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0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대의원 자격’ 문제로 단 한 건의 안건 처리도 못하고 폐회된 직후 개최된 중앙위원회는 ‘기호1번 진영의 지지자들에 의해 민주노총 대대가 폭력으로 무산되었다’며, ‘진상조사단’ 구성을 결의하였다.

시민단체의 공감단 제안도 거부한 KT노조

그 자리에서 지재식 KT노조 위원장은 ‘지난 대회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대의원들이 참석하지 못했으며 1번 지지자들에 의해 대의원 2명이 끌려나왔고 회사 노사협력팀은 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중앙위원들로서는 진상조사단 구성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실은 불과 중앙위 결의 하루만에 밝혀졌다.

기호1번 진영에 의해 <매노>가 보도한 문제의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이 KT 노사협력팀 직원 황모씨로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났다. 그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는 확인된 KT 노사협력팀 직원만도 3명이 있었다. 이모, 김모 등이 그들이다(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신원을 밝히겠다).

물론 김영삼씨는 KT노조 소속이고 민주노총 대의원이다. 따라서 그를 끌어낸 행동이 과도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은 아니다. 도대체 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KT 노사협력팀 직원들이 무더기로 나타났으며, 그들과 IT연맹 대협실장이 왜 함께 있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더구나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KT노조는 계속 거짓말을 했다. 맨 처음 <매노>에 사진이 나갔을 때만 해도 문제의 주인공이 대의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1번 진영이 문제의 그 인물이 사측 관리자임을 확인해주는 KT 인사파일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자 누군지 모르겠다며 발을 뺐다.

그렇다면 KT노조는 왜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사측 관리자가 출현했다는 것을 감추려 했을까! 이는 KT노조가 지금까지 얼마나 노사담합적으로 운영되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KT노조의 선거는 노사담합 선거의 전형이었다. 선거과정에서 있었던 회사의 불법 개입은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노조선거에서 지재식 위원장은 97%의 투표에 90%의 지지를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불과 그 10일 뒤에 치러진 비정규법안 개악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찬반투표는 1%도 채 투표를 하지 않았다. 도대체 90%의 지지를 받은 집행부가 찬반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KT노조 선거과정에서 지재식 위원장은 무려 51개 개표소에서 100%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KT는 423개 투표소별로 분산투개표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20인이하의 투개표소마저 있다. 개표된 투표용지 중에는 기표란의 특정 구석에 기표한 사실상의 공개투표 용지도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선거 전부터 조합원의 제보가 줄을 이었다. '과장, 부장으로부터 기표란의 특정 구석에 기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등 녹취된 증언만 들어봐도 자유당 선거 못지 않은 부정선거였다. 이러한 불법 선거를 우려해서 시민단체가 나서서 선거 전부터 공감단을 구성해서 투개표 참관을 요청했지만 KT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이러한 노사담합은 선거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KT노조 노조사무실에 조합원으로서 방문이라도 하려치면 어김없이 회사 경비원들이 나서서 출입을 가로막는다. 도대체 노조원의 노조사무실 출입을 회사 경비원이 막는데도 팔짱만 끼고 있는 노조를 우리는 어용노조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심지어 재야 어르신네들이 포함된 공감단의 항의 방문조차 경비원들의 막무가내 저지에 막혀 무산되었던 게 KT노조의 현실이다.

3년 동안 단 한번의 쟁의신고도 없어

좀더 비판의 각을 세워보자. 2003년 열사들이 속출하던 그때 얘기다. KT노조는 2003년 9월 단일기업 사상 최대규모의 명예퇴직을 단행하였다. 무려 퇴직자만 5,505명이었다. 퇴직 한달만에 자살한 노동자가 생기면서 명예퇴직의 강제성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11월 민주노총의 총파업! 지재식 위원장은 울릉도에 있었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자 KT는 대대적으로 명퇴를 거부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 상품판매전담팀이라는 것을 만들어 명예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을 비연고지로 마구 인사조치했다. 부산 사람 서울로, 서울사람 강원도로. 그야말로 난리가 아니었다. 단순한 인사조치만을 한 게 아니었다. 따라다니며 조직적으로 왕따시키고 감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무려 5명의 노동자들이 그 어렵다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정신질환에 의한 산재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당사자들의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투쟁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KT노조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이런 노조를 우리가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지재식 집행부 3년 동안 KT노조는 단 한번의 쟁의신고조차 없었다. 2003~2005년 노동자들에게 그 험난했던 시기에 쟁의신고조차 없었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겠는가! KT는 2004년 12월 신노사문화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수구언론은 대서특필했다. 강성노조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로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 모델이라고.

그러나 그 수상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일제히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상황에서 ‘무분규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은 노조가 노동자의 현실과 요구를 외면하고 사측과 ‘상생’했다는 것”이라며 “사측과 대화 이전에 노동자의 현실에 주목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더이상 무슨 구구절절한 얘기가 필요한가! KT의 노사담합에 의한 노동자 파괴, 민주노조운동 말살은 어제, 오늘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필자는 작금의 KT노조의 현실에 대한 책임이 모두 지재식 위원장에게 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유덕상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나, 이번에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한 이해관 동지 등 선배 그룹에 대해 나는 누구보다도 비판적이다.

그러나 진실은 분명히 하자. 운동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논란 이전에 KT노조의 현 실태의 진실은 명확한 것이다. KT노조는 노사담합이 습관이 되어 있고 그러한 행태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조차 그대로 답습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태에 대해 연대와 변혁 선투위 동지들이 제재를 가한 것을 또다시 폭력 운운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세상에 사찰 온 자본의 앞잡이를 끌어낸 것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노조가 정상적인 노조란 말인가!

선거철이다. 후보자들의 표 계산이 모든 것에 우선하기 쉬운 철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더이상 표를 이유로 KT노조를 비호하지 말라, 그것은 당선 이전에 민주노총을 말아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되든 그 이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노총 상층의 이러한 행태가 민주노조운동을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일개 현장의 노동자로서 나는 묻는다. 누가 민주노조운동을 파괴하는가! 사찰 나온 관리자를 끌어낸 한국합섬 노동자들인가! 아니면 사측 관리자를 끌어낸 것을 대의원대회를 폭력으로 무산시켰다며 떠드는 KT노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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