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매몰차기만 했던 긴긴 겨울이 가고 희망의 상징인 봄이 왔네요. 꽃들도 잃었던 미소를 되찾고, 누군가에게 밟혀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들풀들마저 지금 이 계절만큼은 웃고 있는데, 우리 가족의 두 눈엔 언제나 눈물이 고여 있네요.

봄이 오면 아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자던 약속도 이제는 또 하나의 꿈이 되어 버리고, ‘지키지 못하는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아들에게 했던 우리 부부의 입장이 웃을수도 없고 울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이 되어 버렸네요.


오늘은 저뿐만이 아닌 당신을 너무나 쏙 빼닮은 당신의 아들이 아빠를 유독 찾아 저의 가슴을 갈기갈기 도려내네요. 차라리 당신이 범죄자였다면 당연히 지은 죄에 벌 받는다 생각하면 혹시나 마음이라도 편할까요?

여보, 몸은 어떤지요? 회사에서 깡패를 하루에 20만원씩을 주고 채용하는 바람에, 외딴 곳에 사는 조합원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내는데, 이부자리를 보면 당신 생각이 절로 나 베갯잇에 눈물을 적시고 맙니다.

저는 그나마 이렇게 이부자리까지 펴서 따뜻한 방에 자는데 당신은 지은 죄도 없이 차디찬 콘크리트바닥에서 잔다는 생각에, 하루 속히 일이 잘 해결되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여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이제껏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 죄밖에 없습니다. 아이스크림의 맛을 지키기 위해 운전 중에도 온도조절 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간에 쫓겨 끼니도 제때 못 챙기기 일쑤인 당신. 명절휴가 때에도 일요일 대치근무를 조건으로 명절 당일밖에 쉬지 못하고, 여름휴가조차 없어 가족들과 여행 한번 가보질 못해 나와 아들에게 “할말이 없다”는 당신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 옵니다. 하물며 수배생활 하느라 담배까지 늘고, 몸 관리 해야 할 나이에 마음과 몸이 모두 상하니 어쩌면 좋아요?

4천만원 목돈을 들여 2.5톤 트럭을 구입해 회사에 들어갔지만, 지입제다 보니 이리 떼이고, 저리 떼이고…. 한정된 월급에 차 유지비며, 지입비, 보험료 빼고, 게다가 주기적으로 목돈이 들어가는 수리비까지 빼고 나면, 겨우겨우 생활비만 남게 되지요. 생활비로도 빠듯해 적금도 못 붓고, 자그마한 보험 하나 들어놓았다가, 이참에 보험약관 대출 받아 생활비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보!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엔 괜한 두려움도 있었고 주변의 시선에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가난하고 약하다는 이유 하나로 한솥밥을 먹던 기사들 사이를 돈으로 매수하고 회유하려 든 악덕 기업주에 맞서고 있는 당신을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응원하려 합니다.

당신이 있기에 저와 우리의 아들이 있습니다. 하루 속히 승리해 당신의 분신인 아들의 소원인 놀이동산에 가야지요. 또 언제부턴가 조합원 가족들 사이의 유행어가 돼 버린 “아빠 오시면 사줄게” 한 약속도 지켜주세요.

여보! 역시 시련을 겪고 나면 사랑의 색깔은 더욱더 짙어지나 봐요. 작년 가을에 큰맘 먹고 장만한 꽃무늬 요를 깔고 당신의 팔베개에 당신의 잔잔한 목소리에 평화로운 꿈을 꾸며 자고 싶어요. 지금 순간순간 힘들고 지치더라도 힘내시고 반드시 밝은 내일의 태양은 떠오를꺼라 믿고, 언제나 멋있는 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없는 빈자리 두몫을 하려니 바쁘네요. 아들이 아빠한테 전화해 달라며 보채네요. 오늘은 여기서 줄일께요. 여보!! 사랑합니다.

2006년 4월 안사람 노영숙


<편집자 주> 배스킨라빈스 음성공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른 지 올해로 5년째라는 조성만(40)씨. 한살 어린 부인 노영숙(39)씨와 2000년도 결혼해, 슬하에 유치원에 다니는 6살짜리 아들을 둔 그는 화물연대 충북강원지부 음성지회 배스킨라빈스분회장이기도 하다.

지난달 6일 운송회사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고 항의시위를 벌이다,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당해 현재 수배생활 중인 조성만 분회장에게, 그의 부인인 노영숙씨가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편지를 보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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