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요즘 비정규직 입법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는 용역보고서를 고의적으로 공개를 지연하거나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행정처리 과정에서의 ‘관행’에 따라 일을 하다가 ‘실수’를 했을 뿐인데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연일 ‘은폐’라고 몰아세우고, 13일에는 한국노총마저 은폐 의혹을 밝히라고 촉구하고 나섰으니 당연히 심기가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겠다.

의혹은 주로 민주노동당이 제기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입법을 중단하고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법이 시행돼도 차별시정도 거의 되지 않는 데다, 정규직 전환효과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노동부가 이 ‘사실’을 숨긴 채 입법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를 책임졌던 남재량 연구원과 노동부 등은 민주노동당이 보고서를 아전인수식로 분석했다고 주장한다. 남 연구원은 13일자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보고서는 법 시행으로 차별이 몇 퍼센트 개선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처우를 완전 해소할 경우 소요되는 임금비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대로 보면 노동부가 굳이 보고서를 은폐하거나 지연할 이유가 없게 된다.

오는 18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18일이 지난다고 해도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도 않다. 원래 의혹이란 것은 제기하기는 쉬워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부 관계자는 13일 “도대체 은폐하지 않았는데 자꾸 은폐라고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느냐”며 “우리가 은폐라고 시인해 버리면, 이 문제가 끝나겠냐”고 항변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의혹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시행효과 분석’을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부가 먼저 나서서, 의혹을 제기하는 민주노동당이나 각 정당, 노사정이 모두 모여서, 다함께 신뢰하는 연구기관이나 복수의 연구기관에 맡기자고 제안하면 어떨까. 결과를 모두 수용한다는 전제 속에서 말이다. ‘억울하다’고 호소만 할 것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먼저 제안하는 용기를 가진 ‘대범한 노동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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