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쓰시나요? 10대 학창 시절 이후론 다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가물가물 하시겠죠. 여기 매일 일기를 쓰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한뎃잠을 자며 고용승계 투쟁을 벌이고 있는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자들입니다. 부지매들의 지난 12일 ‘노숙농성 일기’를 살짝 훔쳐볼까요.

- (서재관) 해고된 지 7개월이 지났다. 집에 가면 천막과 노숙 현장에서 고생하는 동지들 얼굴이 먼저 떠오르고, 길바닥 잠이 오히려 집보다 더 편하다. 나는 안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것을.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웃는 날이 올 것이다.

- (정덕룡) 길바닥에서 일기를 쓰는 지금,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과연 나는 언제쯤 저들처럼 이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지만 동지들과 시민들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다. 반드시 승리해서 뒤에 따라오는 비정규직들에게 희망으로 남고 싶다.

- (김은정) 열흘 넘게 노숙하고 나니 감기가 걸려 몸이 말이 아니다. 매연과 간밤의 추위 탓인 듯. 하루사이 손톱 밑에 때가 끼고 온몸이 부어버렸다. 이 투쟁이 정당하기에 이겨내리라 다짐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눈물나도록 아프고 서러운 생각이 든다. 하루 쉬고 싶은 생각 간절하지만 참아야 한다. 오늘은 병원 가서 꼭 나아야겠다. 동지들에게 감기 전염되면 안 되니까.

- 투쟁 속에서 동지애가 싹 튼다고 했나요. 질기게 싸워서 그야말로 비정규직 투쟁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KTX 여승무원, 농성장으로 가족 초대

-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KTX 여승무원들이 한달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요. 모처럼 가족들과의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 네. 13일 오후3시, KTX 여승무원들이 농성장으로 가족들을 초청해 '가족한마당' 행사를 벌였습니다. 오랫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승무원들이 가족들과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는 소식입니다.

- 그렇군요. 힘겨웠던 농성 투쟁에 가족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힘을 됐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조에서 가족들을 농성장으로 초청한 이유가 뭔가요?

- 네. 본지에서 보도한 바도 있듯이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가 계기가 됐습니다. 이철 사장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딸들이 벼랑끝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등의 극단적인 표현을 써 물의를 빚기도 했는데요. 이 편지로 인해 가족들이 많이 불안해 했다고 합니다.

- 따라서 노조는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가족들을 농성장으로 불러 파업 원인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또 긴 투쟁으로 지친 승무원과 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가족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이철 사장 등 경영진 항의 방문 등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말로는 설명도 못할

- <매일노동뉴스> 지면에 전에 없이 '영어'로 된 글이 많이 들어갔다고요.

- 네, 맹주천 공무원노조 법률팀장이 노동부쪽에 보내는 반론 글에 ILO 권고문 원문이 인용되면서, 영어로 된 글이 적지 않게 들어갔습니다.

- 맹주천 팀장에게 "<매일노동뉴스> 독자는 대부분 영어를 못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맹 팀장은 "해석의 차이가 큰 만큼 반박의 근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 어쩌다 교리 논쟁도 아닌, 번역 논쟁에 시달리게 됐는지 사실 한숨도 나오는데요. 공무원노조 특별법 발효 이후, 두달이 넘도록 20개 노조, 1만명이 안 되는 공무원만 설립신고 필증을 받아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꼭 국제기구에 물어야 답을 알수 있는 사안일까요?

-또, 노조 탈퇴 안 하면, '가족들에게 알리라'는 주문이 국가권력의 지침으로 내려가고 있는 현실도, 꼭 국제기구에 물어서, 영어로 답을 받아서 해석해야 되는 사안일까요? 그럼에도 비행기를 타고 국제노동기구를 찾아야 하는 대한민국 공무원 노동자의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플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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