충분한 개봉관을 잡는 것은 지금 조건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스크린쿼터 제도로 그나마 상영할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집으로>나 <말아톤>, <왕의 남자>처럼 제작비를 많이 들이지도, 누구나 아는 대형스타가 출연하지도 않는 영화들이 충분한 평가 기회를 보장 받아 흥행에 성공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대작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는 폐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스크린쿼터를 지키면서 다른 제도를 만들어 고쳐야 할 문제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스크린 독점을 심화시켜 작은 영화를 개봉할 기회를 더욱 제한할 뿐이다.

스크린쿼터는 일부 제작자와 배우들의 배만 불렀나? 한국 영화가 산업으로 급속히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수익이 일부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고, 현장 스탭들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영화산업노동조합이 출범한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마련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해서 이 문제는 스크린쿼터와 따로 풀어 나가야 할 문제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한다고 스탭 문제를 해결 하지는 못한다. 스크린쿼터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산업으로 토대를 갖추어 가는 한국 영화의 판 자체를 깨자는 주장일 뿐이다.

스크린쿼터는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하지 못했는가? 다양성은 여러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정도가 지나치게 독점하는 형편에서 우선 다양성을 갖추는 일은 자국 영화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독점과 무차별로 자유무역 질서를 강요하여 거의 모든 나라들의 영화 산업 밑바탕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된다면 영화 문화의 판박이 라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한국 영화를 지키고 발전 시켰다는 측면에서 다양성 확대에 이바지한 문화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스크린쿼터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영화의 내부 다양성이나 비할리우드 외화의 다양성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는 스크린쿼터를 지키면서 다른 제도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영화인은 왜 한미FTA에 반대하는가? 대중문화는 한편으로 산업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당연히 문화이기도 하다. 자유무역이란 그럴듯한 구실로 벌이는 문화 침략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인 것이다. 국제 사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퍼진 미국 문화 지배에 맞서기 위해 국제 무역에서 문화를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문화적 예외’ 원칙을 지켜 왔다. 더 나아가 자국 문화 진흥을 위해 문화 정책을 수립, 채택, 시행하는 주권을 국제법으로 보장하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을 거의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미국은 다자간 협상을 통한 문화 침략이 불가능해지자 양자간 FTA를 통해 자신의 문화 패권을 확장해 왔다. 그 과정에 한미FTA가 놓여 있는 것이다. 오로지 강한 이가 약한 이를 먹는 자유 경쟁을 강요하는 것이 한미FTA의 본질이며, 이는 어김없이 문화 분야에도 적용된다. 우리말로 우리 경험과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는 문화를 잃는다는 것은 우리 얼과 정신을 빼앗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최영재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국장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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