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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 김지예 서울 신관중 교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 승인 2006.02.1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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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사수 싸움으로 광화문 앞이 연일 시끄럽다. 인기배우를 실물로 보고 싶은 팬들은 때는 이때다 싶어 장사진을 이루고, 한국영화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이유는 의무상영일수 때문이니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고 함께 외친다. 영화계의 투쟁에 대해 국민들은 공감하면서 함께 해 왔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켜내고 성장시켜 왔다.

▲ 김지예 서울 신관중 교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
그런데 대중음악계는 이에 대해 그리 온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자기들은 보호막 없이도 외국가요를 이겨냈다면서 작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느니, 영화계가 국가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한탄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의 표현 속에서는 영역이 다른 문화예술에 대한 존중과 격려보다는 경쟁과 질투가 느껴진다.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승부할 장은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인의 투쟁에 동참하기는 어렵더라도 상대적 박탈감 운운하며 거리를 두는 건 어쩐지 냉소적으로 보인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단골뉴스 하나가 같은날 보도되었다. 중등학교 임용교사의 80%가 여성이며, 임용고시학원의 수강생 중에 남학생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고등학교에서도 남교사 보기가 어려워질 거라며 교육부는 양성평등을 위한 남성 가산점제도나 할당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근 5년간 여교사 비율은 7%가 높아져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쩐지 생뚱맞고 앞뒤가 안 맞는다. 이제 겨우 여교사가 절반을 차지하는데 남교사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은 웬 호들갑이며,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어휘사용도 어울리지 않는다.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그렇다. 아마도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교직은 원래 남성의 영역인데 여성이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 감히 여성이 자유경쟁에서 남성을 압도하니 뭔가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것일 테다.

언론이 대결보다 격려의 시선으로 보도를 한다면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면서도 사회적 통합과 구성원의 성숙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특히 노동계에 대해서는 어떤가.

격투기 보듯 음미하면서 치명상을 입힌다. 노동자와 국민을 분리하고, 민주노총과 노동자 서민을 갈라놓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하고, 전교조와 교사 학부모를 갈라 세운다. 소설을 쓰면서까지 왜곡하고 참견하고 두들겨 팬다. 요즘도 일부 신문은 노동운동에 대한 일갈로 신이 났다. 그런데 그것을 어찌 그들의 탓만으로 돌리랴.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우리는 지난 대대에서 성공적으로 치러내지 못했다. 위기의 민주노총이라고 누구나 말하면서도 우리는 마음을 모으지 못했다. 한시가 급하게 지도구심을 세우고 단결해야 할 때에 시비만 따지다가 아무것도 처리하지 못했다. 누가 되든 존중하고 단결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에 승복하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민주라는 이름의 내용을 마음 속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의 행복을 진정한 자기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한다. 아픔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의 성숙 없이 어떻게 사회가 진보하겠는가. 나의 행복을 배 아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불행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인들 어찌 편안히 살 수 있겠는가. 하물며 우리는 동지다. 같은 뜻을 품고, 함께 가는 길동무다. 그것도 험하디 험한 가시밭길을.

김지예 서울 신관중 교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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