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다. 한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죐을 직접 담당했던 비서관이 대통령이 결정 내린 정책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그러나 나라가 뒤흔들릴 것이 뻔히 보이는 지금, 한때의 정리 때문에, 또는 내 과거의 판단 착오를 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선 정책 결정의 비민주성을 지적해야겠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한미 FTA의 최고 책임자라 할 만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김현종 본부장은 한국 시간으로 2월 3일 새벽 5시 미국에서 ‘한미 FTA의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다섯시간 뒤 2인자라 할 김종훈 한미 FTA협상단 수석대표는 한국에서 똑같은 선언을 했다.

이건 기습이다. 첫째로 ‘FTA절차규정(대통령 121호)’ 제12조 위반이다. 이 조항은 공청회를 개최하고 그것을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공청회를 하기는 했다. 끝내고 개회 선언만 한 채 농민이 시위한다는 핑계로 단 20분 만에 공청회를 했다고 하는 것이다. 법률이 아무리 형식적이라고 하더라도 이 공청회 규정은 국민들에게 왜 이 시점에서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리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다. 실은 대외경제장관회의에 나왔던 장관들조차도 그 까닭도, 그 효과도 모를 것이다. 이는 김성훈 전 장관 말대로 “민주주의도, 참여정부도 아닌, ‘관료주의 행정의 표본’이며, 송기호 변호사말대로 ‘법리적으로 상당한 법률적 흠결’에 해당한다.

왜 이리 서둘러야 했는가? 지난 몇 년 동안 한미간에 투닥거린 통상 현안이 꽤 많았다. 이 가운데 대표할 만한 것이 첫째, 의약품가격조정 정책(이는 의약분업, 건강보험 문제 해결의 열쇠 중 하나다), 둘째, 자동차 배기가스 문제, 셋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조치, 넷째, 스크린 쿼터 (뒤 둘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다. 이 문제를 2005년 10월부터 2006년 1월 26일까지 겨우 넉 달만에 다 해치웠다. 물론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무엇이 이렇게 우리 정부를 서두르게 만들었는가?  그걸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꾸며대고 있지만 나는 지난 2005년 2월부터 5월까지 FTA를 직접 담당하는 대통령 비서관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미 FTA는 중장기추진계획 가운데서도 맨 마지막 자리쯤에 있었고, 내가 차장으로 있던 자문회의 직원들 말을 들어봐도 9월까지도 한미 FTA는 드러내 놓고 논의된 바 없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일 FTA의 재개 문제가 가장 급한 관심사였고 나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8,9개 단체를 동원하여 우리 산업의 발전 방향과 한일 FTA의 영향, 우리 대응방안을 보고서로 만들었다. 내가 이른바 ‘행담도 사건’죐으로 비서관을 그만 둔 뒤에도 자문회의 사무처는 그 일에 매달렸는데, 10월이 되자 갑자기 한미 FTA가 떠올랐다.

지난 3월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대통령은 그 까닭을 설명했다. 첫째는, 제조업은 곧 중국에 따라잡힌다고 하는 중국 위협론 때문에, 둘째는 서비스업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미국이 가장 강한 나라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네 가지 선결 과제를 민첩하게 처리해주면서) 한미 FTA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또 한미 FTA를 체결해야 양극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모두 그리 명확하지 않거나 적어도 짧게 보면 반대인 사실들이다. 우리가 7, 8% 고도성장을 하고 일본이 10년을 0~1% 성장을 한 지난 10년 동안에도 몇몇 품목을 제외하곤 여전히 우리는 일본의 제조업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과 같은 기계 공업은 부품 2, 3만개가 품질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쉽사리 추월당하지 않는다.

서비스 부문의 개방은 더 큰 문제다. 흔히 아이엠에프(IMF)위기라고 하는 97년 위기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별 문제 없어 보이던 우리의 대형 은행이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에 인수합병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됐다. 물론 그 뒤 우리 은행들의 은행 건전성이 좋아지고 이윤이 높아졌다. 그러나 단기 수익을 노리는 외국 주주들은 배당금 받기 좋은 소비금융을 늘리기를 요구했고 그 단물마저 다 빼먹었다 싶은 지금 엄청난 시세 차익을 남기고 되팔려 하고 있다. 분명 실업은 늘었고 양극화는 심해졌다.

법률 시장 개방도 마찬가지로 인수합병과 대량 해고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법률이 발달했다던 독일도 9개의 대형 로펌죐 중 7개를 영미계에 인수당했다. 물론 살아남은 변호사들의 수임료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 좋아졌다는 서비스를 일반 국민이나 중소기업은 이용할 수 없다. 법률 시장마저 양극화되고 서비스(우리의 소형 법인, 또는 개인 변호사가 담당하는) 역시 양극화되는 것이다.

의료는 더욱 심각하다. 대형 영리법인이 들어올 것이다. 이들은 돈벌이 때문에 우리의 건강보험 환자를 외면하고 자신들과 같이 들어온 미국의 민간보험 환자를 받을 것이다. 이른바 강제지정제도(건강보험증을 들고 가면 어느 병원에서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폐지, 또는 완화되면 우리 국내 큰 병원들도 역차별을 까닭으로 그러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간보험을 이용하는 부자들, 따라서 병에 걸릴 확률이 적은 사람들은 건강보험의 탈퇴를 요구할 것이다. 그럼 건강보험의 보험료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왜? 남은 사람들은 가난하고 따라서 병 걸릴 확률이 높아서 진료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면 건강보험은 뼈대만 남는다. 의료의 양극화 정도를 넘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감기조차도 치료받기 힘들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 꼭 밝혀 둘 것이 있다. 대통령도, 유시민 장관도 강제지정제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꼭 지켜볼 일이다.

교육은 미국의 영리법인이라 해야 원격 교육, 성인교육을 담당하는 사설 학원 비슷한 거라서 국내에 들어오면 유학 준비 학원 같은 구실을 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 재경부가 경제자유구역에서 하는 것처럼 특혜를 주어 하버드 대학교 아시아 분교를 유치하겠다고 나서면 얘기는 달라진다. 순식간에 입시제도는 흔들리고 공교육은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농업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미국무역대표부(USTR)은 쌀도 예외가 아니라고 으르대고 있고, 우리 농림부는 쌀만이라도 하는 자세로 벌벌 떨고 있다. 특히 축산 농가는 거의 무너질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인 농촌경제연구원의 계산으로도 쌀 빼고 2조 원, 쌀을 넣으면 8조 원 가량 손해를 볼 것으로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

그럼 우리의 제조업 수출은 늘어날까? 그렇지 않다. 현재 2.5% 정도인 자동차 관세를 매년 0.5% 포인트 낮춘다고 하면 미국 현지에서 파는 소나타 값은 단 10만 원 정도 떨어질 것이다. 이 수치가 자동차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을까? 더구나 반도체는 현재도 무관세인데다 미국 현지 판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최근 언론에 난 대로 미국은 수시로 반덤핑 제소를 한다. 이것이 가장 큰 미국의 비관세 장벽이다. 얻을 것은 별로 뚜렷하지 않은데 잃은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이른바 CGE모델죐을 돌려서, 길게 보면 성장률이 1.99% 상승한다고 이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좋은 수입재가 들어오고 사업 서비스가 좋아져서 우리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란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통계를 아무리 좋게 해도 소용이 없는지 길게는 무역수지가 51억 달러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CGE모델도 2001년 미국무역위원회에서 돌린 결과는 한국의 경제성장은 0.9%, 무역수지는 90억 달러 악화로 나왔다. 계량경제학이라는 게 썩 믿을 것이 못 되지만 어느 쪽을 택해도 성장률은 별로 영향이 없는데 무역수지는 나빠진다는 것이다.

이런 FTA를 추진하면서 우리의 외교관들은 “안보동맹에 이어 경제동맹까지 맺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일 것이 틀림없다.  힘없는 우리로서는 두 나라 사이에서 엄격하게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외교관들의 얘기는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떠벌이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그동안 애써 관리해 온 북핵문제에서 중국이 태도를 달리하고 남북관계마저 경색시킬 위험이 있는 발언이고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창피한 얘기지만 국내 준비도 거의 돼 있지 않다. 정부는 2003년 8월부터 관계부처와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2005년 1월에서 6월까지 ‘FTA를 전제로 하지 않은 사전 실무협의’를 했을 뿐이고 이마저도 상위 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에 보고하지 않았다.(그러니 그 실무 담당책임자인 나도 모르고 있었다.)

철저한 연구라고 정부가 내놓은 것이 지난 2월 부랴부랴 돌린 문제의 CGE 모델까지 달랑 3권이다. 한일 FTA에 관한 연구는 정부가 발주한 것만 25권이고 나는 대통령의 지시로 이를 집대성했으니 쓸 만한 보고서가 26권인 셈이다. 민간 연구까지 치면 100권이 넘는다.

물론 이미 시작하기로 한 것을 당장 되물릴 수는 없다.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이 내년 6월 30일에 끝나는 건 우리 사정이 아니다. 우리는 한미 FTA가 가져올 우리 사회의 변화부터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 산업과 국민의 살 길과 맞아 떨어지는가, 그리고 대책은 있는지부터 자료를 공개해서 모두 함께 토론해야 한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은 자신의 전략과 목표를 이미 의회에 보고해서 우리도 다 알고 있는데, 정작 우리 통상교섭본부는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장관에게 보고한 자료까지 도로 거둬 갈 정도로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이슈를 드러내고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  FTA- free trade agreement를 줄인 말로, 나라와 나라 사이 무역 장벽을 낮추거나 없애는 특혜를 주는 무역협정
*  행담도 사건- 행담도 개발 회사와 도로공사가 외국자본을 들여와 이 섬을 개발하려 하는 가운데 당시 외자 유치를 총괄한 동북아위원회가 개입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2005년 5월 몇몇 언론이 위원회가 개입한 것은 월권이라고 의혹을 제기, 검찰은 문정인 전위원장과 정태인 전국민경제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지만 2006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무죄로 판결했다.
*  로펌- 법무법인. 종합법률 회사라고도 한다
*  CGE모델- 경제학의 일반연산균형모델을 컴퓨터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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