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회과학은 국내와 국제, 정치와 경제를 각각 독립된 영역으로 삼는 연구방법을 취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두 개의 이분법에 익숙해진 지식층들은 현실의 사안들을 이 두 개의 이분법으로 만들어지는 '2 곱하기 2' 표의 네 칸 중 어느 하나로 분류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클로버잎처럼 그렇게 네 쪽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 정치가도 군사전략가도 국제적 사업가도 사회운동가도 현실 세계를 움직이고 또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 그 누구도, 자신의 활동 영역이 이 네 칸 중 하나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큰 규모에서의 사회적 재구조화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이러한 두 개의 이분법은 사태의 종합적인 판단에 있어서 치명적인 장애를 낳을 때가 많다.

한미 FTA는 아직까지 철저하게 '경제적'인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0.42%니 1.99%니 하는 소숫점 두 자리의 숫자를 들이밀고 있으며, 보수언론은 이 문제를 시종일관 '돈계산'의 문제로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전체적 상황, 그리고 부시 정권 이후의 미국의 무역정책이 어떤 성격 변화를 겪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고찰을 해본다면 크게 재고해 보아야 할 사고 방식이다. 지금의 한미 FTA는 동아시아의 재구조화를 놓고 벌이는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의 하나로서 볼 필요가 있다. FTA는 한국사회의 향방과 관련하여 최소한 그 '2 곱하기 2'의 표를 따라 4개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


한미 FTA의 지정학적 의미…미국의 동아시아 경략 '말뚝'으로서의 한국

한미 FTA는 6자 회담 종결 이후 전략적 유연성 등과 함께 미국이 동아시아의 재편을 꾀하는 교두보로서 남한을 재구조화 하려는 큰 차원에서의 지정학적 전략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FTA를 부시 정권이 어떻게 군사 안보적 전략 옵션으로 사용해 왔었는가, 그리고 2006년 1년이라는 급박한 시한을 두고 FTA가 불거지게 된 전후의 동아시아 지정학의 맥락은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히 살펴야만 한다.

9·11 사건 이후라는 맥락에서 부시 정권이 새로 취한 노선은 무역정책을 군사안보정책과 긴밀히 결합된 하나로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던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시 정권에서 2001년부터 얼마 전까지 미국 통상대표를 맡았고 지금은 국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로버트 죌릭(Robert Zoellick)이 개발한 새로운 전략은 바로 “경쟁적 무역 자유화(competition for liberalization)”였다.

미국은 최고의 군사력과 최대의 시장을 가진 명실상부한 최고 강국이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와의 자유 무역의 체결은 당사국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포괄적인 “국익”의 증진을 가져오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자유무역을 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can-do countries)과 고집스레 거부하는 나라들(won't-do countries)로 먼저 나눈다(그는 부시보다 먼저 “악의 국가들(evil state)"라는 수사를 개발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가능성 있는 나라들을 따로따로 만나 미국과 한편이 될 수 있는 그 “특권”을 미끼로 하는 양자간 협상을 내걸어서 결국 그 나라들 사이에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경쟁을 붙인다는, 그래서 마침내 “자유화 국가 연합(coalition of liberalizers)”을 일구어낸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무역”의 지정학적 전략으로 인하여 미국의 간택을 받아 이 FTA의 물망에 오른 남미의 몇 나라들은 폭격당해 무너진 이라크처럼 미국의 동맹세력으로서의 국가적 사회적 재구조화를 겪게 된다. 반세계화 운동가 아지즈 츄드리(Aziz Choudry)가 불렀듯이, FTA는 이제 “레이저 유도 폭탄(laser guided bomb)”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올해초부터 불거져 나온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사안과 이 FTA라는 사안의 동질성에 착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냉전시대에 구축된 한-미-일 동맹이라는 성채를 다시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남한지역을 다시 그 첨병의 성격으로서 재구조화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희망하는 20여개 나라들 가운데 한국을 파트너로 꼽았다는 건 동북아에서 지주국가(stake)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한 것 같다"라거나 "무엇보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라는 상징적 효과가 크다"(중앙일보, 2월3일, “경제 외교 안보 아우른 한미동맹 업그레이드”)라고 하는 어느 외교 당국자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FTA는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이 동아시아를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경략하는 데에 필요한 전진기지, 즉 “말뚝(stake)” 국가의 역할을 맡길 것이라는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나 한-중-일의 경제협력, 특히 'ASEAN+3'과 같은 계기로 동아시아의 통합이 강화될 경우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 동안(東岸)에 적절한 발판을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한복판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을 “말뚝”으로 삼아 대만과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선을 복구하여 중국과 대륙세력을 고립시키고 해양세력을 뭉치게 하는 냉전시대의 지정학적 구도를 일단 재생시키고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 대륙쪽으로 경략해 들어가는 전략을 취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롭게 주시되는 것은 한미 FTA의 반대편 날개가 되는 한-ASEAN FTA의 가능성이다. 이렇게 한국을 “말뚝”으로 하여 동남아시아와 미국을 잇는 선으로서 FTA가 동아시아에 본격화될 경우,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함께 이 지역의 재구조화를 미국이 군사적·경제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이 될 것이다.


한미 FTA의 국내 경제적 의미…미국이 재편하는 한국 산업구조

한미 FTA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경제” 차원에서의 내적 연관을 가진 산업구조를 달성할 산업정책의 종언을 뜻하는 셈이다. 대외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서 권고되고 있는 대로, 한국 내의 각 경제 주체들과 산업 부문 사이에 현재 남아 있는 “생산 사슬”(production chain)은 해소되고, 미국경제와 통합되는 가운데에 미국의 경제 행위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치 사슬”(value chain)에 따라 재편될 것이다. 또 농업의 예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그 통합 과정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산업 전체가 크게 위축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또 FTA를 통해 한국 산업정책의 주도권은 미국자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한미 FTA 찬양론자들이 잘 언급하고 있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한미 FTA의 핵심일 수도 있는, 금융 분야의 통합이다.

FTA를 통해 금융시장이 완전히 미국과 통일될 경우 미국자본에 의한 한국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은 완전히 자유로와질 것이다. 이것이 FTA 이후의 한국 산업정책에 어떤 함의를 가지게 될 것인가. 비록 몇몇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성공적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업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미국자본에 의한 인수·합병의 덫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도 독일이 법률시장 개방 이후 9개 주요 법률회사 중 7개가 영국쪽으로 인수·합병된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미국자본의 인수·합병이 단순한 단기적 수익성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구조 나아가 산업구조 전체의 재편이라는 장기적인 계획들과 닿아 있고, 그뒤에는 투자은행 등의 대금융의 작동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그렇다면 FTA 이후의 한국경제는, 의미있는 수익을 낳는 주요 부문들이 미국자본의 계획과 이익에 따라 재편된다고 하는 식의 방향이 현실적인 “산업정책”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즉, FTA는 한국의 산업구조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기존의 한국 “중산층”들은 구조조정의 충격을 감당하게 될 것이니 한국인 “패배자들”이 양산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이러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보완적인 정책을 펼 여지는 FTA 자체로 인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에 더하여 금융 부문의 개방을 통해 한국에서의 활동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받는 미국자본은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 한국의 주요 경제 부문을 마음껏 재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들이 그 능력을 통해 사실상의 한국의 “산업정책”을 펴나가게 될 경우, “한국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정책 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한미 FTA의 국내 정치적 의미
불완전한 '1987년 채제'의 해체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

어쩌면 현재까지 우리 사회의 FTA의 논의 속에서 제일 간과되고 있는 측면일 수도 있다. FTA가 체결될 경우 흔히 말하는 국가와 시장의 관계는 크게 변화하게 된다.

FTA는 미국의 경제 주체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데 한국 내 경제 주체들에 비해 아무런 차별이 없도록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만약 한국 국가가 이런저런 “국익”을 내걸고 임의의 입법이나 행정권력을 통해 경제관계에 개입해 미국의 자본이나 기업이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경우 그들은 곧 바로 한국 국가를 제소하여 그러한 조치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경제적 거래와 계약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남한 국가가 개입하거나 제도와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크게 위축시키거나 경우에 따라서 아예 소멸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 있듯이, 이렇게 미국식 자본주의의 관습에 따라 사적 소유권의 보호 등 경제적 관계의 코드를 규정하여 그것을 전 지구적인 규범으로서 강제하여 개별 국가의 권력을 철저하게 제한해버리는 것이 지구화 시대 미국의 세계 전략의 핵심적인 한 부분이다. 미국 국무성이 발행하는 잡지 <Issue of Democracy> 는 2004년에 특별호를 편집하여 이러한 “헌정주의(New Constitutionalism)”야말로 미국의 고유한 특산품이며 전 세계로 수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설령 한국의 진보세력이 국가권력을 쥐게 된다고 해도 사실상 경제 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심히 제약당하고, 사실상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의 실질적 측면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목전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 정권의 노골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유린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중차대한 정치적 의미와 해당 산업 부문에서의 사람들의 경제적 이익에 큰 영향을 끼치는 FTA를 내년 3월까지 무조건 타결하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결의를 우선 천명해놓고, 거의 비밀주의에 가까운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현재 국가의 행태는 실로 19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착실하게 축적해 온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객원사진기자

한미 FTA의 국내 문화적 의미
한국인의 '미국화'로 이어질 공공서비스의 '상품화'

FTA가 그 대상으로 삼는 부문들은 의료, 교육, 서비스, 방송, IT 등등 우리의 일상 생활과 사회적 관계에 긴밀한 것들이다. 이런 부문들이 미국의 “스탠다드”로 통일될 것을 기도하는 것이 FTA라고 한다면, 이는 우리 나라의 사회적 관계 나아가 우리의 일상과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서비스(service) 산업은 인간이 어떤 재화(goods)를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산업을 뜻한다. 이러한 경제적인 정의를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것이 사실상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맺는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서비스산업이라는 분야는 거의 예외없이,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바가 과연 순수하게 상품인지 아닌지 모호한 산업이다. 의료나 교육같은 경우는 이러한 문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경우이다. 과연 선생님과 의사의 활동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경제적 행위인가 아니면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북돋우기 위한 활동인가. 이것이 대부분의 서비스산업의 문제에 따라붙게 되어 있는 “상업화” 대 “공공성”의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FTA는 이러한 서비스 영역이 철저한 상품의 영역이라는 전제를 확인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싸움에서 첨예하게 드러났던 바이다. 그리고 사회 공공성의 원칙을 앞세워 국가가 서비스산업에 걸어놓았던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와 규제들도 근원적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 결과 나타날 사회적 서비스 영역의 전면적 상품화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돈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은 각각 어떤 교육과 의료와 각종 서비스의 조건에 처하게 될까.

한미 FTA는 그런데 이러한 상품화의 문제에 덧붙여서 전면적인 “미국화”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송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공중파 방송국들은 외국 제작 방영물의 비율을 제한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정들이 철폐될 경우 어쩌면 우리의 TV는 아침에 <위기의 주부들>로 시작해서 저녁에는 <프렌즈> 심야에는 <섹스 앤드 더 시티>로 이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생활과 정신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소비행태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이것이 계층 간 문화의 분화에는 어떤 결과를 끼칠 것인가. 

"IMF가 을사늑약이라면 FTA는 한일합방"

이러한 점에서 한미 FTA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이익이냐 손해냐라는 차원으로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안팎을 철저하게 규정하고 그 향방을 결정적으로 굳힐 수도 있는 “나라” 차원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IMF가 을사늑약이었다면 FTA는 한일합방”이라는 진술에는 중요한 혜안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냉전이 끝난 90년대에 한국사회를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재구조화 하기 시작한 게 1997년의 외환위기였다면, FTA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재구조화를 완전히 정착시켜버리는 완결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사회는 2006년에 밀어닥친 이 중대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게 될 것인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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