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결혼 시즌도 시작된다. 꽃 피는 고궁은 웨딩 촬영하는 커플들로 싱그러워질 것이고 주말마다 결혼식장을 찾는 사람들로 길이 붐비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풍경이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저렇게 행복하게 결혼하는 사람들 중의 얼마나 이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과연 저렇게 활짝 웃으며 서로를 행복하게 쳐다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지속될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현재 늘어나고 있는 이혼률은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속도를 가족이 감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여성들은 어느 정도 평등에 기반한 정서적 유대감을 추구하고 있다. 남성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 교육을 받았고, 그만큼의 자기계발의 욕구도 갖고 있다. 자존감을 갖기 시작한 여성들은 더이상 주종의 남녀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이 시작되는 순간, 이렇게 변화한 21세기 여성과 변화를 미처 따라잡지 못한 19세기 남성과 고달픈 동거가 시작된다.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부재한 가운데, 여성들은 가사노동과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힘들어지고 그때부터 부부 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기 시작한다. 대부분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갈등은 일단락되지만, 일을 그만둔 만큼 여성의 남편에 대한 정서적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이상 눈을 멀게 한 사랑도 없고, 일상생활 속에서 부부 간에 어떻게 대화하고 서로를 보살펴줘야 하는지 전혀 배워오지 못한 두 사람은 힘들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몇가지의 다른 결론이 가능하다. 낭만적 사랑을 원하나 홀로서기가 두려운 사람들은 외도를 택할 것이고, 생활에 대한 책임이 강한 사람들은 가정폭력 등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경우 그저 갈등을 묻어두고 살아갈 것이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 또는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할 경우 이혼을 택할 것이다.

가족은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는 그릇과 같은 것이고, 그 작은 그릇 안에는 모든 사회의 갈등들이 녹아들어 회오리바람으로 휘몰아치고 있다. 따라서 가족은 결코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평등하게 살 것인가, 돌봄 노동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부부로서 서로 공감하며 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등등에 대한 교육을 우리는 12년라는 긴 의무교육기간 동안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다(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따라서 늘어나는 가족 갈등과 이혼은 어쩌면 당연한 사회적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제야 국가가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어 온 가족의 문제, 부부 간의 문제에 개입하겠다고 한다. 반겨야 할 것 같지만 그 내용을 보니 전혀 그럴 맘이 생기지 않는다. 이혼 시 3개월의 숙려기간과 유료상담(유료!이다)을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하는 ‘이혼숙려제도’가 국회에서 논의 중이고, 서울가정법원은 현재 3주의 숙려기간을 갖도록 하고 상담을 받은 경우에도 1주일의 숙려기간을 거쳐야만 협의이혼 의사 확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결혼생활 중 발생하는 갈등에는 수수방관하다가 이혼이 늘어나자 결혼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퇴출구를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막겠다는 발상이다. 일단, 개인의 선택의 자유 문제는 뒤로 하고라도, 갈등이 극도로 터져 나왔을 때 섣불리 봉합하겠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안일한 발상이다. 진정 이혼을 막고자 한다면, 모든 교육과정에서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녀 모두가 왜 함께 돌봄의 감수성을 가져야 하는지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결혼 전 남녀들이 평등한 가족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사회교육의 장을 마련해야 하고, 결혼 후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관계들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배울 수 있는 가족지원센타가 지역 곳곳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도록 국가가 지원했음에도 이혼을 택한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고 결혼만이 아닌 다양한 가족관계가 있음을 인정해주고 새로운 선택으로 인해 불이익 당하지 않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매우 강하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여건이 여전히 낙후한 한국에서 이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철이 없어서도 무책임해서도 아니다. 그만큼 고통이 컸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이해한다면, 적어도 고통의 끝자락에서 여러 차례의 숙고 끝에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법원의 강요로 비싼 유료상담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또다시 고통스러운 숙고의 기간을 갖도록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에 대한 교육을 통해 결혼을 깊게 숙려하도록 하는 것이 튼실하고 행복한 가족을 늘려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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