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국민운동본부)가 28일 발족한다. 그동안 영화인 대책위, 농축수산 대책위, 교수학술 공대위, 보건의료 대책위, 교육부문 단체위, 문화예술 대책위, 시청각미디어 대책위, 지적재산권 대책위 등 각 분야별로 활동해 온 여러 공대위·대책위를 포괄하며, 국민운동본부는 한미 FTA 반대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조직 발족에 즈음해, 점검했어야 할 여러 과제들이 있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이제 이후 향후 활동 과제로 자리잡게 될 것들을 살펴 보자.


집회 날짜 조정 이상의 역할 준비돼 있나

우선 인정되는 것은, 시민-사회-민중 진영이 연합조직을 만들어내는 ‘노하우’가 늘었다는 점이다. 이번 국민운동본부의 경우도 “사상 유례 없이 전 분야를 포괄하는 연대조직이 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문제는 국민운동본부의 현재 준비 정도가, “집회 날짜 맞추는 수준”(국민운동본부 준비 실무에 참여한 한 관계자)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떤 목표로 싸울지, 어떤 내용으로 대국민 선전을 할지 명확한 기획 없이, 각 분야별 대책위-공대위의 병렬 상태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 문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 “한미 FTA가 전 사회적인 파급력을 가진 협정이 될 것”이라는 점과 “한미 FTA 저지투쟁의 핵심은 ‘담론 투쟁’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역동성’ 있는 투쟁을 이끌고 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담론으로 묶을 ‘내용’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일단 병렬시킨 연대조직이, 전사회적 파급력을 가진 협정의 ‘유기적’ 연대 이유를 만들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책기획팀 구성이 논의되곤 있지만 인력과 조직체계를 확정하는 것은 아직 '과제'다.

농업은 '파탄'…그럼 노동은?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조직은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문제. 우르과이라운드, WTO, 한-칠레 FTA를 거치며,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이골’이 난 농업 분야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업 부문은 축산과 어업 분야를 묶어 농축수산 대책위를 구성하고, 한미 FTA에 따른 피해 정도를 수치로 제시하고 있다. 한미 FTA로 인해 8조, 뒤따른 DDA 협상에 따라 7조, 도합 16~17조원의 피해를 볼 것이라는 농업단체들의 주장은 일단 ‘농민대중’에게 ‘확실한 투쟁의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전체 농업생산이 20조원인 것과 비교해보면, 정확히 ‘파탄’이라는 답으로 귀결되기 때문.

더해서 “100만명의 농업 실업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은 300~400만명으로 추산되는 농민계층의 붕괴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 개방과 신자유주의의 직접 피해를 본 당사자인 농민과 농민단체는 FTA에 따른 피해 규모를 산출할 능력과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농민단체 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앞선' 노동과 정치가 뒤처진 상황

그럼 노동자는 어떤 피해를 입게 될까.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60%에 달하게 늘었고, 가장 강한 노조의 조직력을 자랑하던 완성차 대공장을 중심으로 ‘유례 없는’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파견법이 통과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피해를 몸으로 느낀 노동운동이지만, 경험은 교훈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한미 FTA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를 예상하고, ‘설득력 있는’ 데이터를 제시한 곳은 아무 곳도 없다. 물론, 각 분야별, 특히 신자유주의 개방 반대 투쟁의 경험이 있는 교육, 서비스, 의료 등의 분야에선 관련 대응과 예상치를 내고 있지만, ‘총자본’에 대별되는 ‘총노동’의 입장에 따른 보고서는 전 진보진영에서 단 한 차례도 발표된 바 없다.

분야별 각개약진을 멈추고 일관된 담론투쟁으로 나갈 조건, 병렬이 아닌 치밀한 기획 아래 반대투쟁을 조직할 조건을 만들지 못한 이유의 대부분은 사실, 진보진영 자체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노동’과 ‘정치’로 보인다.

이같은 현실은 진보진영의 총체적 무능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FTA는 산업 구조조정의 문제이며, 그것은 곳 노동시장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일관된 말이기 때문이다.

“총연맹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
민주노총, 서둘고 있지만 속도가 안 나
"노동쪽 대책위가 발족이 늦다. 사실, 내용적으로 잘 준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는 기자의 질문에 김명호 민주노총 기획실장은 답에 앞서 한숨부터 쉬었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또한 각 산하조직, 예컨대 보건이나 교육, 서비스 쪽은 나름 대책위를 구성하고 내용과 조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미 FTA의 문제, 또한 FTA 자체가 각 분야별 득실을 따지며 대응해 나갈 문제가 아닌 것 아닌가. 김명호 실장 역시 “각 분야별로 진행되는 싸움으로는 필패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총연맹의 역할”이다.


“총연맹이 관점을 통일하고, 정리할 때 각 산하 조직의 고민과 관점이 확장된다. 현재 노동쪽의 대응이 늦고, 각 분야가 각개약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총연맹 전반의 기능 약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연맹들이 먼저 시작하고 자기들의 문제를 걸고 나서는 것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사실, 2005년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과 지도부 총사퇴, 비대위의 난항, 지도부 보궐선거 난항 등 민주노총의 최근 몇달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몇개월 동안 총연맹의 집행력이 반으로 줄었다”는 것도 여러 곳에서 나오는 말이다. (가닥을 잡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당장 총연맹의 중앙 상근인력 확정 문제 같은 지엽말단적인 문제가 ‘정파’별로 다르게 해석돼 갈등을 빚고 있는 것 자체가 상징적이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는 관련 특별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고, 영화인 대책위 등을 만나면서 나름대로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여러 자리에서 “한미 FTA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2006년 핵심 사업으로 ‘한미 FTA 반대’를 내걸고 있고, 이는 ‘세상의 바꾸는 투쟁’의 중심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미 FTA가 노동시장에 미칠 조건’을 연구해, 담론에서 구체적 사례까지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면피’ 이상의 역할을 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할일에 비해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당 의원단, 지연-저지 위한 전술 구상 중
민주노동당 원내에서도 한미 FTA 대응 관련 전략이 한창 마련 중이다. 원내에선 “한미 FTA 논쟁은 궁극적으로 담론 투쟁의 성격이 강해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한미 FTA 추진의 절차 문제 △참여정부의 반서민-친자본 본질 및 사회양극화 심화 거대실정의 폭로 △한미 FTA 협상에 대한 국회의 조정 감독 책임성 부각을 쟁점화의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여야의원모임, 국회 FTA 특위 구성 등 실질적인 협상 조정·감독에 따른 지연·저지 전술을 짜고 있다. 또한 통산절차법과 무역조정지원법 등 법리 투쟁도 이어갈 계획이다.


그러나 앞선 WTO 쌀 개방 문제 등에서 보이듯, 국회 내 여론 조성과 반대투쟁의 한계를 넘어설 계획을 짜는 것은 9명의 의원으로 예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한 일.


한미 FTA 저지 투쟁이 원내외가 결합된 담론투쟁의 전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인터뷰>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진보진영 최대의 싱크탱크인 거대 정책위와 9명의 의원, 300여명의 상근 활동가를 가진 민주노동당 내에서, 이 문제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사람은 서준섭 연구원 한명이다. 관련 분야 연구원과 의원실쪽에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직 본격화 되진 못했다. 서 연구원은 “결국은 담론 싸움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당의 준비가 빠른 것 같진 않다.
사실 체계를 서둘러 잡았어야 했는데, 빠르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2주 전에 특별위원회 구성이 논의됐지만 원활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정책위는 한달 전부터 한미 FTA 정책팀을 만들어 운영해 왔고, 의원실에선 2~3주 전부터 관련 의원실의 보좌관 회의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당이 다른 분야에 비해서도 빠른 준비를 한 것은 아니다."


- 결국 담론 투쟁으로 귀결될 싸움으로 보이는데.
"IMF 이후에 ‘수출이 국익’이라는 담론에 진보진영이 대항하지 못했다. 현실적 힘은 물론이고 기본 담론을 깰 준비도 못해 왔다. 이번 한미 FTA 반대 싸움을 하면서, 그 정책역량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 특히 노동과 관련된 분야에선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노동시장이라는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노동시장의 문제가 노동계의 문제만도 아니다.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한 분야의 실업은 노동시장 전반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분석과 정책역량이 완전히 비어 있다. 그러나 보니, 한미 FTA 국면에서도 자동차, 전기, 전자 등 시장의 변화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의 노동자들은 관심을 안 갖게 된다. 전반적인 노동시장 변화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지만 적극성이 안 보인다. 노동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연구한 부분이 없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 전반적인 연구와 방향을 제시할 ‘콘트롤타워’의 역할 부재가 큰 것 아니겠는가. 사실 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도 이 문제를 중심 담론을 잡아 내진 못했다.
"우르과이라운드 이후 농업 분야가 서운해 하는 면이 많은 것으로 안다. 부문의 문제로만 취급됐던 것이 사실이다.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지 못한 것도 맞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밀고 온 담론을 정면으로 받아치지 못했다. 한편에선 열심히 투쟁해 온 농업 담당자들 역시 담론 투쟁에 적극적이진 않았다. 분야에 매몰됐다. 결국 담론에서 구체적인 사례까지를 관통시킬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없었다는 지적이 맞을 것이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는 구호를 뒷받침할 내용이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신자유주의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고, 그를 반대하는 쪽에서도 아무런 내용을 만들지 못했다. 노동자에게 미칠 파급력, 소비자에게 미칠 파급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공공성 담론의 경우도, 공공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전달하지 못하고, 추상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데, 우리는 추상적 구호로 전달했다."


- 한미 FTA 반대 싸움에서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고 보는가.
"한미 FTA 자체가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의 자유화의 완성을 의미한다. IMF에서 시작된 게 완성되는 것이다. 한미 FTA 역시 IMF 이후 한국사회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이 추진하고 있고, 그들이 형성한 담론이 힘을 받아 왔다. 그 담론과, 그 세력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가 이번 싸움의 관건이다.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자유화를, 그 담론을 저지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 이번 싸움은 바로 그 문제를 걸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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