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누군가가 갑자기 탈이라도 나게 되면 건강보험카드를 갖고 병원을 찾게 되는 게 당연하다. 밤중에 탈이 났던 아이가 병원 치료를 받고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편으론 건강보험에 대한 고마움과 정부 관리 건강보험 제도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마음까지 가졌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정부의 일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민영보험 도입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이상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어 안타깝다. 쌀시장 개방, 영화 스크린쿼터 폐지 등으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요즈음 국민들의 건강을 보장하는 정부보장 건강보험 관리방식을 포기하고 민영보험을 도입하려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민간보험 도입의 근거로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 건전성을 통해 확보한 여유재원으로,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 사업을 수행한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빼내서 다른 수레를 굴리려는 것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포기하고 민간보험 회사에게 새로운 사업영역을 제공하려고 하는 것 같아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설사 정부가 추진하려는 민간보험 도입정책이 백번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의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첫째로, 개인 의료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다. 민간보험이 도입되면 민간보험사에서는 개개인의 보험료 산정을 위해 건보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질병자료 이용을 요구하게 될 것이며, 이 경우 민간보험 도입에 앞장섰던 정부가 어떻게 건강보험의 개인질병 자료를 보호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의료와 건강문제 양극화의 심화 문제다. 현재 건강보험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가입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나 민영보험이 도입되면 저소득, 고위험 계층에 대한 가입이 제한되고 고소득과 저위험 계층, 부유계층만 가입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계층간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될 것이 분명하고, 사회양극화 해소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한 현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셋째로, 국민들의 의료보장 혜택은 줄고 비용부담은 증가할 것이다. 민간보험의 기본목적은 가입자에 대한 의료보장보다는 보험료 수입을 통한 수익창출이다 보니, 건보공단은 5년 평균 지급률이 189%인데 반해 민영보험 지급률은 61.3%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시 말해 건강보험은 100원을 내고 189원 혜택을 받는데 반해 민영보험은 100원을 내고 61원 혜택을 받게 되는 논리다. 이 경우 대다수가 가입자인 국민들이 손해 보게 되는 경제적 손실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넷째로, 개인·가계·기업·정부 모두의 비용부담이 증가할 것이다. 민간보험이 본격 도입되면 사치성 의료 이용으로 국민의료비를 증가시켜 건강보험의 재정악화뿐 아니라 국가전체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외에도 저소득자와 비용지출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입자는 공보험에 잔류하게 됨에 따라 공보험의 재정악화 및 붕괴 현상이 초래돼 저소득 세대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고급의료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실제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고급병원을 이용하는 일부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대다수 국민으로 의료이용이 양극화 될 것이 분명하다. 고급의료를 경험하면서 기대수준이 높아진 일반국민들이 기존 병의원과 건강보험에 가지는 불만은 더욱 팽배해지고, 의료기관들 사이의 무분별한 경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위와 같은 이유만 보더라도 건강보험에 대한 민영보험 도입 추진은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이제 좀더 솔직해지자.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민간보험 도입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제부터라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현재 61.3%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율을 2008년까지 7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또한 의료서비스 분야의 질 향상을 위해서 의료서비스 및 의료기관에 대한 표준평가를 실시해야 할 것이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공보험 체제 강화를 위해 보험자 역할과 기능 강화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

건강보험에 대한 민영보험 도입을 중단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한 건강한 건강보험제도를 완성하는 실사구시의 정책을 펼쳐 나가는 것이 진정한 국가의 책무임을 되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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