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기간제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는 순간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모든 기업에서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뿐만 아니라 신임 이상수 노동부 장관 역시 최근 KTV와 인터뷰에서 “사유를 제한할 경우 상당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사내하청, 용역전환 등의 방법으로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밝히며, “대부분의 OECD국가에서도 기간제한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기간제 노동자의 대부분이 100인이하 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게 그들이 제시한 유일한 근거이다. 정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순익이 발생할지에 대해 단 한번도 근거를 밝히지 않았던 이들이, 오히려 민주노동당에게 “사유제한을 해도 중소기업이 지금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존속할 수 있다는 입증을 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우원식 의원은 “현재 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이유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즉 정규직의 60% 정도의 임금으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시급히 “차별금지, 시정절차, 기간제한(2년) 및 기간초과 시 무기계약 간주”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안, 대규모 주기적 해고 부른다

“사유제한은 불가능하며,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서 정부안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는 우원식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오히려 사유제한 없이 기간제한만 하는 게 대규모 실업사태를 부를 수밖에 없다.

만약 열린우리당 안이 통과되면 2년이상 되는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무기계약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법이 통과되는 순간 2년이상 일한 사람(2005년 현재 기간제 노동자의 26.2%가 2년이상이고, 반복갱신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됨)은 즉시 해고돼 실업자가 될 것이고, 2년미만 일한 사람의 경우도 조만간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속년수를 살펴보면 2005년 8월 현재 평균 1.83년이다. 따라서 평균 0.17년만 지나면 대다수 어려운 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기간제 노동자들은 2년을 채우게 돼 실업자로 전락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원식 의원의 주장에 의하면 기간제 노동자들 대부분은 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기업에서 차별시정까지 하면서 무기계약으로 전환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열린우리당에서 이를 부인하려면 ‘기간제한만 해도 중소기업이 지금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미 현장에서는 정부 안(기간만 제한)이 통과될 것을 예상해 기간제 노동자를 해고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미 파견법 제정 이후 2년마다 반복된 주기적 해고를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대규모 실업사태 막기 위해 사유제한 필요

만약 정부와 열린우리당 주장처럼 “영세사업장은 조금의 부담만 가중되어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라도 엄격한 사유제한이 필요하다. 사유제한이 없다면 상시적·고정적 업무라 할지라도 기간만 지나면 해고한 뒤 동일한 조건 또는 더 후퇴된 조건의 또다른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할 것이 명확하다.

반면 사유제한을 하게 되면 기간제 사용의 사유가 있었던 노동자는 그대로 기간제로 사용할 것이고, 사용사유가 없는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즉, 기간제한만 할 경우 거의 대다수 노동자들이 주기적 해고를 당하게 되지만, 사유제한을 하게 되는 경우 적어도 상시적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는 해고를 면하게 된다.

물론 사유제한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추가로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곧바로 중소기업에서 대규모 해고를 하게 될까? 적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람들은 그 기업의 상시적·고정적 업무를 담당해 왔다. 아무리 힘들다고 기업의 핵심 업무를 담당해 온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해고할까? 현재 중소기업의 경우 인력이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한 상황이다. 만약 하루아침에 대규모 해고를 한다면 그 기업은 곧 망하게 될 것이다.

2006년 1월 기준 실업률은 3.7%인 반면, 청년 실업률은 8.0%에 해당한다.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보다 2배이상 높은 것은 대졸 구직자들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가교’가 아니라 ‘덫’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사유제한을 통해서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로 전환된다면 오히려 현재의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 정말 차별해소 의지 있는가?

우원식 의원과 이상수 장관은 연일 사유제한을 하게 될 경우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면서 또 한편 차별해소를 위해서 열린우리당 안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순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유제한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차별해소는 별다른 비용이 안 들어가는가?

사유제한 비용과 차별해소 비용이 도대체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사유제한을 통한 정규직화는 ‘원래 정규직으로 일해야 되는 사람’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고, 이때 발생하는 비용은 곧 차별해소 비용 아닌가? 그렇다면 거의 똑같은 비용을 가지고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말았다 하는 것인가? 실업이 마음대로 늘였다 줄일 수 있는 고무줄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부여당은 심한 말장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정부여당의 주장처럼 차별해소 비용은 별 부담이 없지만, 사유제한 비용은 실업을 낳을 만큼 큰 부담이라면 이는 정부가 차별해소에 대한 의지가 없거나, 정부의 차별해소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계속 동일한 주장을 할 계획이라면 차라리 열린우리당은 사용자 정당이라고 시인하는 것은 어떨까?

사유제한이 차별 해소 방안이다

아무리 차별을 금지시키고 시정절차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상시적 업무 A는 가만히 있는데,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가→나→다”로 바뀌는 경우 차별해소에는 한계가 있다. 차별해소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원칙의 천명과 개별적 시정절차’를 통해서 온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온전한 노동3권을 보장해 줄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노동3권의 보장은 사유제한을 통한 고용보장(단계적 정규직화)이 전제될 때만 가능하다. 언제 해고될지 몰라서 끊임없이 사업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차별시정의 기회만 덜렁 주는 게 얼마나 실효성 있겠는가?

중소영세 사업장, 왜 힘들어하는지 모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 노동복지 공동실태조사단’이 영세사업장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2005년 7월, 사업주 72명, 노동자 478명, 실업자 5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사업주들이 공장운영을 하는데 겪는 어려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임차료 및 설비 운영비 문제’(20.3%), ‘불안정한 대금 회수(결제)’(20.3%), ‘영업부진 및 판매부진’(20.3%), ‘납품 단가 문제‘(9.4%), ’인건비 부담‘(8.6%)으로 나타났다. 또한 하도급 거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하청단가 인하 요구’(35%), ‘어음할인료 미지급’(16.7%), ‘하도급 대금 60일 초과의 문제’(11.3%), ‘일방적 발주 취소’(3.3%)등으로 나타났다.

즉, 중소영세사업장의 인건비 부담은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로서의 성격이 크며, 중소영세사업장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 문제이다.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문제가 해결되면 인건비 문제는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불공정한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을 때 정부에서 눈 막고 귀 닫고 있더니 이제 와서 중소기업을 끔찍이 걱정한다. 더이상 왜곡된 상상력으로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 안 그래도 무지 피곤한 세상 아닌가!

빈곤한 상상력과 빈약한 의지

‘사유 제한’을 무서워하는 것은 빈곤한 상상력, 떨어지는 응용력 그리고 박약한 의지의 발로일 뿐이다. 이상수 장관은 OECD국가들이 기간제한을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미 ILO협약에 따른 권고 166호에서 “기간제 계약의 채용은 작업의 성질, 조건이나 근로자 이익에의 합치 등 일정한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정하고, 합리적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또한 프랑스, 포르투칼, 스페인 등 많은 OECD국가들이 사유제한을 하고 있으며, 특히 기간제가 많았던 경우 대부분 사유제한을 통해서 규율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법은 경과 규정(이른바 ‘부칙’)이 있게 마련이며, 민주노동당도 사유제한을 도입한다면 우리 경제의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단계별로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고, 동시에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한 지원 방안도 마련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사유제한을 통한 ‘괜찮은 일자리’ 마련을 위해 정치권이 함께 지혜를 모을 것을 주장한다. 각종 위원회 만드는 게 정치권의 특기인데 왜 국회 차원의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 위원회 등은 구성하지 못하는가?

조금만 새롭게 상상하고, 응용하면 괜찮은 방안이 충분히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비정규직 노동자가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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