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노조는 1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올해 임금협상안을 확정하고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발송했다. 민주노총 표준생계비를 토대로 조합원 생활실태조사를 실시해 평균요구금액을 산출하고 회사의 지불능력, 올해 예상 물가인상률과 경제전망 기대치 등을 모두 검토해 임금요구안을 결정한 것이다.

임금요구안 확정 보도자료가 나가자 보수언론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노동조합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내우외환’ 휩싸인 현대자동차"(내일신문)
"현대차 노조 내 몫 챙기기"(매일경제)
"현대車, 임금 태풍까지 ‘설상가상’"(경향신문)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놓고 마치 대역죄를 지은 것처럼 보수언론은 어려운 회사를 노동자들이 더 곤혹스럽게 만든다고 호통치고 있다. 

보수언론은 왜 현대차노조를 사냥하는가?

매년 현대차노조를 비롯한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회사와 협상에 앞서 보수언론의 무차별 공세에 맞닥뜨리게 된다.

물론 보수언론과 대기업의 연관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현대-문화일보, 삼성-중앙일보처럼 대기업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게 보수언론의 실체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언론인의 입장에서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전달하는 임무에 충실해주기를 미련하지만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언론이 매년 노동조합의 투쟁을 흠집내려는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현대차노조를 비롯한 대기업노조가 그해 어떠한 성과를 얻어내느냐에 따라 중소기업노조를 포함한 다른 노조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게 성과를 주되 최대한 흠집을 내고 만신창이로 만들게 되면 다른 노조로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축소되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올해 환율하락과 고유가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회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노동조합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올해보다 경기가 좋았던 2003년도엔 6천만원 연봉이라고 떠들며 '배부른 노동자들이 욕심을 부린다'고 사정없이 매질을 해댔다. 지하철노조가 파업하면 시민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였으며, 대한항공노조의 파업 땐 억대 연봉 귀족노동자들의 파업이라고 보수언론들은 매도했다.

대공장노조들의 영향력에 흠집을 내는 것은 대공장 노동자들을 철저히 고립시켜 국민들은 허리띠를 조이며 사는데 있는 놈들이 더 날뛴다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고단수의 심리전이다. 이러한 보수언론들의 억지 주장은 국민들과 대공장노조를 갈라치기 하는데 성공했으며,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기까지 했다. 

비상경영과 비자금의 함수는?

현대자동차 김동진 부회장은 연초 환율하락과 고유가를 이유로 ‘비상경영’에 들어갈 것이며 올해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이에 발맞춰 현대기아차그룹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은 임금동결을 자진(?)해서 선포하는 대회까지 열었다. 현대차의 비상경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청업체 납품단가 1조3천억원을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등기이사들의 보수한도를 7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인상했고 현대차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대주주인 정몽구와 정의선의 주식은 상장 한달만인 올해 1월 각각 4천억원대의 장부상 평가이익을 거뒀다. 정의선의 평가이익은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한 편법 상속이 뻔하다. 결국 김재록 로비사건과 비자금 사건이 터졌고 글로비스 비밀금고에서는 현금 69억원이 발견됐다. 비자금의 실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대차그룹 계열사에서 금품 로비를 벌여 550억원대 부실채무를 탕감받은 사실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뿐만 아닐 것이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비자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드러날 것이다.

현대차는 부랴부랴 하청업체와 상생하겠다며 4년간 10조2천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루아침에 10배의 손해 보는 장사를 한 현대자동차. 국민들에게 비상경영이라고 사기극을 벌인 현대차에 대해 보수언론은 관대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이미 주주총회를 마쳤고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투자사업들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차 체코 공장 및 기아차 미국 공장 착공, 현대차 중국 상용차 공장 건립, 현대차 인도 2공장 착공, 일관제철소 건립, (주)만도 인수 등의 사업계획을 확정한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10조원이 넘는 사업을 내놓은 것이다. 돈으로 막아보자는 현대차의 구태의연한 경영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른 측면으로 해석하자면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은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는 지불능력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비상경영을 하겠다며 사정이 어려운 하청업체들에게 납품단가를 인하하면서 최고경영자의 비밀금고에는 현금이 가득히 쌓여 있었다면 비상경영과 비자금 사이에는 묘한 함수가 존재함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도요타에 배울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 정씨 일가

현대차의 벤치마킹 대상인 도요타를 보자. "도요타는 글로벌 기업이다. 언제까지 도요타 일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피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이렇듯, 도요타는 전문경영인 체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정몽구 일가가 그룹 경영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온갖 비리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현대차와 차원이 다르다.

또한 도요타는 노동자들의 완전고용을 보장하며 근속년수별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도요타의 모든 경영방침이 올바르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 도요타와 비교하며 현대차노조에서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거나 현대차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거짓선전은 중단하라는 것이다.

현대차는 2003년 단체협상에 따라 주40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현장에 있는 어느 조합원도 주40시간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시급제 임금체계에서는 주40시간 근무제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만약 시급제 노동자가 주40시간씩 1년을 근무한다면 2005년 기준으로 월급여가 155만원이고 상여금(월할)이 122만원이 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3천3백2십여만원에 머무를 것이다. 그렇다면 연봉 4천만원을 넘기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연장근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주야간 교대근무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다른 국내기업과 비교해서 낮다는 것이 아니다. 야간근무까지 포함해 4천8백시간이 넘는 노동이 강요되는 현실은 대공장인 현대차나 중소영세사업장이나 같다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이런 살인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저임금에 허덕이는 중소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문제인 것이다. 

부자회사에 다니는 가난한 노동자

1978년 현대차는 겨우 포니를 10만대 생산하는 수준이었고 1986년 전 차종 생산누계 100만대 돌파했다. 2005년 현대차는 자동차판매 355만대, 자동차부문 매출 52조원, 그룹 전체 매출 85조원을 달성했으며 2006년 총매출 100조원을 예상하며 글로벌 TOP-5를 노리는 국내 2위 재벌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대차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매년 오르는 임금수준으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어렵다. 97년에 비교해 교육비는 최고 57% 상승했다고 한다. 사교육비까지 포함하면 상승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제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60~70년대 공부 잘하는 가난한 학생이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에 못가는 고리타분한 드라마가 이제 다시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무분별한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3천만원 연봉의 노동자가 어찌 공부 잘하는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겠는가?

보수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현대차노조는 연년 현대차 비상경영 선포로 위축되었던 분위기를 비자금 사건에 편승해 기세등등하게 회사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다. 비자금 사건이 있건 없건, 현대차 정씨 일가가 비밀금고에 얼마를 숨겨놓고 있건, 노동자들에게는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떳떳하게 요구할 노동자만의 권리인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더이상 거짓 왜곡보도를 중단하고 최소한 언론의 순기능인 사실보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비상경영을 떠들어댄 것도 현대차 자본가이고, 수백억씩 비자금을 모으고 불법 재산상속을 위해 온갖 비리를 일삼는 것도 자본가다. 보수언론들은 이러한 사실보도에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요구가 마치 골목길에서 쌈짓돈 터는 양아치인 양 취급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극에 동참하는 행위다. 그러고서 어찌 언론인이라고 떠들어댈 수 있겠는가?

40년 언론 외길을 걸었던 청암 송건호님이 생각난다. “크게는 민족 앞에, 작게는 자식들 앞에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 없다”며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고 외쳤던 참 언론인이었다. 그는 투사가 아닌 그저 언론인이고자 했다. 이 시대의 언론인들에게는 언론인의 자존심도 자본가들의 촌지 앞에서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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