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에는 양극화 문제가 전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많은 관심과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올해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정책 처방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결정적인 방안으로 등장했다. 즉 한-미 FTA 체결이 시장경제 및 개방경제의 확대를 통해 생산성 제고와 소득증대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사회안전망만 적절하게 정비되면 양극화 문제가 쉽게 해소될 수 있다는 급조된 억지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 사전논의, 공동연구, 의견수렴조차 없어

한-미 FTA 추진과정과 절차는 과연 현 정부가 참여정부인지 자체를 의심케 한다. 우선 한-미 FTA 논의과정과 절차를 미국과 한국의 내부 사정에서부터 추적해 보자.

한-미 FTA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1월 한-미 FTA 추진과 관련 실무적인 검토에 합의하면서부터이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부시 대통령은 2004년 말 우리 정부가 내비친 한-미 FTA 체결 의향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5년 세 차례 개최되었던 한-미 FTA 사전실무점검회의에서도 원론적 수준에서의 논의만 있었다.

한-미 FTA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9월20일 한-미 정상 간의 전화통화 이후였다. 사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미 FTA 체결은 우선순위에서 한-일 FTA에 밀려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정부는 한-일FTA를 우선적으로 체결하기 위해 이미 몇년 전부터 한-일간 FTA 체결을 위한 사전논의와 공동연구를 해 왔다.

하지만 2003년 12월22일 이후 공식협상에 들어간 한-일 FTA협상이 원래 예정되었던 2005년말까지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이후 한일관계가 독도 문제, 과거사 정리 및 일본의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양국간 중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FTA 체결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 결과 한-일 FTA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DJ 정부 이후 가능한 한 많은 FTA를 체결한다는 기본 입장을 가진 한국정부로서는 중요성이 덜한 한-칠레 FTA나 한-싱가포르 FTA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또한 한국의 재경부와 외교통상부 관리들도 당초 빠른 시일 내 타결될 것으로 기대했던 한-일간 FTA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FTA 추진 실적이 전반적으로 저조하게 된 것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이 먼저 우리에게 제안한 한-중 FTA에 대해 선뜻 응하기도 어려웠다. 왜냐하면 참여정부 이후 한-미 관계가 가뜩이나 소원해져 있는 상태에서 미국은 한국이 먼저 중국과 FTA를 체결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한-일 FTA의 추진 이면에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예상 밖의 시대착오적 동기가 작용했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노조까지 동원해 FTA 이해관계 수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 및 대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재경부와 외교통상부의 고위관료들이 한-미간 FTA체결을 위한 공동연구나 사전검토 없이 전격적으로 한-미 FTA를 체결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불행하게도 대통령을 비롯하여 참여정부의 다른 핵심참모들은 외교통상부와 재경부의 친미주의·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흡수·동화되고 만 셈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 이미 5~6년 전에 한-미간 FTA 체결논의에 대비하여 한-미 FTA 체결이 가져올 여러가지 파급효과들을 자세히 분석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미국정부는 한-미간 FTA 체결에 대비하여 각종 산업협회, 농민단체, 노조 등 미국 내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요구를 수렴해 왔다.

미국의 이런 노력에 비하면 한-미 FTA 체결에 대비한 한국정부의 태도와 준비 상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일 FTA보다 사안의 중요성이 훨씬 더 큰 한-미 FTA의 경우 사전연구팀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들의 연구검토 결과도 중간에 공개한 적이 없다. 또한 양국이 2006년 2월4일 한미 FTA 체결을 위한 예비협상을 개시하기로 발표하기 전까지 공청회조차 한번 개최한 적이 없다. 이런 비난을 의식해 외교통상부가 3월초 부랴부랴 공청회를 개최했지만 여기서마저 농민 등 주요 이해당사자들을 배제하고 말았다.

도시국가 싱가포르도 FTA 체결에 2년 이상 걸려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양국간 FTA 체결에 아주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한 싱가포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싱가포르는 한국, 대만 등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시장형 경제시스템에 가깝기 때문에, 미국-싱가포르 FTA는 몇개월 내 아주 적은 횟수의 협상으로 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12월에 시작된 양국간 FTA 협상은 2년 이상 지속되어 2003년 1월에야 비로소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고 자유시장형 경제요소를 더 많이 지니고 있는 싱가포르도 협상을 완결하는 데 2년 이상이 걸렸는데, 우리의 경우 1년 내에 협상을 종결해야 하니 협상이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

싱가포르든 한국이든 미국과 체결하는 FTA는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즉 미국은 협상 상대국에게 농산물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서비스, 의료, 문화, 정보통신 인프라, 투자자유화, 노동・환경 조항까지도 포함한 포괄적인 시장접근을 요구하는데 비해, 미국은 민감한 산업부문과 생산라인에 관련된 원산지규정에 의거하여 얼마든지 선별적이고 차별화된 시장접근일정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협상상대국에 비해 관세율이 낮고 시장개방 정도가 훨씬 높은 미국으로서는 여타 국가들과 FTA를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일부품목과 산업을 제외하면 손해 볼 게 거의 없다. 이에 비해 협상 상대국은 미국과 정반대의 상황에 처한다.

미국과의 FTA 체결이 초래할 더 심각한 문제는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이 그 나라에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이 싱가포르와의 FTA 협상과정에서 시장개방은 말할 것도 없고 기간공기업의 민영화까지 언급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1997년 동아시아 외환금융위기 시 위기의 파급을 차단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싱가포르 통화당국의 자본통제장치마저 철폐할 것을 요구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이 싱가포르보다 시장과 경제규모가 더 큰 한국에 대해 훨씬 더 강도 높은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최근의 양극화가 19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IMF의 구조조정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데서 기인한 바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미 FTA 체결을 통한 추가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양극화의 해소는커녕 사회통합의 기반을 송두리째 허물어버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한미 FTA, 대중 포위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체제

끝으로 동아시아의 지역통합과 연대는 동아시아가 자유화・ 세계화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동아시아 특유의 다양한 발전모델들을 확립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통과지점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체결은 모처럼 활성화되고 있는 동아시아지역 차원의 협력과 연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아세안 내에서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 중인 싱가포르, 태국과 그밖의 아세안국가 간에 동아시아지역 통합의 방식을 둘러싸고 경쟁과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급부상과 한-중간 경제교류의 강화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한-미 FTA 협상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 역시 동아시아의 지역협력과 연대 나아가 남북간 화해협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형태의 지역통합에 말려드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미국이 일본, 한국과의 군사·안보 차원의 쌍무적 동맹체제를 FTA를 포함한 경제영역에까지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