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 규모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2월 초 한국수출입은행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해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 4,365건, 63억9,847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2004년에 비해 건수로는 15.8%, 금액으로는 7.2%로 증가한 것이다.

한국기업이 해외투자를 시작한 해는 1968년이다. 남방개발이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임업 개발에 285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 한국기업의 첫 해외투자 사례이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삼림개발과 수산업에 집중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외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제조업 부문의 해외투자가 급증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에는 영업활동의 세계화를 통한 ‘현지시장 접근형’으로 해외투자 형태가 변모해 왔다.

민주화 이후 해외투자 급증

첫 해외투자가 이뤄진 1968년부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까지의 기간을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때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이는 전체 투자건수와 투자금액의 50% 이상이 이 시기에 집중된 데서 잘 드러난다. ‘민주정부’인 김영삼-김대중 정권 10년 동안 전체 투자건수와 투자금액의 85% 이상이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투자건수 1488건, 투자금액 23억2백만 달러를 기록한 1994년은 한국기업 해외투자가 새로운 단계로 전환한 시점이라 평가할 만하다. 1994년을 전후한 시기는 투자건수, 투자금액, 투자업종, 투자지역, 투자국가에서 이전 시기와 비교할 때 다른 패턴을 보였다.

업종별로 살펴보자면, 제조업이 전체 투자건수의 60% 이상, 투자금액의 50% 이상을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도소매업과 부동산 및 서비스업이 다음으로 비중이 컸다. 1980년대까지는 광업과 도소매업이 해외투자를 주도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제조업이 투자건수와 투자금액에서 다른 업종을 압도했다. 제조업에서는 섬유의복 분야에의 투자건수가 2,401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투자금액에서는 전자통신장비가 82억2천만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같은 시기를 지역별로 살펴보자면, 한국기업의 최대 투자지역은 아시아로 전체 투자건수의 67%, 투자금액의 40%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북미와 유럽에 대한 투자가 많았다. 아시아, 북미, 유럽에 대한 투자건수는 전체의 92%, 투자금액은 86%에 달해 지난 35년 동안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는 이들 세 지역에 집중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추세는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더욱 분명지고 있다. 특히 유럽 지역에 대한 투자건수는 아시아와 북미에 크게 못 미치는 데 비해, 투자금액은 아시아와 북미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며, 건당 평균투자액 규모는 유럽이 최고였다.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기업의 최대 투자지역은 미국과 ASEAN이었으나, 1991~1992년을 거치면서 중국이 최대 투자지역으로 부상했다. 중국에 대한 한국기업의 첫 투자는 1988년에 이뤄졌으나,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투자건수에서 최대, 투자금액에서 미국 다음의 투자대상국으로 떠올랐다. 투자금액에서 미국, 중국 다음으로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가 많았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는 투자건수는 많으나 투자금액은 작은 데 비해, 미국,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 대한 투자는 투자건수에 비해 투자금액은 월등히 컸다.

대기업이 해외투자 주도

기업규모별로 살펴보자면, 투자건수에서 중소기업이 전체의 62%, 대기업이 15%를 차지한 반면, 투자금액에서는 반대로 대기업이 전체의 76%, 중소기업이 21%를 차지했다. 그리고 대기업은 아시아, 북미, 유럽에 고루 투자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의 투자는 아시아에 편중되었다. 유럽에 대한 투자는 대기업이 투자건수와 투자금액에서 모두 중소기업을 앞섰으며, 투자금액에서는 중남미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앞섰다. 이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해외투자는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이 주도하는 데 반해,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들에 투자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투자금액에서 아시아와 중국에 대한 투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훨씬 앞섰다. 지난 35년 동안 투자금액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능가한 시기는 없으며, 투자건수에서 1989년 이후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앞서고 있을 뿐이다.

1997년 11월 불어 닥친 IMF 경제위기는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를 일시적으로 위축시키기는 했으나, 증가세를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IMF 경제위기는 주요 국가, 지역, 업종, 기업규모 등 모든 범주에서 한국기업의 해외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1999년부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IMF 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해외투자금액과 해외투자건수에서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는 2000년대 들어 대부분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수준을 상회하면서 완전히 회복되었다.

한국기업의 해외투자 추세를 보면서 우리는 몇가지 함의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체로 80년대 후반 이후 국내의 급격한 임금상승에 영향을 받아 한국기업의 해외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노동운동의 활성화에 따른 임금인상과 노동권의 개선이라는 압박 요인이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를 촉진한 하나의 요인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한국의 대기업은 다국적기업

이런 입장에서의 분석은 한국기업의 해외투자가 1994년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점과 IMF 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해외투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 대해 근본적인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대외적으로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계경제의 세계화와 지역화 흐름이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자극했으며, 대내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1994~1995년 ‘단군 이래 최대호황’이라는 좋은 시기를 거치면서 다국적기업으로 급성장한 한국 재벌들의 글로벌 전략이 주요 동인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중국, 미국, 유럽에 대한 투자가 전체 투자의 65%를 넘고, 전체 투자액의 76%를 대기업이 차지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한국기업의 해외투자에 관한 글들은 대부분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를 선진국에 대한 투자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선진국에 대한 투자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 못지않게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무역장벽 회피와 현지시장 접근에서의 용이성 때문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선진국에 대한 투자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며, 특히 1990년대 이후 늘어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할 경우 미국에 대한 투자건수는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투자건수보다 많았고, 투자금액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는 중국을 훨씬 앞섰으며, 무엇보다 유럽연합에 대한 투자액은 아세안에 대한 투자액과 거의 비슷했다. 물론 투자건수에서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가 압도적이지만,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벌, 즉 한국 국적의 다국적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 해외투자에서 차지하는 대기업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선진국에 대한 투자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만큼이나 활발하다는 점에서도 한국 국적의 초국적기업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삼성, LG, 현대, SK, 대우 같은 대기업들은 엄청난 자금력, 풍부한 인력,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세계로 진출하면서 기존의 다국적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책마련에 관심 없긴 노조도 마찬가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 반해,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자본은 ‘제조업의 공동화’ 등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에 따른 문제점과 심각성을 부각시킬 뿐, 이에 대비한 실질적인 정책이나 비전을 내놓은 적이 없다. 심한 경우, 기업이 노동자를 대상으로 자행하는 자본의 해외이전 협박을 모른 체 하거나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국내 기업의 해외이전은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그것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따라서 경제, 산업, 교육, 사회, 노동 정책을 통한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한데, 그런 시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나 자본은 물론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와 낡은 이념논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 역시 한국기업의 해외진출 증가에 대해 우려만 할 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해외투자 한국기업들이 채용한 현지 인력에 대한 현황 파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이동’은 현지 노동력의 ‘구입과 사용’을 뜻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에 채용된 이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일하는 지에 대한 자료나 정보는 국내에 별로 없다. 투자건수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사업자나 중소기업의 경우 현지 채용 인력에 대한 대우가 대단히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실상은 국내에 소개되는 현지 언론의 보도나 국내외 인권NGO들의 폭로를 통해 간헐적으로 알려질 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의 활동으로 많은 외국 국민들의 삶이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기업의 해외투자는 정부와 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도 관심을 갖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과제가 된 지 오래다. 해외투자를 반대만 하고 있기에는 시대가 너무 앞서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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