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매우 낮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선진국들에서는 지금도 계속 참가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최근 10여년 동안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의 증가세가 멈추고 정체상태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1990년 이후 최근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1.3% 증가에 그치고 있다. 연령대별로 보자면, 이 기간 동안 경제활동참가율이 증가한 것은 20대후반 여성뿐이다. 나머지 모든 연령대에서는 경제활동참가율이 정체 또는 감소하였다.

여성인구의 연령별 구성이나 학력별 구성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재 수준을 넘어설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에만 특수한, 여성 경제활동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인가? 이론적인 답은 ‘일/가족의 성별분업 또는 강고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여성의 사회적 노동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여성의 1차적인 책임은 가사와 양육노동이라는 의식이 사회의 각 부문에 팽배해 있다는 의미이다. 여성에게 어머니와 주부의 역할을 요구하면서 가족 내 책임을 전담시킨다. 이 때문에 동전의 다른쪽 면인 노동시장에서는 여성의 노동력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여성은 노동시장에 매우 불안정한 형태로 통합되며 낮은 수준의 보상을 받게 된다. 전체 노동자 중위임금의 1/2 이하를 저임금이라고 정의할 때, 남성노동자 중에서 이 범주에 속하게 되는 노동자는 5.6%인데 비하여 여성 노동자의 경우는 20.8%가 이 범주에 속한다. 여성노동자 5명 중 1명은 월소득이 65만원이하라는 뜻이다.

이데올로기란 필연적인 사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있고, 또 상당부분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여성의 1차적 책임은 가사/양육노동’이라는 의식은 실제로 생계를 책임진 여성이 많다는 점에서 우선 보편적인 사실이 아니다. 당장 생계를 책임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높은 이혼율을 생각하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반드시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과 맞지 않는 의식은 많은 여성을 피해자로 만든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어 있다. 어머니의 역할이나 모성의 중요성 등에 대한 믿음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 자신들조차도 다양한 기제를 통하여 학습하고 있다.

‘여성의 일차적 책임은 가사/양육노동’이라는 의식은 단순히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사회 속에 제도화되어 있다. 예컨대 주당 50~60시간의 장시간노동이 관행화 되어 있는 현실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전혀 지지 않는 남성노동자를 표준노동자로 보는 모델이 정착된 것이다. 채용과 업부배치, 승진 등에서 여성을 남성과 달리 대우하는 성차별적 관행도 여성을 부차적인 노동자로 보는 의식이 제도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가장의 임금으로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는 여성배우자와 자녀를 부양한다는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은 저소득 노동자 가족에게 있어서는 이전부터도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하나의 모델로서의 의미도 부정되고 있는 상태이다. ‘가족임금’ 즉, 가족을 부양할 만한 수준의 임금이라는 개념은 이제 논의되지도 않거니와 임금이 노동자 개인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대가라는 데 더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다. 고용의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진 현상도 가족 중 남성 1명의 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지기 어렵게 하는 중요한 사회변화 중 하나이다. 더 나아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의 유지가능성도 높은 이혼율이라는 사회적 환경의 변화 앞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모든 환경의 변화는 여성이 남성 배우자의 임금으로 생활하면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며, 당장은 가능해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요컨대 여성도 경제적인 독립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유급노동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급의 돌봄노동을 전담하면서 월 65만원의 임금을 바라보며 일해야 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여성을 일터로 내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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