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코닝(주)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설비보수 및 유지업무를 맡아 왔던 정금택(45)씨는 1998년 12월1일 (주)아텍엔지니어링으로 재입사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코닝에 입사해 ‘삼성맨’으로의 자긍심을 가졌던 그가 아텍엔지니어링으로 입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코닝에서 구조조정을 이유로 설비보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공무부 등을 분사시키고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강제퇴사시켜 아텍엔지니어링으로 입사시켰다. 물론 삼성코닝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퇴사하지 않으면 해고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정씨의 말이다.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삼성코닝은 1975년에 준공돼 흑백 브라운관 유리 및 컬러 브라운관 유리를 생산하는 업체. 한때 노동자수 2천여명에 5천만개의 CRT 생산을 기록할 정도로 수원지역 경제를 이끄는 상징적 기업이었다. 그러나 삼성코닝은 1998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아텍엔지니어링 등 수개의 업체를 분사시켰다. 정씨 역시 이같은 삼성코닝의 결정에 따라 아텍엔지니어링으로 입사하게 됐다.


삼성맨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

상여금과 임금이 전 직장에 비해 85% 수준으로 낮아지긴 했지만 정씨가 아텍엔니지어링 입사를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3년간의 고용보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삼성코닝에 함께 입사해 계속해서 근무하고 있는 동료와 아텍엔지니어링으로 재입사한 정씨의 급여 및 처우는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허리띠를 조금만 줄이면 생활은 가능하니까 정씨는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난 2001년 아텍엔지니어링은 176명이었던 직원 중 상당수에 대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반발해 정씨 등 몇몇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을 추진했다. 그렇게 앉아서만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쪽은 이미 유령노조를 세워놨고 3차례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정씨들은 번번이 실패했다.

“설마했지요. 그래도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 회산데, 그곳서 십여년을 일하고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이렇게 분사해 나오는 것을 묵인하고 삼성코닝에서 일했던 것보다도 낮은 임금, 턱없이 적은 상여금을 참고 살았는데….”

그러나 노조조차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176명이었던 직원은 2006년 4월4일 삼성코닝이 아텍엔지니어링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당시 52명까지 줄었다.

1998년 구조조정을 이유로 수개의 부서를 도급으로 전환한 삼성코닝은 LCD시장의 급속 팽창과 이에 따른 경쟁력 상실을 이유로 2006년 4월15일 삼성코닝 수원사업장 폐쇄를 결정했다. 설립된 지 33년만의 일이다.

삼성코닝은 이같은 사실을 지난 2월 협력업체들에 일괄 통보, 올해 생산시까지만 계약을 연장했다. 그러나 아텍엔지니어링이 이같은 계약조건에 반발하자 수원사업장 폐쇄 전인 지난 4일자로 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아텍엔지니어링에 근무하고 있던 52명의 노동자들 역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삼성맨 → 비정규직 → 해고자

정금택씨는 지난 5일 아텍엔지니어링 노동자 17명과 함께 평택시청에 노조설립에 성공했다. 3차례의 노조설립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이번엔 회사쪽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정말 조심스럽게 준비했다는 것.

이들은 물론 지난 2월부터 삼성코닝이 수원사업장 폐쇄결정을 통보한 직후부터 삼성코닝쪽에 ‘고용대책’을 요구했다. 정금택씨, 아니 정금택 아텍엔지니어링노조 위원장은 삼성코닝에서 이들에 대한 고용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조합원들 모두가 삼성코닝에 입사해 아텍엔지니어링으로 강제입사 됐다. 즉, 처음 우리는 모두 삼성코닝에 입사한 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는 말이다. 비록 중간에 분사됐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삼성맨으로 살아 왔다. 단 한번도 아텍엔지니어링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노조의 주장에 삼성코닝은 “강제입사 시킨 적이 없으며 자발적으로 그들이 사직서를 썼고 아텍엔지니어링으로 자발적으로 입사원서를 썼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정금택 위원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이야기한다. 삼성코닝 협력업체로 비정규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 뻔한데 어느 누가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썼겠냐는 것이다. 현재 노조가 삼성코닝에 요구하는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삼성코닝 정규직에 준하는 일자리 보장 혹은 고용승계 △고용승계가 되지 않을 시 정규직과 똑같은 조건의 강제해고 보상 △분사 이후 7년 간의 차별에 대한 적정 보상 등이다.

지난 4월초 노조는 수원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을 신청했다. 1998년 아텍엔지니어링은 삼성코닝으로부터 분사했지만 설비보수 및 유지관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작업도구 및 소모품을 전혀 갖추지 않고 삼성코닝의 장비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 사업체로서 경영 독립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그뿐 아니다. 업무와 관련한 지휘감독 또한 삼성코닝으로부터 직접 받고 있어 노무관리의 독립성마저 결여, 파견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노조가 삼성코닝에 정규직 수준의 고용대책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 뿐만은 아니다. 정 위원장을 비롯해 노조 조합원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20년여년 삼성코닝, 삼성에 입사했다는 그 자긍심 하나로 숱한 시간들을 참고 살아온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우리는 삼성의 정규직이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삼성코닝에 입사했을 때 그랬다. ‘인생 폈다’하고. 시골 어르신들도 모두 ‘이제 걱정할 게 하나도 없겠다’ 그랬고, 실제로 그랬다. 회사 일이 고되긴 했지만 급여 수준도 어느 업체보다 높았고 상여금도 풍족했다. 분사되기까지는….”

1986년에 삼성코닝에 입사한 정 위원장은 아텍엔지니어링에서 연봉 2,400여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함께 입사해 현재 삼성코닝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동료의 연봉은 4,500만원 수준이다. 어느날 갑자기 삼성코닝이 나가라고 했고 어느날 갑자기 아텍엔지니어링으로 분사된 그가 겪은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삶은 처참했다. 조합원들 중에는 아직도 자신의 부모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삼성코닝이 아닌 아텍엔지니어링에 다닌다는 말을 하지 못한 이들도 수두룩하다는 정 위원장.

"지금이라도 권리를 찾고 싶다. 1998년 아무런 저항 없이 삼성코닝이 하라던 대로 그렇게 쫓겨났고 또 그렇게 내쫓기는 것은 내 자식들에게도 우리 부모님에게도 창피해서 더이상은 참지 못하겠다."

조합원들 모두 같은 입장이다. 지난 4일 업체가 계약해지되기 전부터 그래서 그들은 삼성코닝과 면담을 요구하며 정규직 수준의 고용대책을 촉구했다. 난생 처음 피켓을 만들어 삼성코닝의 '달면 삼키고, 쓰면 삼키는 경영방식'에 대해서도 수원시민들에게 폭로했다. 서울에 있는 본사 삼무실 항의방문도 진행하고 지난 14일에는 기습적으로 임원실과 조형물도 점거(?)하며 그들의 주장을 언론에 알려내고 있다.

정 위원장과 17명의 조합원들은 두렵다. 바로 며칠 전에도 조합원 한명이 삼성코닝이 알선해 준 회사에 계약직 사원으로 가면서 노조를 탈퇴했다.

"세번의 노조설립 실패 경험을 겪으면서 우리는 삼성이 얼마나 무서운 회사인 줄 알고 있습니다. '무노조 경영'이라고 언론이 이야기 해서 들은 것도 아니고 그동안 우리가 삼성이라는 회사에서 소모품으로 일하면서 겪어봐서 더 잘 압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들이 하라는 대로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지난 15일 수원시내 한 곳에 마련된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정금택 위원장과 조합원들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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