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제일은행, 한미은행 등 금융권에서 극심했던 투기자본의 횡포가 제조업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투기자본에 세금을 매기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미FTA 반대·투기자본 규제를 촉구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는 22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미 FTA반대! 투기자본규제! 노동시민사회단체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비정규직 증대와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시민의 삶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요즘, 투기자본에 의한 대량해고가 또다시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투기자본은 차익을 얻고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있다”고 고발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 간에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될 경우, 투기자본을 규제할 최소한의 수단마저 사라지게 된다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 투기자본 양산하는 정부 = 정부는 외자유치만 하면 기업이 선진화와 경쟁력 강화로 그 과실이 시민들에게 나눠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정반대라는 게 이날 참석자들의 지적이다. 투기자본은 2~3년만에 수백억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도 세금 한푼 내지 않는 반면, 노동자와 시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이날 연설에 나선 사무금융연맹 정용건 위원장은 “성공적인 외환위기 극복이라고 자평하고 있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 850만 비정규직, 350만 신용불량자, 500만 빈곤층의 고혈을 짠 결과”라며 “현재 노무현 정부는 금융시장을 통째로 투기자본에 팔아넘기려 한다”고 말했다.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타장(민주노총 부위원장 당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자본은 투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이런 자본은 노동자들을 빨아먹고 때가 되면 더 많은 이윤을 찾아 떠나면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조직폭력배보다 더한 투기자본의 횡포를 이젠 감시해야 한다”며 “금융규제 철폐와 외자유치로 잘 살 수 있다는 정부의 외자유치만능론과는 달리, 미국과 영국 등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투기자본의 행동을 저지시키고 내쫓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론스타펀드의 경우 미국에서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 투기자본이기 때문에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외환은행 뉴욕지점 등은 미국 정부에 의해 폐쇄됐다는 게 허 센타장의 설명이다.

◇ 제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투기자본 = 게다가 투기자본의 공격이 이젠 금융권을 넘어 제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투기자본의 제조업 공격 중 최악의 사례로 평가되고 있는 오리온전기의 경우, 외자유치가 완료된 지 불과 4개월만에 투기자본인 매틀린패터슨은 공장을 청산하고 자금을 해외로 빼내가려는 중에 있다는 게 오리온전기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한 오리온전기 조합원은 “외자유치 당시 장기경영, 노동자 고용 3년 이상 보장 등을 약속했으나 결국 청산한 것은 투기자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며 “당시 이 거래를 주선하고 결정한 정부와 법원이 이와 같은 사기극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봉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만도의 분할 매각 움직임, 이스라엘 이스카 자본의 대구텍 노조 불인정 등 제조업에까지 투기자본이 이미 몰아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