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총리 가능성에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장상 전 서리가 위장전입 문제로 서리에 머문 것에 비해 한명숙 의원의 총리 임명은 비교적 순탄하지 않을까 점쳐지고 있다.
한명숙. 믿어 의심치 않는 여성운동의 대모. 부드러운 카리스마라 칭해지는 온화한 이미지에서 묻어나오는 품격. ‘운동권 새댁에서 여성 총리로’라는 일간지 머리기사처럼 잘 알려진 그의 인생역정은 다시 한번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해찬 총리와 대비되는 인상평도 좋은 점수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공신화와 정치공학

그러나 그에게 칭해지는 수많은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 출신의 첫 여성 총리’로서 흔쾌하지 않은 점이 있다. 현 여성운동에 대한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거론되자 곧바로 ‘한명숙, 강금실’로 ‘열린우리당의 반전’의 시나리오가 써지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 당적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다분히 ‘몽니’로 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참여정부의 국무위원 인사와 국정운영이 관권선거로 흐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쟁의 한 가운데에 훌륭한 방패로 ‘한명숙 후보’가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성공신화’, ‘역전의 드라마’가 온전히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의 기반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치공학에 기반한 것이었기에 그를 진보적 ‘정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는 어렵다. 지방선거를 앞둔 가장 큰 정쟁수단이 될 총리 인선 과정이 아니었다면 현재 상황이 발생했을까 의문도 든다. 이것이 정부여당의 ‘여성성’이다.

그는 여성운동 수혈로 국민의 정부의 개혁이미지를 분칠해 준 정치인 중의 한 명이다. 그때 한국 사회의 정치변화를 꿈꾸며 제도정치와 타협하지 않고 진보정당을 힘겹게 일궈 온 집단이 있었다. 많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손쉽게 성공신화를 쓰며 그 중 어떤 정치인은 ‘진보정당 지지표는 사표'라는 주장을 하며 표 도둑질까지 일삼을 때 그는 그 무리와 한 패였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노동자 서민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억압의 기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고통받는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그는 튼튼한 성공의 동앗줄을 잡았고 운도 좋았을 뿐이다.

수혈과 분칠, 그리고 도둑질

진보정당이 여성 의제를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한 한계는 우리의 무능함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여성운동을 제도정치에 들여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이뤄낸 성과 중 하나인 모성보호법은 여성노동권을 후퇴시키며 맞바꾼 것이다. 당시 여성운동진영과 노동진영이 갈라진 이유가 되었다. 여성단체들이 공동대응할 때 민주노동당은 정당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지만 그들은 정부여당을 통해 입법을 추진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또다시 색깔 논쟁을 벌일 것이다. 유신체제에 저항한 한명숙 후보자와 유신체제의 명맥을 이어 온 박근혜 대표의 싸움은 사회변혁운동 자체를 타자화 할 것이다. 저항의 주체였던 사람들은 쓴 물을 삼킬 것이고 저항의 중심에서 소외된 민중들은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필자는 ‘첫 여성 총리’가 ‘여성운동의 성과’로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건이 아니라 정쟁의 산물인 ‘지방선거용 첫 여성총리’라고 감히 칭한다.

제도정치인 중 우리가 기대하는 인물이 별반 없기에,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려면 사람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 정치권의 기조가 달라져야 하는 문제이기에, 우리가 그를 아무리 철저하게 검증하더라도 그를 ‘반대’하거나 ‘찬성’할 명징한 근거를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그가 참여정부의 ‘지방선거용 총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더구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높다. 아니, 이미 그는 극복되어야 할 집단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가 ‘양극화 해소와 평등 사회 실현, 정치개혁’을 실현할 적임자라며 대대적인 환영 입장을 낸 여성단체들은 그를 ‘여성운동의 성과’로 평가하겠지만 그가 온전히 ‘여성운동의 성과’로 평가되려면 과정이 많이 달랐어야 하며 여성운동도 그 과정에 개입했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최초의 여성총리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더 실망스런 일은 드러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그가 여성이기에, 더구나 꽤 괜찮은 여성이기에 잘 하라는 격려의 박수도 보내고 싶다.

진보정당이 해결하지 못한 복병

한편, 이 흔쾌하지 않은 ‘여풍’에 민주노동당이 더욱 ‘긴장감’을 갖게 된 현실을 인정한다. 그것은 전체 운동에서 여성운동이 진보정당운동과 다르게 제도화 된 것도 한 원인이지만 30대 정규직 노동자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한 당의 한계가 가장 큰 원인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구태의연한 정파 싸움 혹은 명분 없는 이해관계 충돌로 우리 정체성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게 하지 못한 우리 안의 ‘수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진보정치연구소가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밝혔듯이 30대 여성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민주노동당과 가깝게 느끼면서도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느끼는,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식의 불일치’와 20대 여성이 ‘한정된 계층을 위한 당’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극복해야 할 한계 지점이다. 우리는 개혁 이미지의 거물급 ‘여풍’에 또다시 비판적 지지의 몸살을 앓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없이는 이것은 계속 복병이 되어 우리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여풍’의 대항마로 ‘서민여성대표’ 김혜경 시장후보를 주창하였지만 당원들의 선택은 ‘젊은 진보’였다. 김혜경 코드가 단지 여성으로만 집약되는 것은 아니었듯이 김종철 코드가 갖는 장점도 많다. 김종철 후보는 그 장점을 갖고 왜곡된 ‘여풍’을 ‘진보적 여성성’으로 돌파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여성성을 제대로 구현하고 외화시켜내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 차이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권력’을 영입하지 않는 무명의 정치집단이다. 그래도 힘겹게 여성지역구 후보를 꾸역꾸역 만들어내서 650여명 후보 가운데 30% 이상을 여성후보로 채워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단지 수치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진보적 여성주의로 거듭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차이를 드러내고 가려졌던 여성의 목소리를 외화시켜 낼 것이다.

무명이 키워낼 싹을 기대하며

우리의 힘겨운 과정이 또다시 사이비 개혁세력에 의해 미완의 과정으로 자리매김 할지도 모르지만 그 씨앗이 전국 곳곳에 작은 싹이라도 틔울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은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이 수많은 ‘첫’ 역사를 쓰는 온전한 정치변화를 일굴 수 있는 텃밭이 될 것이다.

첫 여성 대통령만큼은 ‘세상을 바꾼 여성’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소외된 단면을 드러내고 그것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온전한 서민 대표자가 나오도록 진보진영 전체의 변화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