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위원장 동지께

단식 15일차를 맞이했습니다.
체중이 9㎏가량 줄어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민주노총 앞 천막농성을 결정하기 전에 조준호 동지를 만나서도 말씀드렸듯 제가 민주노총에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KT노조의 해고 조합원 제명 조치에 대한 조직적 입장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이번 KT노조의 저와 이해관 동지에 대한 제명 사태는 KT노조 스스로도 인정하듯 KT자본에 의해 추진된 것입니다. <문화일보>의 결정적 왜곡보도와 <중앙일보>의 사설은 이번 제명 사태가 얼마나 치밀하게 기획된 것인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제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KT자본의 노동운동가에 대한 공격이 회사에 의해 장악당한 KT노조를 통해 조합원 제명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마치 이것이 KT노조 내 조직 갈등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저와 이해관 동지에 대한 KT노조의 제명 사태야말로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자본이 조직분규를 가장해서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것의 신호탄이며,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노총이 운동적 원칙과 기풍을 더욱 올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저는 민주노총이 이번 제명 사태에 대한 조직적 입장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민주노총의 신임 집행부는 ‘이 문제는 단위사업장의 문제이며 따라서 총연맹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 문제는 원칙과 기풍의 문제입니다. 기아차노조의 취업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그 누구도 이 문제가 '단위사업장의 문제'이므로 민주노총은 모른 척 지나가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운동의 정당성과 직결된 원칙과 기풍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에 맞서 투쟁하다가 자본에 의해 해고된 노동자를, 자본이 장악한 노동조합이 나서서 제명한 문제에 대해 단위사업장 차원의 문제라며 민주노총이 침묵한다면, 이는 이 땅 노동계급의 대표 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의 원칙과 기풍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만간 민주노총 중집회의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조준호 위원장 동지에게 요구합니다. 원칙과 기풍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KT노조의 해고 조합원 제명 사태에 대하여 민주노총의 조직적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사실상 제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KT노조로부터 제명을 당해, 한때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그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단식농성을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더욱 더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기풍과 원칙의 훼손에 대해서조차 민주노조운동을 하는 동지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조준호 위원장 동지!

분파적 계산이 운동의 대의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조직은 더이상 역사를 진보시키지 못합니다. 조준호 위원장이 겪고 있을 여러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조준호 위원장 동지의 힘찬 결단을 기대하겠습니다.

2006년 4월11일
KT 제명 해고자 유덕상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