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지금 ‘홍역’을 앓고 있다. 현실을 ‘멀리서’ 소박하게 바라보는 분들은 “아, 민노총이 드디어 무너지는구나!” 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볼지 모르겠다. 그들의 진단이 절반은 옳다. 민주노총의 썩어문드러진 모습이 지금 아주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민노총은 드디어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면을 놓쳐서는 균형 잡힌 진단이라 하기 어렵다. 그 썩어문드러진 민노총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안간힘으로 애쓰는 사람들이 한켠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렵사리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비로소 민노총의 ‘치부’가 드러났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절망 속에서 늠름하게 희망도 간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벌써 잊었는가?

먼저 떠올릴 사실은 여지껏 민주노총이 ‘비상대책위원회’로 운영돼 왔다는 점이다. 벌써 잊었는가? 아시다시피 ‘강승규 비리’ 건으로 하여 전 집행부가 사퇴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저 ‘개인 비리’라면 집행부가 몽땅 사퇴할 까닭이 없다. 단지 ‘도덕성’의 문제라면 지금처럼 민노총이 60만 조합원에게 무관심과 냉소의 대상으로 치부될 까닭이 없다. 지금 민노총은 그 상층부에서 선거가 치러지는지, 두꺼비 씨름이 벌어지는지 대다수가 까맣게 모를 만큼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갖가지 '투쟁과제‘들이 서랍 속에 잠잘 만큼 ’운동성의 위기‘에 빠져든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비상대책위원회는 도무지 낯 들고 다닐 수 없는 이 위기를 진정한 ‘혁신의 기회’로 삼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세상 태평한 비대위는 그저 탱자 탱자 놀았다. 시간이 흐르자, 후다닥 ‘선거일정’ 발표하는 것으로 땜질하려 했다. 조직이야 ‘위기’에 빠져들건 말건 그저 치부를 ‘덮고 넘어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닌가. 벌써 잊었는가. 수많은 동지들이 ‘민주노총 소속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가슴앓이 하던 광경을.

도입할 것은 ‘직선제’만이 아니다!

지난 ‘대대’ 발언자들 입에서 “이 따위로 허점투성이, 이게 과연 민주노총이냐?”는 개탄의 소리가 너나없이 터져 나왔다. 1번 진영의 선거 슬로건을 흉내내어 한 발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개탄은 조금이라도 민주노총 현실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사람은 누구나 품지 않을 수 없는 감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 ‘연대와 변혁’ 진영은 선거 시작부터 확고한 판단을 갖고 60만 거대조직을 향해 발언해 왔다. “지금은 선거할 때가 아니다! 간간선제 따위 반민주적인 구조부터 먼저 수술하라! 그러지 않고서는 민주노총이 소생하지 못한다! 이게 민주노총이냐! 부끄럽지도 않으냐!”

어느 언론에서 규정했듯이 우리의 개혁 제안은 구체적이고 단호했다. 단순한 ‘정치공세’도, “저들이 나쁘니까 상대적으로 괜찮은 우리한테 반사이익을 안겨 달라”는 한가로운 권유도 아니었다. 임원선거도, 대의원선거도 직선하라! 누구는 천천히 ‘추진위원회’를 만들자고 하지만, 우파 패권의 구도 속에서 그것은 ‘하지 말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직선하라! 영국의 조합원 백만명 노조에서도 이미 ‘직선’해 왔는데 무슨 핑계가 그리 많은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4천만명이 ‘대통령 직선’하는 대한민국 국민 평균수준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인가?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노동운동은 ‘돈에 비례해서 발언권을 더 주는’ 그런 일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망하는 길’뿐이다. 가난하여 분담금을 많이 내지 못하고, 자본의 탄압 때문에 조합원 숫자가 얼마 안 되는 곳일수록 ‘대의원의 대표성’을 더 배려해야 한다. 전노협 시절에는 거대조직일수록 대의원 숫자를 덜 배정했거니와, 민주노총이 그저 60만 정규직 노동자만 끌어안는 게 아니라 천만 노동자를 대표하여 나서려면 소수자의 대표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그래야 민주노총이 소생한다.

당장 ‘지역’을 살려라!

민주노총에서 ‘투쟁력’이 실종해버린 데에는 깊은 까닭이 있다. 전노협의 ‘지역노조협의회’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거대 업종연맹끼리 짝짜꿍하는 구조! 지금의 ‘지역본부’는 그저 생색내기를 위해 배치해 놓았을 뿐, 돈도 대의원도 배려하지 않았다. 지역본부와 지역협의회에 ‘연합조직’의 지위를 부여하고, ‘민주노총을 이끄는 쌍두마차의 하나’로 격상할 때라야 지역연대투쟁이 살아나고, 그래야 힘없는 중소영세 노조들이 힘을 얻는다. “위와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 줬더라면…” 하는 안타까움 속에 투쟁을 접은 경우가 어디 한둘인가.

이렇게 지역의 거점이 살아날 때라야 ‘산별 건설’도 힘을 받는다. 무릇 ‘지역산별’에 기초할 때라야 전국산별 건설이 비로소 궤도에 오르지 않는가. 요즘 일각에서 거론하는 ‘산별전환 총투표’는 이 깊은 숙고를 결여한 수상쩍은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조직화는 노동운동의 숙원사업이다. 그런데 뾰족한 수가 많지 않다. 단호하게 조직화 방책을 세워야 변화를 만들어낸다. 조합원 20~30명당 1인의 현장위원(SHOP STEWARD)을 위촉하라. 조직활동가(ORGANIZER)를 대대적으로 양성하여 투입하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

‘한국노총과 통합’은 안 될 말!

민주노총의 반민주적이고 비투쟁적인 조직구조를 이대로 방치하고서 ‘선거’만 치르겠다는 발상은 ‘운동의 주검 위에서 상층관료들의 영화만 찾겠다’는 노골적인 속셈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비정규악법과 로드맵을 얼렁뚱땅, 때로는 교활한 ‘주고 받기’를 통해 어떻게든 처리하고, 나아가 한국노총과의 “통합/통일” 대업(?)을 야심만만하게 추진하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일찍이 10년 전 김금수씨 등에 의해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거대 단일노총’의 본질이 무엇인가. ‘노동자 대표는 우리뿐’이라는 강력한 위세를 등에 업고, 자본과 거리낌없이 야합할 수 있다! 그동안 “독일의 산별노조에서 배우자!”고 외쳐댄 학자, 운동가들은 자신의 운동관을 정말로 다시 성찰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죽이고 죽인 독일 산별노조는 우리에게 ‘반면교사’이지 ‘금과옥조’가 결코 아니다. 그것이 한국의 ‘양대노총 통합’의 뒷받침 논리로 변질되는 것은 마치 강남 귤이 강북을 넘어와 탱자로 바뀌는 격이다. ‘사민주의’가 낯 한번 붉히지 않고 ‘신자유주의 반동’으로 둔갑한다!

민주노총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운동의 기풍과 활력을 다시 살리겠다는 진정성이 정말 충만하다면, 선거를 중단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비정규 악법의 ‘안건 상정’을 막는 것으로 일이 끝났는가? 시간이 얼마 지나면 다시 상정되는 것 아닌가? 정권이 이 법안을 깨끗이 포기할 때까지 싸워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투쟁에 나서기 전에 ‘조직 혁신’부터 치를 일이다. 직선제를 선포해 보라. ‘소수자 대표성’도 들여와보라. ‘지역본부’에 큰 무게를 두어보라. 마치 타고난 앉은뱅이 나자로가 벌떡 일어나 춤추듯이, 구름떼처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신명을 내리라. 87년 노동자 대진출의 감격도 얼마든지 다시 일구어낼 수 있다. 이것이 ‘꿈’이라 여기는가? 여럿이 꾸는 꿈은 더이상 꿈이 아니다! 그리고 이 ‘꿈’ 없이 우리는 이 척박한 세상을 도무지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37차 대대 원천무효, 모든 후보의 자격상실”이라는 우리 주장에 담긴 뜻을 생각해보라). 다만 ‘민주화운동’을 벌일 뿐이다. 이미 민주노총은 ‘비리’를 넘어 ‘어용’의 의구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떠맡을 과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리의 길을 가리라. 서두르지 않고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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