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까지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가장 동경했던 국가는 미국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의 미국은 퍽 살기 좋은 나라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미국의 강력한 라이벌이 부상한다. 바로 소련과 중국, 북한이었다.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 중 일부는 이 나라들을 변혁 모델로 삼고 사회주의 혁명조직을 꾸리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20세기초 러시아의 경험을 기반으로 ‘2단계 혁명론’을 주장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 취한 다른 분들은 남한을 '반(半)봉건' 상태에 있는 미국 식민지라고 믿었다. 그래서 ‘파쇼정권과 재벌로 상징되는 반봉건 제도’를 격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현 단계 혁명의 성격’ 따위를 주제로 머리 터지게 싸우는 와중에 소련은 망하고 중국이 ‘고강도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북한에서는 기아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희극이며 비극이었다.

80년대와 90년대 사이의 단절

가수 정태춘씨가 ‘환멸’을 느꼈던 1990년대엔 프랑스와 독일이 떴다. 레닌이나 김일성의 정치 팜플렛이나 읽던 머리로는 도저히 독해할 수 없는 유럽 지식인들의 저서가 그야말로 ‘유행’ 했다. 하긴, 당시 발행된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번역서들을 보면 번역자 자신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이다.

프랑스에서 돌아 온 홍세화 선생, 독일에서 귀국한 진중권 교수, 러시아 출신의 박노자 교수 등이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이들 중 일부는 ‘좌파 자유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국가, 민족 등의 집단적 주체가 ‘개인성’과 ‘자유’의 가치에 대립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국가는 촌스런 단어가 되었다. ‘애국’, ‘국익’ 등은 적어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천박한 단어로 전락했다. 특히 지식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얼마나 국가를 우습게 보고 있는지 알리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 진보적이라는 잡지에 '강아지 목욕 때문에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인기 소설가의 칼럼이 버젓히 실릴 정도였다.

정말 ‘쿨’ 하지 않은가! 군부독재 시대에 입을 잘못 놀리면 공산당으로 몰렸지만, 1990년대 이후에 입을 잘못 놀렸다간 파시스트로 찍히기 십상이었다.

'안티-국가'가 진보라면 그것은 1980년대의 진보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80년대’의 진보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민족과 민중이라는 집단적 주체였고, 제일 중요한 사회변혁 수단은 국가기구였기 때문이다. 사실은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엔 엄청난 단절이 존재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비판과 스웨덴

최근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물론 스웨덴은 낯선 나라가 아니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스웨덴은 '무덤에서 요람까지의 나라' 혹은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은 한국인들에게 막연하게나마 ‘부러운 좋은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을 ‘사회적 타협’이라는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소개한 것은 이찬근 인천대 교수,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국민대 교수 등 ‘신자유주의 비판세력’이었다. 이들은 한국의 국민경제를 위해 사회와 재벌이 타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주장은 ‘박정희 = IMF 주범’, ‘재벌 = 경제 민주화의 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범민주화운동세력' 내에서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것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신자유주의 비판세력들의 모태 역시 1960년대 이후 형성되다가 1980년대에 정점을 이룬 범민주화운동의 정신이었다. 다만 신자유주의 비판세력은 한국의 현대 경제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었던 IMF 개혁의 결과들(저투자-저성장, 양극화 등)이 그동안 범민주화운동권 내에서 정식화되어 있던 경제관(민족경제론) 및 역사관으로는 해명은 물론 대안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스웨덴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혹은 집단)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들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안티-국가론’들, 즉 우파의 시장근본주의와 좌파의 문화적 국가혐오를 극복하려고 했다.

예컨대 스웨덴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만든 자본과 노동 간 대타협의 배후엔 무엇이 있었을까. 바로 국가였다. 그 유명한 잘츠요바덴 협약에서 스웨덴 국가는 노총(LO)과 경총(SAF)이 합의하지 않는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스웨덴 노동자와 자본에겐 러시아 같은 주변 대국으로부터 위협받는 자국의 위태로운 사정에 관련된 ‘국가 의식’이 있었다. 자본과 노동을 매개한 것은 국가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국가는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노동자들을 철저히 착취(exploit)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이 나라가 한창 잘 나갈 때는, 어떤 노동자도 집에서 쉴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심지어 가정주부들마저 집 밖의 사기업이나 공기업으로 ‘내몰아’ 사회적 노동을 강요했다. 또한 노총과 경총이 국가 단위에서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면 단위 노조의 노동자들은 이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것은 엄연히 ‘노동자에 대한 독재’다.

한편 스웨덴 국가는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끝없는 산업 구조조정과 저수익 기업의 퇴출을 강제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정책들의 목표는 국민경제의 성장이었다. 스웨덴의 계급 타협은 ‘연대를 위한 성장’이라기보다 ‘성장을 위한 연대’였던 것이다.

국가에서 탈퇴하지 말자

‘국가로부터의 탈퇴’를 주장하던 어떤 지식인의 스웨덴 예찬론을 읽은 바 있다. 전형적인 자가당착이다. 최근엔 다른 좌파 지식인이 이른바 국익과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립적인 것으로 규정한 글을 읽은 바 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계급적 단결을 이루지 못하는 바람에 국가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가장 비극적인 사태는 이른바 진보세력이 국가 혹은 국익이라는 가치를 애써 무시하다 보니, 국가 담론이 극우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한때 사회변혁의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봤던 국가를 그대로 수구세력에게 헌납한 것이다. 국가기구를 그토록 중시했던 진보세력의 지적 전통이 어쩌다가 이정도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이것은 80년대의 ‘사상’이 그만큼 천박하고 얕았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사실은 지식인들이 국가를 깔보는 수고로움을 일부러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한미 FTA처럼, 민족국가 개념을 초토화시키려는 조치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조만간 밀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족국가는 세계시장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고 이와 함께 한국의 노동자계급도 초유의 위기를 맞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국가에서 탈퇴하지는 말자. 노동자계급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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