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이 고물상에 와서 두 팔 정도 되는 파이프 하나만 달라고 한다. 쓸 만한 걸로 찾아 가라고 했더니 고맙다며 가게에 가서 작은 막걸리 두 병과 안주로는 건빵 두 봉을 사갖고 와서 자기는 일이 바빠 먼저 가겠으니 천천히 드시라며 차를 타고 갔다.

쉴 참에 혼자 먹기는 많을 것 같아서 지나가는 동네 사람이 있나 살피니 나이 많은 전씨 형님이 지나가신다.

“형님! 전씨 형님. 이리 와요, 막걸리 한잔하고 가요.”
“웬 막걸리?”
“누가 사주고 갔는데 마침 형님이 지나가시기에 불렀어요.”
“그~래? 고마워, 근데 저 양반도 부르지.”
“누구요?”
“새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저 양반도 술을 좋아해.”
“그래요. 나는 잘 알지 못하는데 내가 오시라면 멋쩍어서 오겠어요? 형님이 부르세요.”
“그러지. 봐요, 김씨! 이리 와 봐요.”

김씨라는 분은 다리가 불편해서 네발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전씨 형님이 부르자 네발 오토바이를 타고 김씨라는 분이 오셨다. 우리 세 사람은 양지 바른 곳에 터를 잡고 건빵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먹기 시작했다. 자리의 서먹함이 사라지자 김씨라는 분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일상 이야기가 아닌 자살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말이야, 자살을 네번이나 했었어.”
“자살을요? 아니 왜 자살을 하려고 했어요?”
“내가 옛날에는 목수로 잘 나갔는데, 아, 목수를 스물세 명을 데리고…. 그땐 잘 나갔지. 근데 말이야. 아, 내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이렇게 됐잖아.”
“다리가 교통사고로 불편하게 된 거군요.”
“그럼. 다리가 이렇게 병신이 되니까 어디 다니기가 싫어. 사람들이 놀리는 것 같고. 그리고 날이 궂으면 온몸이 쑤셔. 그래서 네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못 죽었어.”
“어떻게 네번을 다 실패를 하셨어? 얘기를 해 보세요. 맨 처음에 어떻게 죽으려고 했어요?”

자살하려는 사람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자살을 생각하는지 듣고 싶기도 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듣지 못하지만 자살하려다 못 한 사람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증언일 것 같아서 진지하게 듣기로 했다.

“맨 처음에는 수면제를 먹었지. 아, 근데 말이야, 깨어 보니까 병원 천장이 보이는데 속이 아픈 건지 쓰린 건지 메스껍구 속이 내 속이 아니더라구.”
“병원에는 누가 데리고 갔어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딸년이 119에 연락해서 입원시켰더라구.”
“아버지 자살하는 거 따님이 어떻게 알았어요? 같이 살아요?”
“아냐, 딸은 시집가서 인천에 살아.”
“근데 인천 사는 딸이 아버지 약 먹은 걸 어떻게 알고 119에 연락을 했어요?”

이때 전씨 형님이 한마디 하신다.

“약 먹자마자 무서우니까 딸에다 전화했지, 뭐.”
“아냐, 딸한테 전화 안 했어.”
“아, 전화 안 했는데 어떻게 와? 농약 먹고 신음하는 것도 아니고 수면제 먹고 잠들었는데 인천 사는 딸이 119에 바로 전화를 한단 말이야? 인천에서 오는 중에 죽었겠다.”
“잠깐만요, 전씨 형님. 그게 문제가 아니고 과정이니까 그 문제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두번째 자살하려고 했던 얘기를 듣자고요. 한번 실패했는데 왜 또 자살하려고 했는지. 두번째는 왜 실패했어요?”
“두번째는 약국에 수면제를 사러 갔는데 안 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머리를 썼지. 약을 한꺼번에 안 주니까 한 알씩 사 모았지. 근데 말이야. 한 150알 사 모아가지고 죽으려고 했는데 마누라가 알아버린 거야. 아, 그래서 마누라가 미쳤냐구 하면서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잖아! 두번째는 그래서 실패했지.”
“에이, 두번째는 자살도 아니네, 뭐.”
“아냐, 그때는 진짜 죽으려고 했어.”
“그럼 첫번째는 가짜로 죽으려고 했어요?”
“그때도 진짜 죽으려고 했지! 근데 딸년 때문에 못 죽었지.”
“딸년 때문에 못 죽은 게 아니라 효녀를 둔 거예요. 효녀! 무슨 딸년 때문에 못 죽어. 그렇게 말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딸이 다른 자식들보다 아버지를 끔찍이도 생각한다고 해야지, 딸년이 뭐예요? 딸년이.”
“그냥 이쁘니까 말이 그렇게 나오는 거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전씨 형님이 또 한마디 한다.

“이번에 또 자살하려면 산에 올라가서 목 매달아. 그러면 119 오기 전에 죽어 있는 거야. 전화번호 돌리는 사이 죽어 있겠다.”
“형님, 요새는 전화번호 돌리는 게 아니고 눌러요.”
“그게 그거지 뭐. 다음엔 여러 사람 귀찮게 말고 나무에 목 매달아!”
“나무에 목 매달면 그 나무는 힘들어서 어떻게 하구.”

김씨 형님의 퉁명스런 대답이다.

“김씨 형님!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백만억겁을 거쳐도 태어날까 말까라는데, 이왕 태어난 거 괴롭든 즐겁든 잘 살고 가야지, 자살하면 염라대왕이 초대하지 않았는데 왔다고 저승에서도 구박 받아요. 그러니 자살하지 말아요. 알았죠?”
“알았어.”
“그러면 이제 자살하지 않기로 하고, 세번째는? 마저 얘기하셔야지.”
“세번째? 세번째는 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는데 아, 가 봤더니 물이 시퍼렇게 출렁출렁대는데 겁이 나지 뭐야. ‘아이쿠, 이거 빠지면 죽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서 못 죽었지.”
“아니, 그건 얘기가 달라지네. 죽으러 간 사람이 시퍼런 물에 빠지면 ‘이번엔 진짜로 죽겠다. 내가 제대로 찾아 왔구나.’ 하고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 듯 바지 벗어서 얼굴에 덮어쓰고 풍덩 뛰어 들어야지. ‘여기 빠지면 죽겠구나!’, 그거, 무슨 얘기가 앞뒤가 안 맞아요. 아니, 물에 빠져 죽으려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당연히 죽지, 무서워서 못 죽는 건 뭐예요? 말이 안 되네.”
“아냐, 그래도 무섭더라구.”

전씨 형님이 또 한마디 한다.

“그러게, 뻥이라니까.”
“형님은 가만 있어봐요. 그럼, 네번째는요?”
“네번째? 네번째는 하도 실패를 하니까 마누라하고 애들 보기가 민망하더라구. 자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손주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손주애들이 알면 핼애비 된 내가 뭔 챙피야. 그래서 네번째도 결국은 실패했어.”
“에이, 그거 첫번째 약 먹고 자살하려고 했던 것도 전씨 형님 말마따나 뻥이네, 뭐. 사실성 있는 정황이 하나도 없네. 자살하려고 한 게 아니고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고 마나님 아들네 가 있고 김씨 형님 혼자 있다 보니 인생이 허무하고 사는 게 뭐 이러나 해서 그러는 거죠?”
“맞아, 외롭고 쓸쓸할 때가 많아.”
“아무리 외롭고 쓸쓸해도 염라대왕이 명부에 형님 이름 써 놓고 저승사자 보고 갔다 오너라 해야 저승사자가 와서 데리고 가는 거지. 형님이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저승에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못 죽는 거예요. 그러니 자살할 생각 아예 하지 말아요.”
“알았어, 이제는 안 해.”
“자, 죽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기 위하여!”
“짠~.”
“짠~.”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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