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급의 승부사라는 평을 받아온 노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승부수를 한미FTA에 던졌다. 그런데 필자로서는 그 의도를 이해하는 데서부터가 난감하기 그지없다.

승부를 걸려면 자칭 타칭 ‘좌파’ 정당답게 지난해 후반기에 흘리던 ‘사회적 대타협과 양극화 극복’ 같은 의제로 승부수를 던져볼 볼 일이건만, 그와 반대로 이른바 친미 시장주의 집단을 등에 업고 ‘한건’ 해 보려는 발상 자체가 어리둥절하다.

하긴 노무현 개인에 대한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의 ‘프로이드식 정신분석’이 약간의 설명을 제공한다. 즉 그야말로 동내 뒷산 ‘토굴’에서 생짜로 사법고시에 도전하여 합격한 노대통령의 강박적 성과주의가 이런 일을 불러왔다는 뜻이다. 물론 청와대 주위를 완전히 감싸고 있는 친미 시장주의 관료들의 부추김이 있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노대통령이 유난히도 좋아했다던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성과주의는 처음에는 일정한 효과를 내지만 자기의 밑천을 넘어 과도한 욕망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은 크게 몰락하는 법이다. 하지만 황 교수 사건의 경우 해당 개인과 몇몇 측근이 처벌의 대가를 지불하는데 그치면 되지만, 한미FTA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장래가 달린 사안이다.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노대통령이 '현 정권은 좌파 신자유주의이다'라고 주장한 대목은 ‘한 건’에 눈이 어두워져서 정신적 착란 현상에 빠진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대립되는 공공성이나 비시장적 가치를 견지하는 것을 빼고 좌파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FTA는 라스베거스?…'겁 없는 촌놈'도 이길 수 있는 카지노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세계는 접어두고 좀 차분하게 객관세계를 살펴보자. 먼저 미국이 추구하는 국제무역관련 전략을 살펴보면, 과거 미국은 유럽이 주변국가나 구 식민지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또는 그냥 무역협정 PTA: Preferential Trading Arrangement)을 체결하고자 추구할 때 이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WTO를 탄생시킨 우루과이라운드(UR)도 따지고 보면 유럽이 유럽공동체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발전해 나가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이 WTO를 주창하여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UR이 한때 교착상태에 빠지자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변하였다. 미국은 NAFTA를 통해 우회적으로 UR 타결에 자극을 주고자 했다. 미국이 최근 수년간 10여개 나라들과 FTA를 체결하는데 열을 올리게 된 것도 1999년 시애틀 WTO회의 실패, 2001년 도하(Doha) 각료회의의 실망스러운 결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부시행정부는 2002년 이른바 무역촉진권한법(TPA:Trading Promotion Act)을 의회로부터 획득하여 자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시장 확대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DDA 협상 같은 다자간협정을 통해 제조업의 추가적 시장개방에 그치지 않고 (하지만 미국은 제조업이 취약하므로 DDA 협상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과 유럽에 비해 미국이 절대적으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서비스, 농산물, 지적재산권, 투자자 권리보장 같은 영역에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항구화하고 그럼으로써 유럽과 일본, 중국 등을 견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굳이 일본 혹은 유럽이 아닌 싱가포르,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들과 FTA를 맺고자 하는 이유는 최종목표를 향한 우회로를 찾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 중국, EU 같은 거대 경제권과 FTA를 맺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DDA 협상에 악영향을 주어 세계적 차원의 다자간 협정마저도 영영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연구에서도 명확히 나타나듯이, DDA체제는 주로 선진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체제이며, 따라서 그러한 자유무역체제의 혜택은 그 2/3 이상이 선진국으로 돌아간다. 선진국의 거대자본들은 자원과 고급기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격렬한 경쟁과정에 돌입한지 오래이다. 자유무역, 또는 공정경쟁의 논리는 액면 그대로는 별 흑막이 없는 듯하지만, 실은 언제나 강자의 논리였다. 이들 선진국의 강자들이 후진국을 포함한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FTA니, DDA니 하는 논의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난리통에 한국 처한 위치는 그야말로 어중간하다.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 같은 선진국으로부터 획득한 중가기술 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다파는 중간적 위치에 있으며 강자도 아니고 약자도 아닌 중간적 위치에 있다.

따라서 중간적 위치에 있는 한국이 취해야할 전략은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즉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처럼 선진 강국들의 게임에 ‘겁 없은 촌놈’처럼 앞서 나갈 것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뒤따라가면서 편승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한-일, 한-중 FTA 같은 사안들 역시,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너무 한국이 나서서 설치면 그 역작용이 심할 수 있는 사안이다.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미FTA와 서비스업…차라리 다자간협상을 하는 게

한편 서비스업의 발전을 위해 한미 FTA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는 견해는 참으로 잘못되어 있다. 서비스업을 개방하여 취약업종인 금융, 법률, 교육, 의료 등을 미국표준에 맞게 고치고 경쟁을 통해 선진화하여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발전시키고 나아가서는 이런 업종을 통해 앞으로 먹고 살자고 하는 주장인데, 이것은 한국이 미국과 같이 전세계를 통제하는 초강대국이 아닌 바에야 대단히 기이한 발상이다.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아닌 강중국(中强國) 중에 서비스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선진국들 중에 영국밖에 없다. 왜 그럴까? 이는 영국이 과거 대제국이었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즉 과거 19세기에 이룩해 놓은 넓은 대영제국이 세계 각국에 퍼뜨려놓은 언어(영어)와 법률(영국의 관습법),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결합된 금융제도 등의 덕택에 영국은 여전히 세계의 금융, 법률, 언어/교육 등 서비스업에서 큰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 일본,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서 서비스 업종은 어디까지나 내수 업종으로서 내부의 수요에 응하여 발전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듯 이들 나라의 서비스업이 별로 경쟁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문에 일본과 독일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지장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이 서비스업을 미국에 개방하여 서비스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은 미국의 제국 확대 욕망에 부응하여 그 하위 파트너로서 미국의 동아시아 서비스업 지배에 종노릇하면서 떡고물이라도 챙기겠다는 것인가?

만약 한국의 서비스업에 문제가 있다면 글로벌스탠더드 운운하면서 서비스업 개방을 서둘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차분히 개혁을 해나가도 된다. 구태여 개방하기로 말하자면 한미FTA가 아니라 DDA 협상을 통해 서비스업을 개방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경우 굳이 미국표준에 따르지 않아도 되고 더구나 미국만이 아닌 다른 선진국의 우수한 서비스업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경쟁한다면 보다 가격도 싸질 것이기 때문이다. 즉 차라리 DDA 협상이 한미FTA에 비해 균형 잡힌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한미FTA의 총계적인 경제효과를 보더라도, 그 긍정적 효과는 과장되어 있거나 사소한 것들이다. 우선 무역수지 효과를 보자면, 한국과 미국 양국이 관세장벽을 낮춘다면 당연히 양국간의 무역이 늘어나겠지만, 그것은 타국과의 거래가 양국으로 전환되는 이른바 무역전환효과의 덕택일 것이며, 그것이 그 긍정적 효과의 대부분(적어도 2/3정도는 될 것이다)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즉 한미간의 무역증대는 타국과의 무역감소의 효과이다. 가령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은 일본과 독일로부터의 수입을 줄일 것이고 또한 미국 수출시장에서는 한국과 경합관계에 있는 멕시코, 일본, 대만의 비중이 줄고 한국이 늘어나는 양상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미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것은 자명하지만(왜냐하면 현재 한국의 관세율이 미국보다 더 높고 두 세율이 동시에 무관세에 접근한다면 이는 당연하다), 그 대신 일본과 독일로부터의 고급 자본재 수입이 감소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미 FTA와 농업, 그리고 금융…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융단폭격


한편 자유무역협정이 GDP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역시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모든 자원이 한쪽에서 해고되면 다른 쪽에서 조만간 고용된다는 완전고용의 가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가정에 따르는 한 모든 자유시장은 항상 正(+)의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농사꾼이 농산물 개방으로 일자리를 잃는 경우를 보자. 그는 시골집은 빈집으로 두고 월세방을 얻어 도시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취업한다. 이 경우 부가가치가 낮은 농업은 줄어들고 부가가치가 높은 경비업은 증대하므로 GDP는 증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위와 같은 완전고용 가정마저 충족되지 않는다. OECD 가입 이후 우리나라 유통업이 개방되면서 해외 거대자본을 필두로 온갖 할인점, 대형마트가 전국에 세워지는 통에 재래시장, 동네 슈퍼는 수입이 줄고 상당수가 생계비 이하로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소매상인들이 과연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다 얻어 떠났는가?

동네 슈퍼마켓의 아들은 자기 부모사업이 신통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른 길을 모색할지 모르나, 평생 자영업만 하던 사람이 남의 집 식당이나 공장에 취업한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노동수요 측면에서도 FTA에 따른 농업과 서비스업 완전개방에 따라 일자리를 잃어버릴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일자리를 기업이 단기간에 마련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거대한 빈민집단과 사회적 양극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도 한미 FTA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해괴한 괴변이다. 이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보다 더욱 악질적이다.

순수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농업에 대한 강도 높은 개방을 요구할 전망이다. 첫째, 그동안 다자협상의 주요 걸림돌이었던 것이 농업 분야이기에 미국은 FTA협상에서 농업에 관한 한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입장이다. 둘째, 농업을 제외할 경우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FTA를 통한 무역효과의 절반이 감소한다. 

또한 한미 FTA에는 투자 관련 보장 조치도 강력하게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투기자본의 보호막을 마련해 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최근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관련 의혹에서 보듯이, 엄청난 떡고물을 둘러싼 관료-금융엘리트-투기자본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유착고리를 한미FTA는 더욱 확대할 위험이 있다.

또한 이미 다른 논자들이 지적하듯 외국자본에 대한 약한 규제에 대응하여 국내자본도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동등대우를 요구하게 되면 특히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 공공성은 물 건너가게 된다.

한미FTA와 동북아중심국가론…사회적 대타협 전제돼야

필자는 한미FTA를 조급하게 추진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현정부가 내세운 동북아중심국가론의 구상 자체에 근본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금융, 사업서비스, 물류 등에서 한국을 동북아의 중심에 두고자 하는 발상은 - 후에 ‘허브’라는 개념으로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경제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문제가 아니라 핵심적으로는 정치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나라가 허브가 되려면 주변국들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남과 북, 북과 미국이 핵이라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한반도에 돈을 싸들고 온단 말인가? 남북간에 그리고 한국 내부에서 전개되는 정치과정이 그야말로 안정화되고 선진화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동북아중심국’이라는 정치공약 자체가 처음부터 설익은 구상이었다. 한국이, 그리고 나아가 남북한이, 동북아의 허브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미국에 정치군사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아야 하고, 남북간 평화공존의 초석이 우선 마련되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장기적으로 한국이 미-중-일-러 등 주변강국에 대해 정치적 중립국가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허브국가는 완성되고 번창할 수 있으며 설령 이들 강국 간에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안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가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둘째, 한국을 허브국가로 발전시킨다는 생각은 적어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 방향만 잘 잡는다면 - 아주 훌륭한 생각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경제적 선결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주변강대국들이 허브국가인 한국 땅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게 하려면 이 개방적 상황이 야기하는 각종의 충격파를 내부적으로 흡수하고 조정할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유럽의 소국들은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개방 허브국가인 네덜란드가 2중 3중의 사회안전망으로 충격 흡수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좌파’ 정부라는 비난만 받고 실제로는 우파정책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진정 좌파정부이고자 한다면 이런 문제를 고민하여 임기 내에 사회보장제도와 이를 위한 조세개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동북아 허브국가로 한국이 도약하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사회적 대타협 같은 정책이 추구되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미 FTA를 통해 한국체제를 미국식으로 바꾸어 놓은 뒤에는 이런 사회민주주의적인 체제는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워진다. 바둑에도 돌을 놓는 수순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듯이, 국가정책도 순서를 잘못 놓으며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한미FTA와 노 대통령…알면서 택한 것인가, 몰라서 택한 것인가

한국의 보수세력은 애초부터 현정부의 지향과는 정반대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한국을 미국과 밀착시켜 미국과 운명을 같이 하고자 한다. 미군의 역할을 동북아로 확대하는 ‘주한미군 유연화 전략’에도 당연히 동의해 주어야 할 뿐 아니라, 최근 감소하는 한미 경제교역도 늘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경제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어 미국자본이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하나에 투자하듯이 쉽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친미 보수주의자들이 흠모하는 미국 땅에 보내 유학시켜 놓은 자식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큰소리치며 돈벌고 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향후 언젠가 미국이 중국과 정치군사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선다면(이는 매우 가능성이 높은 일이다) 한국은 어디까지나 미국 편에서 싸워야 한다. 과거 친일주의자들이 일본의 전쟁에 조선 젊은이들의 참여를 선동했듯이.

한미FTA를 통해 더욱 극심해질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외부충격을 흡수하고 약자에게 최소한의 생활조건을 마련해주는 사회통합적인 체제가 아니라 약육강식의 시장경제체제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내부의 긴장과 갈등은 극도로 심화될 것이다. 지금 한국 내에 사회분열과 긴장이 고조되고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요즘처럼 취업이 안 되는 젊은이들이 미국의 전쟁에 용병으로 자진 입대하겠다고 줄을 서는 사태도 상상할 수 있다.

이렇듯 한미 FTA는 ①한국에 글로벌스탠더드(바로 미국식 표준)의 도입을 촉진하고, ②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것을 예찬하는 친미주의자들이 주장은 매우 위험하며 한국사회의 올바른 길과 대립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노대통령을 당선시킨 한국의 개혁진보의 길과 한미FTA를 지지하는 수구보수의 길은 본질적으로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길이다. FTA를 위한 준비가 부족하고 협상력이 부족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경제효과에서나, DDA 다자간 협상과 비교한 우선순위에서나, 그리고 하다못해 정태인 씨가 주장하듯 미국 이외 국가와의 FTA 우선순위에서 보더라도, 그리고 외적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닌 주체적인 내부적 개혁의 중요성을 보더라도,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이 갈 길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노무현 대통령은 적과의 동침을 결행한 것인가? 참으로 프로이드 정신분석만으로는 답이 안나온다. 알면서 택한 것이 아니라 뭘 몰랐기 때문인가? 황우석 교수의 변명처럼. 하지만 한국에는 엄청난 사고가 터져도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인 한 가장 큰 죄악이고, 그 죄는 책임의 크기에 비례하여 증대함에도.

설마 이런 식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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