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조합장’이 아닌 ‘위원장’이라는 어감에 맞는 선거를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들끼리만 통용되는 언어로 경쟁하며 우열을 가려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되면 동심원 바깥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엄청난 차이…그러나 부각되지 않은 차이
이번 민주노총 보궐선거는 쟁점이 없었나? 아니다. 우선 지난 4기 지도부에 대한 평가 문제에서 세 후보 진영은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기호1번 진영은 양대 정파를 공히, 상층 노동관료라고 비난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핸들의 문제가 아니라 엔진의 문제”라는 그들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기호2번 진영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계승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사실상, 명시적인 ‘수성 진영’이다. 따라서, 공세보다는 쏟아지는 공격에 대한 방어에 치중했고, 자연스레 ‘통합’을 전면에 내세운 선거전을 치렀다.
기호3번 진영은 ‘공성자’다. 그들은 4기 지도부를 ‘비상식적으로 민주노총을 끌고간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선거전 과정에서 중집회의 사례, 정오교통 사례 등을 계속 언급하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두 번째 쟁점은 조직체계와 관련된 문제였다. 크게 직선제에 대한 입장과 산별과 지역조직에 대한 입장에서 세 곳의 선본은 크게 갈렸다.
기호1번 진영은 “선거 중단”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선거공약을 내세우며, 즉각적인 직선제 선거를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산별 구획을 정하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산별 논의는 상층 노동관료들의 탁상행정의 산물”이라면서 “지역연대를 되살리고, 운동의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내리기 위한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들은 민주노총이 전면에 내걸고 나선 ‘산별전환투표’를 “세계노동운동사에서 유래 없는 방식”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비판하고 나섰다.
기호2번 진영은, “직선제를 하는 것은 좋지만 현실을 봐야 한다”면서 일종의 단계론을 꺼내들었다. 또한 현 민주노총의 선거 운영능력을 냉정히 봐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산별 전환에 있어선, 기존 산별의 틀을 존중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폈다.
기호3번 진영은, “차기 지도부 선거(2006년 말)부터 전면적인 직선제을 도입하자”는 주장을 했다. 1번 진영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좀더 현실적인 혁신안을 내놓은 것이다. 또한 산별전환 투표와 관련해선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나 역시 산별전환 투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 하지만 현실을 봐야 한다. 지역 중심의 산별로 가야 한다는 원칙에는 어떤 이견도 없지만, 현존하는 성과를 기반으로 한발 한발 가야 한다.”(김창근 위원장 후보, <매일노동뉴스> 후보자 초청 토론회 중)
이밖에도 KT 노조에 대한 입장, ‘세상을 바꾸는 투쟁’ 대 ‘계급성의 복원’ 등등 공격적인 논쟁이 가능한 쟁점들이 적지 않았다. 진단과 대안을 두고 한판 설전을 벌일 조건을 갖춰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임원보궐선거의 후보들의 차이를 ‘선수’들 말고는 그다지 변별하지 못하는 듯하다.
쓰는 단어, 10개가 안 넘는다
왜 그럴까. 우선 쓰는 단어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진정성”, “통합”, “상식”, “단결”, “연대”, “혁신”, “분쇄”, “투쟁”, “동원” 등 10개의 핵심단어가 주로 등장해 문장이 조합되다 보니, 각 후보진영 사이에 차이를 쉽게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그리고 그 ‘핵심단어’들 중에는 노동조합 활동가가 아닌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태반이다.
자, 후보들이 한 ‘말’들을 살펴보자.
“우리가 제도화된 타협체계와 선거 중심의 정당 지지로 가느냐, 아니면 민중의 저항을 조직함으로써 위기를 딛고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나아가느냐는 우선 민주노총의 혁신과 관료제 청산에 달렸습니다.”(기호1번 이정훈-이해관 후보)
“미국과 노무현 정권, 자본의 합작품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박살내고,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승리로 이끌겠습니다.”(기호2번 조준호-김태일 후보)
“땅에 떨어진 지도력을 조합원의 손으로 복원하는 것, 민주노총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을 높이고 주인으로 나서게 하는 것이 혁신의 돌파구입니다.”(기호3번 김창근-이경수 후보)
사실, 민주노총 임원선거 공보물에서만 볼 수 있는 어법이다. 우선 격하고, 더해서 생경하다. 물론, 오랜 기간 노동조합운동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일상언어겠지만, 이른바 활동가들 말고는 익숙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맞추기 게임’하면 만점 나올까?
더해서 후보들의 선거 슬로건을 보면 좀, ‘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단결과 혁신, 민중과 함께 세상을 바꾸자”, “책임지는 투쟁, 중앙부터 혁신, 상식이 통하는 민주노총”.
첫번째 것은 기호2번 조준호-김태일 후보의 선거 슬로건이고, 두번째 것은 기호3번 김창근-이경수 후보의 선거 슬로건이다.
부위원장·여성할당 부위원장 후보들의 슬로건을 살펴보자.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노동자 분할통치 분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겠습니다”, “노동자의 조직적 단결과 진보세력의 총단결 실현”, “연대와 혁신의 기치로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나아갑시다”, “민주노총 혁신의 기관차가 되겠습니다”.
후보와 슬로건을 놓고 ‘맞추기 게임’을 하면 만점 받을 사람이 80만 조합원 중 몇명이나 될까. 아니, 926명 대의원 중 몇명이나 절반 이상을 맞출까. 참고로, 보름 가까이 선거를 취재해 온 기자도 절반이상 맞출 자신이 없다. 그럼 국민과 대중은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민주노총 선거는 대의원선거이기 때문에, 정책선거가 사실상 어렵다. 잘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때는 몰라도, (현장의 주요 활동가인) 대의원들은 민주노총의 구조와 쟁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각 후보들의 주장의 차이를 알고 있다.” 한 선거진영의 핵심관계자가 한 말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현재 민주노조 운동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같다고 해서, 우리가 제기한 문제의식도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기호1번 이해관 사무총장 후보)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라는 말. 그래서 민주노총 선거는 ‘조합장’ 선거처럼 보인다.<상자기사1 참조>
선거 자체가 쟁점이 되는 상황
필요하면 어법은 바뀐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노총 선거는 ‘필요’를 느낄 구조가 아니다. 간선제는 직선제에 비해 당연히 선거의 역동성이 떨어진다. 한 선본에서 분석한 예상치에 따르면, 926명의 대의원 가운데, 표심을 알 수 없는 대의원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다시 말해 정파구도가 거의 공식화된 민주노총 내부의 정치지형 상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이미 표심을 결정한 90%의 대의원이 표심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상자기사2 참조>
결국 선거가 (이미 결정돼 있는) ‘지분’을 확인하는 과정 정도라면 쟁점의 형성도, 그에 따른 역동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지분 확인은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확인된 90% 가량의 대의원 표심에 선거의 답이 나와 있는데(본지 10일자, “기호2번 조준호-김태일 후보조, 압도적 우세”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는 좀더 설득력있는 언어와 행위로 표를 호소하는 데 힘을 쏟을 이유가 없어진다. 이리하여 슬로건의 차별성은 말만 봐선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쟁점은 선거 자체로 모아진다. 지난 3일, 국회 환노위 비정규직 관련법 처리 일정이 나오자, 약세를 보이고 있던 진영에서 바로 “선거연기”, “선거중단” 주장이 강하게 펼쳐졌다. 넘기 힘든 조직세가 ‘거의’ 확인된 상황에서 굳이 참여할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는 말은, 이미 선거전 시작 이전부터 나오고 있었다(물론 내세운 명분은 조직세 차이가 아니었다).
우세로 평가된 기호2번 진영은 타 진영의 선거연기 주장에 대해 “이미 지도력을 상실한 비대위 체제를 접고, 서둘러 새로운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선거쟁점은 자연스레 선거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형성됐다. 이렇게 되면, 어느 후보의 말처럼 어느 쪽이 “진정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의지는 계량할 수 없는 법.
여담이지만, 비정규법 처리 일정 때문에 민주노총 선거를 연기·중단하자는 주장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한 민주노동당 의원이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밥은? 비정규법 처리한다는데 밥은 먹는데?”
쇠약한 사람에겐 감기도 위험하다
이같은 배경에서 열린 10일 대의원대회는 시작부터 ‘부분 파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40명이 넘는 KT노조 소속 대의원들은 기호1번 진영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의 대의원대회장 봉쇄에 막혀 입장도 하지 못했다.
10일 정기 대의원대회 나온 긴급발의 안건 5개는 사실상 선거 자체를 쟁점으로 하고 있던 보궐선거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KT노조 징계 건’을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하자 △‘임원 직선제 실시를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2006년 6월 이내에 도입하자’ △선거를 연기하자 △ 5기 임원선거 직선제 추진위원회 구성 및 비정규직 악법과 로드맵 분쇄를 위한 대의원·단위노조 대표자 구속발의 특별결의안을 채택하자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민주노총 조합원에서 영구제명 하자 등 5개 안건 가운데 3개는 사실상 ‘오늘 선거하지 말자’는 말이고, 2개는 제기한 쪽이 '선거운동용'으로 발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일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선거관리위원회와 금속연맹 중집의 현대차노조 신임 대의원 자격에 대한 ‘행정착오’가 불거졌다(누가 잘못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쇠약한 사람은 감기로도 사망하듯, ‘행정착오’는 대대 파행의 결정타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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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과 위원장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 너무나 너무도 자의적인 그리고 말도 안되는 규정을 나름대로 작성하고 있는데요.
'조합장'과 '위원장' 개념에 대한 어원을 간단히 밝혀줄께요.
조합장은 한국노총계열 사업장에서 노조위원장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어요.
운수나 교통 쪽 노조 취재하러 가보세요 옛날 사람들 조합장이라고 하죠. 강승규도 아마 조합장이라는 말에 익숙할 걸요 ㅋㅋ
위원장은 노동조합법상 노조의 임원의 자격과 지위 규정시 그렇게 규정되어 있고요.
1987년 노동자대투쟁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이른바 '민주노조진영'에서 한국노총과 차별화하기 위해 위원장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고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리 기자가 밥벌이해먹는 수단이라고 할지라도 뭐 이런 정도는 알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노동문제 취재하지 마시고 다른 분야 관심 가져보세요.
또한 노동자와 근로자 개념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구 쓰대는 기자도 많아요.
문제네요...기자까지도 자민통 속성을 못버리니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